【종그니 칼럼】사람 됨이 먼저다
[종그니 칼럼] 치폐설존(齒弊舌存)
내가 젊은 날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때에 들은 얘기다. 1960~70년대 때는 요즘처럼 마치 염소 항문에서 염소 똥이 쏟아져 나오듯 사법시험 합격자가 양산되는 시절이 아니었다. 한 해에 15~30명이 전부였다. 이처럼 그 門이 대단히 좁았지만 그때 난 "단 한명을 뽑는대도 그건 바로 나다." 라며 도전했었다. 그 시절에 "어느 경지에 이르러야 사법시험에 합격할수 있느냐?"가 회자된 적이 있었는데, 혹자는 무의식의 사고(思考)가 온통 법의식(法意識)으로 채워져 있을 때, 즉 "모든 사고가 法意識으로 함몰되어 모든 발상이 법의식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예로 들었다. 즉 시인이 아니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가을에 단풍이 지는 것을 보게되면, "아 벌써 가을이구나!"하고 무의식적으로 가을을 노래 할것이다. 이처럼 사시(司試)에 합격할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의 법의식 이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배어 있느냐"의 여부로, 즉 가을 산야의 단풍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아! 부동산이 동산이 되는 구나!"라고 읊조릴 정도로 법의식으로 가득차 있어야, "비로소 司試에 합격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이런 법조인들 즉 철두철미 법의식으로 점철되어 있어야 할 검사들이, 어느 날 검사 한 사람이 법 곡예사 처럼 줄타기를 잘해서 대권을 거머쥔 것을 보고, 검사로서의 소임보다 제 2의 윤석렬이 되겠다는 정치 지망생들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권력 앞에 줄을 서고 있단다. 검사들이 권력에 맛들이면 마치 "중이 고기에 맛들이면 절간에 빈대까지 잡아 먹는다."는 말처럼 이나라 정치행태가 자칫 정도에서 엇나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바라기는 권력지향주의 자가 되려 하기전에 먼저 나를 다스릴 줄 아는 법조인이 되어 나라의 근간을 지키는 법 지킴이들이 먼저 되시라!
권력은 아편과 같은 것, 여기에 물들게 되면 자아를 잃어 버리기 십상이다. 먼저 '나' "본래 있어야 할 나 부터 찾으시라." 자칫 권력이 본래의 '나'라는 '자아'를 삼켜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맛에 취하여 자신을 망가뜨렸다. 노무현 시절에 검사들이 떼로 몰려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마치 검사가 대통령을 마치 피고인 다루듯 오만한 태도를 보인적이 있었다. 통치를 법의 잣대로 본 검사의 오만이다. 지금도 그 오만의 자세로 정치 앞에 서려는 것인가? 요즘 이 나라의 검사들이 너 나없이 해바라기성 권력지향주의로 흐르는 면면을 보면서, 초록은 동색인가 싶어 가슴이 저밀만큼 씁쓸하다. 사람들은 지금의 이 나라 정치행태를 '검찰국가'라고 부른다. 현 대통령이 검사출신이라서만은 아니다. 나라를 통치하는 방향성과 사고(思考)의 통치방식이, 마치 범인을 색출히듯 주권재민이란 말이 무색하게 국민들의 言路를 통제하면 국민들을 다스리기 참 쉬울 것이란 착각을 한것같다. 권력자가 혹할 유혹이다. 언로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어 나라의 명령을 하달하는 것 바로 전두환정권때 그랬다. 이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그래서 국민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그랬다. 민주주의 태양이 밝게 뜬 이 시대에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꺼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그렇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참으로 살아 있어야 할 법치주의 내지 법의식이 아이러니 하게도 법지킴이 법조인들에 의해서 나라 근간이 되는 기본법이 훼손되어, 무엇이 당위이고 불편부당한 법 집행인지, 마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소피스트들에 의해 바로 서야 할 사회 법 질서와 진정 있어야 할 자유 민주주의가 근본부터 와해되었던 것처럼,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에게 독배를 마셨던 것처럼, 아직 자기정립도 채 되지 않은 법곡예사들이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근본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 더니,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큰 도량은 간데 없고 선무당이 사람잡듯 법 곡예사들이 지금 세상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인사가 만사'란 말처럼 지난 날 박정희 대통령은 적재적소에 인사(人事)등용을 잘했다. 그는 비록 독재자 라는 이름으로 비운의 말로를 맞았지만, 그러나 그는 이나라 오천년 가난을 물리쳤다. 지금 그에 비견할만한 비젼도 없으면서 권력의 망상에 빠져 더 이상 역사와 민의를 져버리려 하지 말고 남은 임기동안 주어진 대통령직에 충실 하시라! 검사는 검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듯 국민이 믿고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다하도록 부디 정도를 걸어가 달라! 국무위원들을 비롯해서 나라의 요직에 심지어 인권위원장도 언론 수장의 자리도 언론 통제를 위하여 검사들로 채우려 하지 말고 주권재민의 법치를 따라 일할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 권불십년이다. 한 순간이다. 정녕 대통령은 국민들을 길들이기 수단으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아시라! 현대국가에서 대통령은 권력이 아닌 섬김으로 그래서 국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닌 섬김의 대상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것 얼마나 바람직한 대통령 상인가! 아마 대통령이란 명칭을 '큰 종'이란 용어로 바꾸면 어떨까?
윤 대통령은 정작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도 법의 저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옛말에 修身齊 家後 治國平天下(수신제가후 치국평천하)라 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남자지만 그러나 남자를 쥐고 흔드는 것은 여자"라는 말처럼 국민들이 지금 이 아킬레스에 걸려 있다. 더 나아가 대통령이 국민들을 가해자 집단으로 보고 있는건 아닌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모조리 검사 일색으로 나라를 통치 하려 하시는지?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 자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 나라 민주정치 족보도 없는 정치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 법치주의인지 묻고싶다. 검총의 자리에 있을 때나, 한 나라의 통치귄자로서의 지금이나 그 사고(思考)가, 참 신기하게도 그 발상이나 언행이 후안무치하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무능했던 문재인이 발탁한 검사가 지금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것 또한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이 나라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국민들은 말한다. 검사직이 몸에 배인대로 법 줄타기를하며 나라의 권력을 자신의 소욕에 따라 사용(私用)하지 마시라! 마치 선무당이 사람잡듯 도무지 종잡을수 없는 발상으로 외교와 국정을 더이상 혼란케 마시라!
며칠 전 홍준표 대구시장이 말하기를 "현 정권은 2년동안 이재명 수사에만 집착하는 '검찰 정치'를 해 왔다며 그게 누가보아도 좀스럽다"고 평했다. '홍준표' 그가 누구인가? 그는 유명한 검사출신으로 지난 날 국힘당 대표였고 지금도 차기 대선을 꿈꾸고 있는 국힘당의 원로 정치인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재명 한 사람을 발가 벗기려고 온 검찰력을 동원했다. 이제 그만 마무리하고, 법원의 판단에 맞겨야 한다"며 수년동안 전 검찰들이 그렇게 파헤치고도 "아직도 수사할 게 남았나"라며, "한 나라의 국격에도 집권당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좀스런 일이다."라고 질타 했다. 집권당 그 누구도 하기 어려운 쓴 소리를 현 정부에게 한 것이다. 옛말에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하라."는 말이 있다며 홍준표 대구 시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2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재명 수사에만 집착하는 '검찰 정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저질'이라고 했다.
홍준표 시장은 10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이재명 사건 수사는 2년간 전 검찰력을 동원하여 철저하게 수사를 했다. 무슨 일이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이다. 야생동물 하이에나처럼 나라의 공권력을 그렇게 종횡무진으로 파헤쳐서 구린내 안날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겨우 0,75%로 대권을 잡은 집권당은 당연히 야당과 협치를 하리라 믿었다. 이제 그만 국민을 두렵게 보고 먼저 남 아닌 자신을 돌아 보고 하향곡선을 그으며 기울어 가는 나라 경제와, 국민들의 삶인 민생에 힘을 쏟는 정권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정말이지 염치를 아는 싸가지(仁義禮智)와 분수를 아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그동안 신물나게 물고 늘어진 이재명 사건이 마침내 검사들의 손에서 마무리 됐으니 이젠 법원을 통해 판단 받는 절차만 남았다"라는 글을 남기고 말을 마쳤다.
홍 준표 시장은 이 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된다면 '정치보복' 프레임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제 이재명 수사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고 정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술회했다. 그는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도 "과잉수사" 라는 발언을 했다가 이른바 '조국수홍' 으로 여권에서 비판받았던 경험을 언급하기도 했다.
홍 시장은 "조국일가 수사를 가족 대표만 수사하면 되지 전 가족을 몰살시키는 과도한 수사라고 했다가 '조국수홍'이라고 국힘당 측 인사들이 벌떼같이 나를 비난하는 것을 격은 일이 있었는데, 나는 수사원칙을 말한 것이지 조국을 옹호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마녀사냥 식으로 몰고 간 것은 참으로 유감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 보수정권을 적폐로 규정하고, 몰살 수사를 한 결과 그 반대급부로 정권이 교체된 것이다"며 "이제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크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필자 또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의 소속은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허지만 그는 대장동사건으로 자신은 물론 자기주변에 있었던 사람들까지 피의자가 되고 또 죽었다. 그런데 그는 이런 불행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것 같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솔직 담백하고 표리부동 하여야 한다. 여당의 권모술수를 따라할 것이 아니고 어떠한 질곡속에서도 정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 "개인적인 욕망을 버리고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정치" 여기에 뜻을 모으길 바란다. 당 운영이 나홀로의 독선이나 독무대가 아닌 모범적 민주정당 즉 모든 문제에 있어서 독단이 아닌 중지를 모으는 민주정당이 되길 바란다. 모름지기 당(黨)은 자유 민주주의를 길러내는 산실(産室)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재명 대표는 자신에 대하여 법의 심판이 아닌 양심의 법앞에 호말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중국 중화 인민공화국 즉 공산당 일당체제로 중국을 통일한 이가 두말할 것없이
마오쩌뚱(Mao Tae Tung) 毛澤東)이다. 그는 농민군을 이끌고 수많은 死線을 넘나드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도 절치부심 끝까지 싸워서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어, 중국을 공산당 일당체제의 국가로 통일의 꿈을 이루었다. 이처럼 마오쩌뚱은 중국에서 불사신과 같은 두려운 존재이자 국부였다면, 허지만 마오쩌뚱 못지않게 중국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5척단구의 등소평(登小平)은 인민들로부터 신망을 한 몸에 받았으며, 이 때문에 마오쩌뚱은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사선을 넘나드는 격랑의 세파를 격으면서도 한결같이 자신을 낮추었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오뚜기' 였다. 모택동이 죽고 등소평의 시대가 왔지만, 그는 한 해가 지나가면 다시 새 해가 오듯, 한 세대가 지나가면 또 다른 세대가 옴을 알았기에, 마오쩌뚱 같은 격랑의시대에는 그에 맞는 인물이 천하를 도모하고, 지금은 역린이 아닌 본래의 자리를 찾는 시대라 하여 그는 인(仁)의 정치 즉 순리의 정치를 폈다. 아! 이나라에는 역린이 아닌 순리를 쫒는 앞을 멀리 볼줄 아는 小我를 버리고 조국을 앞세우는 넉넉한 등소평 같은 정치가가 정녕없는가! 야망을 품은 검사님들! 부모 잘 만나 학교에서 일등교육으로 지금 그 자리에 있다면, 생각이 바로되어야 행동도 바르게 되는 법, 정치는 가장 낮은 자리 낮은 자세에서만 볼수 있는 민초를 헤아릴 줄 아는 안목부터 기르시라!
[종그니 칼럼] 치폐설존(齒弊舌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31년 최첨단 살생무기로 중국 만주 침략을 시작으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일본의 무참한 살육전쟁은, 1945년 8월 일본의 아무 조건없는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가 일제(日帝)로부터 세계열강에 의해 해방은 되었지만,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양분되어 한반도는 이내 이념의 각축장이 되었다. 일제 침략자들이 물러가자 세계열강들은 저들의 입맛대로 한반도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하였다.
미ㆍ중ㆍ소에 의해 39도 선으로 합의된 것을 어느 지리학자의 주장을 신봉한 미국대표가 휴전선을 38선으로 확정하였다. 만약 처음 합의대로 39선으로 그어졌더라면 전방구축이 훨씬 더 완벽해져서 북한군이 감히 시도조차 못 했을 6.25전란을 미국 대표자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우리는 동족상잔이라는 뼈아픈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이렇게 북한 공산군들이 기습적으로 쳐들어와 전방 방어 축이 하나둘 무너지는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국방부 장관 신성모의 말만 믿고 대국민담화로 "보충하여 사용한 우리 국군들이 잘 싸우고 있으니 국민은 안심하라"고 해 놓았다. 정작 대통령과 각료들은 물론 육군본부, 그리고 방송국 역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앵무새처럼 녹음기로 틀어놓고, 서울과 서울 시민들을 나 몰라라 하며 대전으로 대구, 부산으로 피난 다니기에 바빴다.
어디 그뿐이랴! 저들은 후퇴하면서 서울시민들의 유일무이한 피난통로인 한강 인도교마저 폭파해 버렸다. 해방 후 북한은 재빠르게 소위 친일파들을 모두 응징한 후 민족전쟁을 일으켰기에 저들은 그나마 대내 명분이 살아있었다. 그에 반하여 남한은 소위 일본강점기 때 일본군 혹은 일본 경찰에 몸담았던 친일파들 대부분이 미 군정하에서 軍, 警, 政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마땅히 가려야 할 일본강점기 때의 반민족적 친일행각에 대한 역사의 심판을, 국정 실리론을 내세워 친일파 단죄론을 되려 정죄하고 정략적인 아전인수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어 버렸으니 이에 나라 세움의 근본이 시작부터 훼손되고 말았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 민족진영의 상징인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을 필두로 곳곳에서 수많은 민족적 비극이 일어났다. 이렇게 남한은, 사상과 이념 차로 사분오열되어 하루도 빠끔한 날이 없었다.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잔의 비극은 이미 일찍이 예견된 바였다.
6.25 전란이 터진 지 3일 만에 서울은 무너지고, 큰소리치던 군경들과 각료들, 그리고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믿고 기다린 서울 시민들은 어처구니없이 북한의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북한은 중공과 소련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공산주의 일당독재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었지만, 명분과 실리에서 북한에 밀리고 있던 남한은 친일파를 포함한 우익과 민족진영, 그리고 공산 좌익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먼저 기선을 잡은 북한이 6.25라는 남북전쟁의 포문을 터뜨린 것이다. 이처럼 서로 자기주장이 강하면, 둘 다 부러지게 마련이다.
`극우와 극좌` 이를 녹일 수 있는 무기는 자기를 비우거나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 민족은 日帝에게 망국의 참담한 설움을 만신창이가 되도록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념의 갈등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난 지금도 이를 추스를 수 있는 역량은 커녕, 날마다 이전투구로 쌈박질만 해대고 있다. 중국 천하를 최초로 통일한 秦의 始황제는, 분서갱유 등 철권통치로 통일을 이룬지 불과 15년만인 나이 49세에 원정 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였고, 수년 동안 환관 趙高가 나라를 완전히 거덜 내다가 漢에게 망했다. 어디 이뿐인가? 앗시리아제국이 그러하다 망했고, 바빌로니아 제국 또한 그러하다 망했다.
이를 알라! 유연하면 휘어지기는 하나, 절대 부러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야욕을 잠시만 내려놓고 보면, 다 보이는 것을! 그게 무슨 전가의 보도인 양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가, 다 잃은 후에야 온몸으로 막아내려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본다.
중국 춘추시대의 노자(老子)가, 밤사이 눈이 많이 내린 아침 숲 속을 거닐고 있을 때, 숲길 옆 소나무의 큰 가지가, 뚝 부러지는 요란한 소리에, 老子는 깜짝놀랐다. 튼튼한 나뭇가지들이, 처음에는 눈의 무게를 잘 지탱하고 있더니만, 눈의 무게가 차츰 무거워지자, 이를 지탱하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가늘고 작은 가지들은, 눈이 쌓이면 저절로 가지가 휘어져, 눈을 아래로 떨어뜨린 후에 다시 원위치로 튀어 올라,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를 본 老子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저 연약한 나뭇가지처럼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 몸을 낮추어 구부리는 것이, 힘으로 우직하게 버티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이치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부드러움은 무쇠처럼 강함을 이긴다. 부드러운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자신을 낮춰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老子가 평소에 공경하여 따르던 상용이, 老患으로 병상에 눕게 되었다. 그때 老子가 그를 찾아가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상용은 갑자기 입을쩍 벌렸다가 다시 다물고는 물었다. "내 이가 아직 있는가?" "없습니다!" 그는 다시 입을 벌렸다 다물며 물었다. 내 혀는 있는가? 있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상용이 말했다 내 말의 뜻을 이해 하겠는가?老子 대답하기를 "단단한 것보다 부드러운 게 더 오래 남는다는 말씀이시지요." 상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하네, 천하의 이치가 모두 그러하다네." 이것이 바로 치폐설존(齒廢舌存) 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결국,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모든 강함을 이긴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역설의 진리다. 혹독한 엄동설한을 견뎌 내고, 아직 잔설이 쌓여 있는, 꽁꽁 언 대지를 덮고 있는 찬 눈을 비집고, 수줍은 듯 살포시 꽃망울을 쳐들고 올라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관을 보라! 나라의 중심에 서서, 나라 살림을 이끄는 정치인들이여! 강아지도 삼일이면 주인을 알아보는데, 이제 `치폐설존`을 알만한 연륜이 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