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남중 목사】 양심을 살리는 설교

고(故) 윤남중 목사님이 남기신 설교, 히브리서 13:18-19

2023-11-28     리폼드 투데이

故 윤남중 목사(1920년~2015년)는 전북노회 제88대와 89대 노회장을 역임하며 노회 발전과 개혁주의 보수신앙 수호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전주효성교회를 담임하면서 전북노회장, 전북신학교 이사장, 전북노회 유지재단 이사장 등으로 섬겼다. 특히 1980년 총회 분열 당시 남아 있는 교회들을 수습해 전북노회를 지킨 대표적 공로자이다. 1992년 은퇴와 함께 윤 목사를 최초의 공로목사로 추대한 전북노회는 2015년 고인의 소천 후 전북노회 제160회 정기회에서 윤남중 기념사업위원회를 조직하고 신학 세미나 개최, 관련 자료 수집 및 출판, 장학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히브리서 13:18-19)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믿음에서 떠나 사는 사람이 되면 미혹하는 영과 귀신 의 가르침을 따라서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이 되고, 결국은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딤전 4:1,2)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양심은 있습니다. 중생한, 거듭난 성도에게는 “ 선한 양심”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화인 맞은 양심”이 있습니다. 룻소는 『에밀』이라는 책 에서 “양심은 영혼의 소리요, 정욕은 육신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 의 기도는 정욕으로 기도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인 맞은 양심으로 정욕,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 간구에 대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화인 맞은 양심이 살아나지 않고는 다시 말해서 선한 양심이 되지 않고는 인간은 죄 속에서 파 묻혀 살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심이 살아나지 않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실상 막연 한 인생, 생활을 합니다. 아무리 목적이 있고, 윤리적,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도 그 삶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 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인 맞은 양심을 살리는 것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양심을 살리는 믿음’이라고 제목하고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들어온 말

1) 누구나 가진 양심

양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양심은 두 종류의 양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화인맞 은 양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벧전 3:21에 보면 “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합니다.

이 양심의 간구를 하나님은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양심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 8:7에 보면 “지금까지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은 고로 그들의 양심은 약하여지고 더러워지 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그 양심은 화인 맞은 양심이기에 약 하여지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 ※ 주. 벧전 3:21은 개역성경과 개역개정성경 번역이 조금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 는데, 개역개정은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로 번역했습니다. 헬라어 “에페르테미(질문과 요청)”를 다른 의미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으로 했습니다. -

본질적으로 화인 맞은 양심에는 양심의 가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양심에는 가책이 있습니다. 무서워 지옥에 가지 아니하려고, 선한 양심을 창조해 주신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서 죄를 지으면 죄라는 것이 인식되고 양심이 무한한 책망을 합니다. 그래서 G. 엘리어트는 “양심의 가책은 새 생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선한 양심에는 가책이 있습니다. 이 가책은 양심이 살았기에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을 속일 수 없기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 3장을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중에 예수님께 나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 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2)”고 고백합니다. 니고데모의 양심에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시지 아니했다면 표적을 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선한 양심에 있는 가책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본질적인 양심의 가책은 예수님은 거듭난 사람에게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있다면 선한 양심을 가진 자이고 거듭난 자입니다. 화인 맞은 양심 을 가지고 있으면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없고, 변명과 변호,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 합리화 만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양심의 가책이 있어야 합니다. 그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 다. 그래야 성도고, 세례받은 사람입니다.

2) 판단을 정확하게 하는 양심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이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을 당하면 누구나 상대를 향하여 “양심대로 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판단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양심의 판단은 화인 맞은 양심을 소유한 자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둑들은 서로에게 “양 심이 그렇게 생기면 못 쓴다”고 야단을 합니다. 도둑의 두목도 도둑에게 있어야할 양심이 없으 면 이 집단을 움직여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도둑이 선한 양심을 가지면 도적질을 할 수 없고, 성 도(?)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 믿음으로, 믿음대로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 자가 신앙생활을 선한 양심으로 하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파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제자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 는 파선하였느니라(딤후 1:19)”고 말합니다. 양심의 판단, 그 호소와 가책을 외면하면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없고, 성도는 신앙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자의 양심 (믿음이 살리는 양심)

거듭난 사람의 양심에는 하나님을 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사랑이 새 생명에 있습 니다. 롬 6:4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 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새 생명을 가지고 살게 하려고 하신다는 말입 니다.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고, 선한 양심으로 하 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선한 양심으로 살지 못하면 사람은 망가집니다. 돈을 가졌지 만 인격이 없어지고,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었지만 그 속에 진실은 없고, 업적이 있어 성공한 사람이 되었어도 믿음으로 살지 못하여 결국은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됩니다. 프로이드 같은 정 신의학자도 “양심은 우리 내부에서 작용하고 있는 특정한 것에 대한 거부의 내적 작용지각이 다”고 말합니다.

양심의 작용에 따라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악한 사람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거듭 나지 못한 사람의 양심은 죄악으로 둘려 쌓여 즉 화인 맞은 양심이기에 선한 것이 그 속에 있다 고 해도 뚫고 나오지 못합니다. 이 양심은 그래서 무능한 것입니다. 롬 2:13에는 “하나님 앞에 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합니다. 화인 맞은 양심으로는 살 수 없기에 롬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 합니다. 믿음의 양심, 그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 때, 성도가 되고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으로 살았던 욥은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 라(욥 17:9)”고 믿음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양심을 가지게 하는 믿음은 태산 보고 옮겨가라 해서 옮기는 믿음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합 니다. 이 양심으로 살 때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합니다. 선한 양심은 믿음의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거듭난 성도에게만 있습니다. 그 래서 거듭난 성도, 믿음의 양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거짓말을, 거짓을 행할 수 없습 니다. 거짓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요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 를 믿지 아니하는도다(45)”고 합니다.

소돔성에는 이 선한 양심으로 사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선한 양심, 믿음을 살리 는 양심이 있는 성도는 시 32:11에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고 합니다. 선한 양심, 믿음을 살리는 양심을 가진 자는 여호와를 기뻐하며, 마음이 정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에, 간구에 하나님은 귀 기울이십니 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5)”고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 도다(시 34:17)”고 합니다. 선한 양심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성도라면 이 양심을 가지고 정확히 판단하고, 분별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 다. 선한 양심으로 삽시다. 양심을 살리는 믿음의 삶을 삽시다. 믿음이 양심을 살립니다. 그래야 의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 설교는 1980년 효성교회 설교노트 18권 수록)

                          고 윤남중 목사의 아들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