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 칼럼】순리와 역린.

[종그니 칼럼] 빛바랜 가정 교육.

2023-10-14     김종근 목사

나는 새벽 동이트면 터밭에 나가 노인들이 좋아하시는 상추와 풋고추를 딴다.   오늘 아침도 상추를 따고 있는데 어디선가 길고양이 '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찾아보니 저만큼 담장아래에 웅크리고 있었다. 병에 걸려 죽은 줄 알았던 별이가 나를 보고 죽을 힘을 다하여 찾아온 것이다. 한달음에 달려가 안고 와서 물과 사료부터 주었다. 평소 나와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덮석 내 품에 안긴 것이 고마왔다.
인간과 동물사이에도 이처럼 교감이 이루어 지는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열린사회를 만들어 가며 사는 것이 당연함에도, 우리는 왜 상생의 길을 가지 못하고 의혹과 불신으로 점철되어 사는 걸까?  어른이면 어른다워야 하고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면 가장다워야 하듯, 대한민국의 정사를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이면 집권당 다워야 한다. 집권당은 신사적인 야당을 만났다면 참 좋았겠지만, 쌈닭 같은 야당을 만났대도 상대를 보고 또한 나를 볼 줄 알아야지, 엄연히 국정파트너로 있는 다수석의 야당을 무시하려 한다면 그것은 욕심이고 정치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모든 일에는 나 하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오지랍을 한껏 넗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당이 여당다워야 야당도 스스로 여당을 닮아 갈것이다.  설혹 거대 야당이 야당답지 못하여 여당이 포용하려 하는데도 야당이 평행선을 간다면, 야당은 여론의 지탄을 면치못할 것이지만, 지금은 그 반대이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국민의 귀추에 맡기고 국정을 책임진 여당은 한결같이 집권당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구축할수 있을 것이다.  

요즘 여야 할 것없이 나랏 일을 하는 면면들을 보노라면 정말 낙심천만이다.  여와 야를 가정에 비유한다면 부부에 비할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야 간에 어찌 그리도 소통이 안될까? 소위 나랏 일을 한다는 여야가 전혀 소통이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다. 얼마전 나는 “국회 개원이래 초유의 ‘줄행랑’ 사태”라는 기사를 보았다. "여당과 장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 무시"라는 부제를 단 기사였다.  청문회가 시행되던 날 여당 의원들을 따라 나간 김행 후보자는 여당과 함께 청문회장에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여기서 '어처구니'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어처구니'란 '멧돌 손잡이'를 말한다. 다른 것은 다 준비됐는데 정작 손잡이(당사자)가 없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민의의 전당에서 소위 장관후보자라는 이가, 민의를 대변하고 있는 국무위원 자질을 검증하는 국회청문회에서 보인 행보는, 지극히 오만하고 무책임한 작태라 아니할수 없다.  야당이 성토를 하건 말건 임명권자는 무소불위의 대통령임을 믿고 행한 오만불손이다.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이 국무위원 후보자를 발탁하면 국회의 청문회에서 적정성을 심사해서 가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국회청문회의에서 후보자에게 부적합 결정을 내려도 대통령은 이와 관계없이 ‘임명을 강행’할 수도 있다.   또한 대통령이 후보자로 선정을 해서 그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에 불참을 해도 현행법상 어떠한 처벌도 할수 없다.  김행 후보자는 과거의 떳떳치 못한 행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변명의 한계를 느껴 무척 곤혹스런 처지에 있다가 입이라도 맞춘듯 여당의원들이 성토하며 퇴장하자 묻혀서 얼시구나 하고 청문회장을 빠져 나갔다. 아니 줄행랑을 한 것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6일 열린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진행 안내문에는 "후보자는 소재 파악이 안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행 여성 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파행으로 끝나게된 직접 원인은 김 후보자가 전날 인사청문회 도중 국민의힘 의원들을 따라 퇴장한 후 끝내 청문회장으로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단독 의결로 6일 청문회가 재개됐지만, 김 후보자는 연락두절한 채로 끝내 출석하지 않았다. 국민의힘도 덩달아 불참했다.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부하고 출석하지 않은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다.  그래서 초록은 동색이란 말이 있는가 보다. 집권 여당과 국무위원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 제도를 형해화했다는 비판이 있는 것은 자업자득이며, 특히 장관 후보자의 직무태만과 안하무인 태도의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무시가 그 배경일 것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이날 오전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재개했다. 권인숙 여가위원장은 텅 빈 후보자석을 바라보며, “후보자가 장관의 무게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드라마틱하게 청문회를 엑시트(exit)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지난달 14일 서울 서대문구 인사청문준비단 사무실로 첫 출근하며 여가부 폐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으므로 보다 (여가부 업무를) 잘 수행할 부처로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하겠다”고 한 것을 빌려 직격한 것이다.

민주당 여가위원들은 “김 후보자 줄행랑, ‘김행랑’ 사태”라고 비판하며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윤 대통령에게는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후보자 줄행랑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국회 헌정 사상 두고 두고 기록될 것”이라며 “국민들이 후보자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명약관화하다. 임명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두는 순간 국민들이 정부 여당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인사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국무위원 후보자를 처벌할 조항은 없다.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 모두 국무위원 후보자의 출석을 전제로 해 불출석 처벌 조항이 따로 규정돼 있지 않기때문이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도 국정감사(조사) 및 청문회에서의 증인과 참고인 불출석·국회 모욕·위증 처벌 조항만 있을 뿐이다.  민주당 여가위 간사인 신현영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김행 방지법 이라도 발의해야 하나 하는 비참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민주당은 김 후보자의 주식 파킹, 배임 의혹 등을 형사고발하는 방침을 검토 중이다.   김 후보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2013년 소셜뉴스 '위키트리 운영사' 주식을 백지신탁하는 과정에서 주식 파킹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2019년 공동창업자로부터 소셜뉴스와 소셜홀딩스의 경영권을 인수하며 퇴직금과 고문료를 공동창업자에게 주는 방식으로 정산 대금 일부를 지급하는 등 회사 돈을 지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인사 검증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도 이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장경태 의원은 전체회의에서 “주연은 김 후보자이지만 지명은 윤 대통령, 검증은 한 장관이다. 3인 모두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도 했다.정의당도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강은미 원내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비리 보따리를 숨긴 채 도망가는 인사를 장관으로 기용할 수는 없는 일일뿐더러 ‘싸우는 국무위원’을 주문한 윤 대통령 기준에도 자격 미달”이기때문에  “국민을 위해 엑시트하라” 고 일갈했다. 야당은 이를 부적격자로 규정하고 사퇴를 요구할 방침이다. 

윤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임명할 요량으로 그를 지명했지만, 사태가 이지경까지 왔음에도 임명을 강행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어제 오후 김행 후보자가 자진 사퇴를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의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후보자 임명을 무려 18명이나 강행해 온 사례가 누적되면서, ‘국회 무시’와 ‘여론 외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더구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국힘당은 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는 소식이다.  처음부터 무리수를 둔 자업자득이 아닐까?  이를 계기로 국가 통수권자는 국민을 국민답게 법을 법답게 야당을 국정파트너로 대할 때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수 있다.   무릇 지혜로운 용기는 자신의 오만과 무지를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해야 할지를 판단할 것이다.

[종그니 칼럼] 빛바랜 가정 교육.

대학교육(大學校育)의 사전(辭典)적 뜻은,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정치(精緻)한 응용 방법을 교수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陶冶)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최고의 학부를 일컫는다." 이 설명을 오늘의 대학에 대입하면, 이상적 표현이긴 하지만, 현실과는 지극히 거리가 먼 사변적으로 들린다. 오늘날 대학교육을 비롯한 모든 교육 방향이, 사전적 설명처럼, 인격을 도야하는 교육에서 한참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증손 자사(子思)는, 중국 전국시대 때의 인물로, 그가 쓴 대학(大學)에 이런 글귀가 있다. "지지위 지지 부지위 부지 시지야(知之爲 知之 不知爲 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당시 중국 전국시대는,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의 시기로, 군웅과 제자백가들이 쟁명하던 난세였다.

이와 거의 같은 시대였던, 고대 그리스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399)시대에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처럼, 소위 수많은 Sophist가 쏟아져나와, 그리스의 아테네를 급속도로 와해시키고 말았다. 소피스트들은 상류 가정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그 자녀들에게 논리학이나 수사학을, 처세학 또는 궤변(사변)론으로 가르쳐, 학문을 왜곡 변질시켰다. 이로 인하여 지성의 도시 아테네는, 급속히 쇠락해 지고 말았다.

춘추 전국시대 때에 공자가 있었다면, 그리스에서는 민주주의를 꽃피운 페리클레스와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같은 대철학자가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해, "나는 무지하다, 그러나 나는 무지하되 무지하다는 것만은 안다." 하여, "無知의 知"을 갈파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알아도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다. 지금 여러분은 그 위치에서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있는가? 진실로 알고 있는 것을 안다고 하기보다, 혹여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지는 아니 한가! 알기에 `안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상대를 헤아려 `아는 것`을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기에 "참 앎과 겸양의 바른 인격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초등학교 여학생이,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등굣길에 길가에서 채집한 야생화를 내밀며, 이 꽃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선생님은 한참 동안 꽃을 보시더니 말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 알아보고 내일 알려 주마."

이 여학생은 담임 선생님의 "모르겠다."말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이름 그대로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을 줄 알았고, 더구나 길가에 핀 야생화라, 더욱 쉽게 여겼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이번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채집한 꽃인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우리 학교 담임 선생님도 모른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소녀는 오늘 두 번이나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믿었던 우리 아빠도 꽃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소녀의 아빠는, 식물학 전공으로 그 분야의 대학교수이시기 때문이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소녀를 담임 선생님이 불렀다. 그리고는 어제 질문한 그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소녀는 아빠도 모르는 것을 잊지 않고 알려 준 선생님이 역시 대단하시다고 감탄했다. 그런데 사실은, 어젯밤 소녀의 아빠가 선생님에게 전화하여 그 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아빠는 그 꽃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딸아이가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은, 나라 미래에서 100년의 약속이다. 100년의 미래를 위해 100년의 세월을 준비하는, 길고 긴 과정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이다.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이 잘 연계되고 조화를 이루어, 가정에서는 스승을 존경하도록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면, 이상적인 "인성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참교육은 학생들의 머릿속에 인격의 씨앗을 심어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 이미 심어진 씨앗들이, 가슴속에서 잘 자라나게 해 주는 것이다."라고 일찍이 레바논계 미국인 칼릴 지브란(1883~1931) 이 갈파하였다.

어느 성직자가 고백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내내 머리에 머물러 있다가,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고백은 바로 나의 고백이다. 이처럼 진정 있어야 할 교육은, 가정교육에서부터 비롯한다.

학부모가 선생님의 멱살을 잡고 구타하는 사회, 학생이 선생님을 눈 아래로 보고, 조롱하는 불량한 학생들로 만들어 가는 가정교육, 호혜와 상생이 아닌 극단적 이기주의로, 위계질서가 산산이 무너져버린, 과잉보호가 만들어 낸, 빛바랜 사회가 되어 가고 있어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여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