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Hellen Keller)의 한국방문
세계 최초로 대학교육을 받은 시각(盲), 청각(聾), 언어(啞) 즉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3중 장애인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1937년 7월 11일부터 17일까지 당시 식민지 조선을 방문했다.
여기에는 기독교 단체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고, 언론의 홍보, 대중의 호기심이 작동했다. 그녀가 일본을 거쳐 부산에 입항하여 대구에서 특강하고, 서울에서 3회 특강했다. 그리고 평양 숭실대와 맹아학교에서도 “불가능이 없으니, 꿈을 가지라.”고 역설했다. 당시 헬렌 켈러가 7월 14일 경성의 고미술상에서 사무용 책상(Writing Desk)을 사 간 기록이 발견되었다.
그녀는 매번 특강에서 “장애인을 깨우치고, 여자를 차별하지 말고, 함부로 하지 말고 소중한 존재로 대우할 것”을 역설했다고 당시 신문과 언론 매체는 그녀의 조선 방문을 대서특필했다. 57세의 그녀가 도착하는 역마다 구름 떼처럼 군중이 모여들었다. 비서 탐슨의 입술과 목을 만지며 감촉으로 대화하며 헬렌 켈러는 연설했다.
특강하는 장소에 너무도 많은 사람이 몰려 입장표를 팔았는데, 말 그대로 입장표는 금새 매진되었다. 신명여학교 강당에 입추의 여지 없이 모인 사람들에게 “나는 보트도 저을 수 있고, 승마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장애인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 것을 역설했다. 그녀를 이토록 만든 것은 그녀의 가정교사 설리번 선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물리친 부활의 복음이었다. 복음이 이토록 그녀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다!
“내가 조선 옷을 한 번 입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오늘 아침 어떤 친절한 사람이 한 벌을 가져와 곧 입어보았는데, 어찌 좋은지, 나는 그 옷을 입고 춤을 추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시설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
‘행복은 귀와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가운데 참으로 들을 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에 심한 열병을 앓아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고 어둠과 적막 속에 남겨졌지만, 일생의 멘토이자 스승인 앤 설리번을 만나 말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사회사업가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다.
7월 11일: 부산 입항
7월 12일: 대구 신명여학교 방문
7월 13일: 경성 체류 및 강연
7월 14일: 경성 제류 및 강연
7월 15일: 경성 제생원 맹아부 방문
7월 16일: 평양 맹아학교, 맹아학원 방문
7월 17일: 평양역에서 안동역 거쳐 일본행
1880년 탄생한 한국의 성자
헬렌 켈러가 태어난 1880년에 태어나서 한국의 사회복지사업을 개척했던 인물로 오방 최흥종 목사가 있었다. 나환자와 한국사회복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광주1호목사가 되었다. 전남노회와 제주노회의 설립 노회장이었고, 광주중앙교회 개척 설립 목사였다.
또 지금은 여수에 있지만 1910년 광주광역시 봉선동에 한센인을 위한 한국 최초의 전문병원 애양원을 설립해서 1966년까지 돌보았다. 그리고 1937년 전남 고흥 소록도에 민관합동으로 5천 명 규모의 한센인 수용시설을 건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