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범】하나님에 관한 지식, 어떻게 가능한가?
최낙범 박사 (총신 교수, 오곡새순교회)
요즘 취직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대학을 나와도 직장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특히 이공계 출신들은 그런대로 취직이 되지만 인문계 출신들은 취직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실용학문만을 귀하게 여기고 실용학문전공자를 우대하는 시대적 산물이라고 본다. 이런 현실에서 신학이란 어떤 학문이고, 어떻게 가능하며, 학문으로서 가치가 있는가? 라는 질문은 의미 없는 질문처럼 보인다. 또 신학 하는 자는 시대를 읽지 못하는 바보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에게 신학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어떤 이는 목사가 되기 위해, 어떤 이는 교회를 잘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 어떤 이는 이단들의 잘못된 주장과 공격(κταηγορία)에 대해 기독교의 진리가 참 임을 변증(άπολογια)하기 위해 신학을 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지 간에 신학이라는 학문자체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신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을 때 바른 신학(개혁신학). 바른 목회가 가능하고, 잘못된 사상과 철학의 유혹과 공격 속에 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며, 바른 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신학이란 어떤 학문이고, 어떻게 가능하며, 배울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은 실용학문에 집중된 이 시대를 향해 던지는 매우 적절한 질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학 하는 자들에게는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면 신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이런 질문 앞에 어떤 이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신학이 일반학문처럼 학문의 대상이 눈에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눈으로 관찰되어야 하는데 관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히11:3하)는 진리를 모르고 가시적인 것만 존재한다고 보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신학의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인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이라는 대상이 엄연히 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신학도 일반학문처럼 학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말은 신학이란 학문의 대상이 우리의 인식과 지각 내에 있는, 즉 유한한 대상인 창조물의 일부가 아니라 그것들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므로 학문이 된다는 것이다. 단 두 학문 간의 차이는 주제가 다를 뿐이다. 일반학문이 유한한 창조물을 대상으로 한다면 신학은 무한한 창조주 하나님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신학이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최고의 학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배울 가치가 있는 학문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학문의 왕인 신학의 원리는 무엇일까? 이는 신학의 원리를 계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성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로서 일반학문과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일반학문의 원리를 보자. 일반학문은 인간이 태어날 때 생득적으로, 혹은 본유적으로 갖고 있는 자연이성을 의존하고 그것으로 대상(창조물 전체가 아닌 일부)을 직접 접근하고 관찰한다. 이때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학문의 대상이 반드시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 안에 존재해야 된다. 또 이성은 다른 사상을 학문의 대상에게 주입하면 안 된다. 결국 이렇게 할 때 학문의 대상으로부터 사물의 성질, 특성, 법칙이라는 지식을 순수하게 획득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인식의 주체가 자연이성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 자연이성이 주체가 되어 창조물의 일부에서 발견된 지식의 재료, 혹은 표상들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이성으로 사색하고 거기서 나온 여러 지식을 종합하고 체계를 세우므로 학문이 된다. 이것이 합리론이다. 하지만 이런 지식획득의 방법을 거부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이것이 경험론이다. 이것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성에 의존하고 사색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가공하기 때문에 대상이 가진 참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하고 경험할 때 비로소 참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의 의미는 경험론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먹어보고 손으로 만져서 직접 경험하여 얻은 지식이기에 참 지식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더 설득력 있게 보인다.
이를 놓고 I.Kant(1724~1804)는 이성과 경험을 절충한다(Johannes Hirschberger. 서양철학사 下, Tr. 강성위, 대구; 이문출판사, op.408. 1987.). 그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표상(재료)들을 이성이 사색하고 거기에 법칙과 질서를 제공하므로 지식이 성립된다고 하였다. 결국 그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지식을 현상세계에 국한하였고 그것을 넘어 가면 모두 사변이라고 정의(서철원 저, 신학서론. 총신대출판사. p.17. 2000)했다. 하지만 신학은 이렇게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지각들을 이성이 지식으로 구성하고 종합하는 방식으로 신지식을 추구할 수 없다. 이는 신학의 대상인 하나님이 현상계를 초월하여 계시기 때문이다. 이에 신학은 경험과학의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 즉 신학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지각들을 이성이 지식으로 구성하고 종합하는 방식으로 신지식을 추구할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신지식을 획득하면 그것은 경험과학이 되고 신학이 될 수 없다. 신학은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하므로 물리적세계의 지식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할 수 없다(서철원, op. cit. p.18).
그렇다면 신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신학은 어떤 원리로 해야 바른 방법인가? 그것은 이성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계시를 의존해야 한다. 그것도 특별계시인 성경계시를 의존해야 한다. 이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무한한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자기를 진열해 놓고 우리에게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과 목적이 제시된 계시를 주도적으로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아는 비결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성경계시를 의존할 때만이 가능하다.
결국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아는 원리는 특별계시인 성경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것도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신 계시만큼 알 수 있다. 여기서 만약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자연이성으로 하는 자연신학이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는 개혁신학이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일반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신지식을 획득할 수 없고, 그 대신 특별계시인 성경계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식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런 사실을 반박하면서 계시가 우리 인간에게 임할 때 인간이 내적으로 경험하고 체험한 그 사실로부터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을 아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한다. 그럴듯한 논리이다. 하지만 이것은 19세기 초엽 신학을 성경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 곧 종교경험에서 출발하여 신학을 구성(서철원, op. cit. p.21)하려 했던 근대 신학자인 Schleiermacher(1768년∼1834)의 신학개념으로서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적 경험이나 체험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알려면 주관적인 경험에서 찾으면 안 된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성경계시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바른 신학원리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시를 어떻게 받아야 하나? 계시를 논증으로 받으면 안 되고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그것은 이 믿음이 논증 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 게 해 주고, 하나님의 성경계시로부터 확실한 신지식을 얻게 해 주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계시를 믿음으로 받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 그의 사역, 그의 성품, 그의 구원을 성령을 통해 알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학은 하나님을 직접 대상으로 하지 않고 계시를 직접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믿고 의지하므로 하는 학문이지 이성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 즉 계시수납의 손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성의 역할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엇을 알게 될 때 인식의 방법과 기능이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제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성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이성적이어야 된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의 내용을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합리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이해를 못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신학을 할 때 이성은 배제되지 않고 참여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계시를 믿음으로 받을 때 자연이성을 중생이성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또 계시를 믿음으로 알게 된 지식들을 중생이성이 인식하고 사색하게 하신다. 이때 이성은 자신의 입맛대로 사색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계시를 따라 사색하고 그것을 성령의 도움으로 이해하며 재생산하게 된다. 즉 이성은 독자적으로 사색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계시에 의존해서 사색하고 이해하게 된다. 또 중생이성은 이렇게 사색하고 이해하므로 인식된 지식들을 학문이 되게 하려고 한 주제 아래 통일된 신지식체계로 구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성이 계시에 순종해야 된다. 즉 계시가 주장하고 요구하는 대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신앙생활에 필요한 신학지식을 얻게 된다. 결국 믿음은 계시를 받는 손이요, 이성은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식을 가져 오는 수송수단이 된다. 이런 점에서 계시는 객관적 신학원리요, 믿음과 이성은 주관적 신학원리가 된다. 따라서 신학은 일반학문처럼 자연이성으로 사물을 직접 접근하고 탐구하는 방식으로 하면 안 되고 창조주가 주신 계시(성경)를 믿음으로 받고, 그것을 중생이성으로 사색한 다음 그곳에서 하나님지식을 획득하고 그것을 체계화시키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바른 신지식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이다. 먼저 하나님의 존재란 자연이나 짐승, 그리고 사람에게서는 찾을 수없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지식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영원세계에서 내신적 계시를 통해서 본성적으로 성부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필연). 즉 하나님이라는 본체에 3위가 존재하신다는 것이다(존재론적). 그다음 그렇게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지)은 시간세계에서 성부 하나님이 피조세계의 창조(비필연), 성자 하나님이 죄로 부패한 피조세계의 구속, 성령 하나님이 객관적으로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을 택한 자의 마음과 삶에 적용하신다는 지식이다(경륜적), 결국 이렇게 일하시는 삼위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세계를 떠나지 않고 다스리고 보존하면서 종말까지 자신의 창조세계를 완성해 가신다는 지식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실을 바로 이해해도 신학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누가 신학을 해야 되는가이다. 아무나 신학을 하면 안 된다. 신학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철저히 죄를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신학을 해야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신학을 하면 안 된다. 만약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신학을 하면 인간이성을 절대 신뢰하고 신학을 하기에 하나님이 없는 종교학을 만들고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자유주의 신학을 만들게 된다.
결국 이런 점에서 볼 때 신학은 누구나 하면 안 되고 십자가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해야 한다. 또 신학은 사회에서 일이 잘 안되니까 하면 안 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 해야 한다. 또 신학은 세상나라 보다 하나님나라가 크게 보일 뿐 아니라 그 나라를 위해 부름 받은 자가 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바른 신학(개혁신학), 바른 목회, 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생을 살 때 실용학문만 학문이라고 고집하며 실용학문을 통해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겠다는 성공 일념에 빠진 자연인처럼 살면 안 된다. 우리는 주어진 생을 살 때 모든 학문의 본질인 신학을 통해서 만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생을 살 때 신학을 통해서 발견한 하나님나라를 비전으로 삼고 그 나라가 구현되기를 소망하는 하나님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최낙범 박사(총신교수, 새순교회): 중앙대학교 철학과 졸업(B.A), 총신대신학대학원 및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Th.M), 숭실대학교 대학원 졸업(Th.M), 미,Kernel University 대학원 졸업(Th.D), 총신 조직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