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신학박사 남궁혁

故 양국주 선교사 유고

2025-02-01     리폼드 투데이

남궁혁 박사는 우리나라 목사로 맨 처음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프린스턴 신학교를 거쳐 유니언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곧장 평양 신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우리가 현재 읽고 있는 개역 성경 번역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목회를 하지 않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예수교장로교 총회장에 취임했다.

평생 말없이 교회와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이었다. 그런 그가 6.25 전란 중에 공산군에 붙잡혀 이북으로 끌려갔다. 생사를 알길 없는 처지라 우리는 그가 순교했으리라고 지레 짐작만 할 뿐이다.

남궁혁 박사는 원래 전라도 목포 세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풍족한 자리와 안정된 생활을 던지고 선교사들을 따라 광주로 옮기면서 부인은 과일장사를 하고 남궁혁은 장로 일을 보면서 신학을 했다. 타고난 어학실력에 성실함까지 갖추었던 그가 1923년 광주 금정교회(지금의 광주제일교회, 유진 벨 선교사가 세운 광주 최초의 교회)를 끝으로 신학자의 길로 들어선다.

프린스턴 신학교 지하 수장고에 묻혀있던 사진더미에서 남궁혁 박사 내외의 결혼식 사진을 만난다. 아마 1910년 무렵이었으니 자그마치 100년의 세월이 지났다.

우리 시대 믿음의 처음 사람이었던 소래교회의 김윤방의 맏딸인 김함라가 그의 천생배필이다. 상해 임정의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 박사의 부인인 김순애와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 역시 바로 손아래 동생이요. 서서평을 도와 우리나라 여전도회를 이끈 김필례(오방 최흥종 목사 제수)가 나이는 아래였지만 그래도 고모였다.

복되어라 두분...한국 교회의 아픔이요....진주같은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