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진칼럼】미/ 나/ 리/
가끔씩 고국의 산야에서 자라는 향긋한 나물을 먹고싶을 때가 있다. 별 것도 아닌것 같지만 조국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들에게는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조국이라는 뿌리가 있는 디아스포라에게서 볼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지난 가을 머리 깎으러 다니는 단골 미장원 아줌마가 손님 가운데 미나리를 기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였다. 미나리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혹시 미나리 모종을 얻을 수 있을까 넌즈시 물어보았다. 아줌마가 한 번 알아보겠노라고 희망적인 대답을 하였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미나리 모종 얻어다 놓았다고 가져가라는 반가운 소리다. 얼른 미장원으로 달려가 미나리 모종을 얻었다. 그러나 농촌에서 농삿일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미나리꽝을 보기는 했지만 어떻게 기르는지는 몰랐다. 전라도 화순이 고향인 눈치 10단 미장원 아줌마가 집에서 미나리 기르는 법을 조곤조곤 알려주었다.
그 녀의 말을 혹시나 한 마디라도 떨굴까보아 귓속 깊숙히 담고 집에 돌아왔다. 우선 넓적하고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에다 보드라운 흙을 깔았다. 그리고 가축 분뇨로 만든 마뉴어(manure)라고 하는 거름을 섞어놓고는 물을 넉넉히 채워놓았다. 물이 넘쳐지 않도록 위에서 손가락 한 마디 쯤에 군데군데 구멍을 내었다. 그리고나서 미나리 뿌리를 나누어 심어놓았다. 햇빛 좋은 앞마당 한 켠에 놓고는 호기심을 가지고 날마다 들여다 보았다. 물이 풍부하고 햇빛이 좋으니 미나리가 금방 자라올라왔다.
파릇파릇 자라나는 미나리를 바라보면서 미나리향이 가득한 음식생각이 났다. 속담에, 급하기는 돼지꼬리 잡고 순대 달라고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제 마악 자라 올라오는 연두색 미나리 잎을 바라보면서 머리 속에는 미나리를 넣은 음식이 생각났고 입 속에는 군침마져 돌다니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슬며시 났다.
그렇게 혼자서 생각만으로도 즐거워하던 어느 날, D day H hour에 미나리 절단작전에 돌입하였다. 가위를 들고 과감하게 미나리를 잘랐다. 그리고 오징어를 데쳐서 여러가지 야채를 썰어 가진양념에 무쳐먹으니 진하고 향긋한 미나리향이 얼마나 고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지 행복감이 물씬 몰려왔다. 고국에 있을 때도 원래 미나리를 좋아하였다. 부산 영도 바닷가에서 자란 내가 좋아하는 생선탕에 미나리를 듬뿍 넣어 먹으면 얼마나 좋았던가? 향긋한 미나리향이 비린내도 잠재우고 한결 입맛을 돋우곤 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돌아왔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시카고의 추위가 예전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추위가 몰려오면 한 추위하는 동네다. 위도상으로 시카고는 국민학교 시절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동네라고 배웠던 중강진과 같은 위도이다. 첫 한파가 몰려왔던 지난 주 미나리는 집 안으로 피한(避寒)을 왔다. 물이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 안에 넣어서 집안에 들여놓았다. 집에서 가장 따뜻한 한국에서는 보일러실이라고 부르는 아래층 퍼네스룸(furnace room)앞에다 놓았다.
따뜻하고 물도 충분하니 미나리는 더욱 잘 자랐다. 그래 따뜻하고 물이 충분하면 미나리는 잘 자라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렇게 미나리를 키우면서 고국에서 보았던 미나리꽝 생각이 났고 미나리가 들어간 음식, 특히 좋아하는 생선매운탕이 생각났다. 미나리와 생선은 궁합이 참 잘 맞는 식재료이다. 이렇게 미나리는 내 속 깊이 숨어있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처럼 싱싱하고 대도 굵은 실한 미나리가 아닌 그저 여릿여릿 자라며 나도 미나리입네 하는 가느다란 미나리를 보면서도 행복해 하는 내 모습이 어떤 장면과 오버랩 되었다.
뜬금없이 몇 년전 보았던 영화 미나리가 떠올랐다. 한국사람들 보기가 힘든 미국 남부의 농촌에서 정착하려는 자식의 가정을 도와주려는 한 여인을 그린 영화 미나리 말이다. 미나리 영화에 주연으로 나왔던 배우 윤여정이 실수로 농장을 불태워먹은 후 실날같은 삶의 희망을 다시 찾은 것이 농장 한 편에 있는 시냇가에서 미나리를 키우려고 했던 마음이었지 않았나? 물이 있고 따뜻하기만 하면 어디서라도 잘자라는 미나리는 어쩌면 우리네 삶과 비슷하지 아니한가?
미나리 모종을 구해준 미장원 아줌마의 말이 생각났다. "미나리 줄기가 죽은 것같아도 뿌리는 살아있응께 버리지 말고 냅두면 봄에 다시 올라와요." 그래 뿌리가 살아있으면 되는 것이다. 뿌리라는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