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실력 논쟁이 주는 생활속 교훈

살인의 추억이 호평일색인 이유

2024-10-14     최미리 기자

이소룡이 강한가 약한가? 이소룡 VS 성룡, 둘 중 강자는 누구인가?

아마 이 주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한번씩 해봤던가 아니면 적어도 갑론을박하는 것을 봤다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화두에 올라있으면서도 오랫동안 결론이 나지 않고 ,찬성과 반대가 비등하며 또 한국인들은 뭐가 싸운다는 주제로 논쟁아닌 논쟁 벌이길 좋아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VS논쟁은 아직도 인기있는 논쟁 주제 중 하나인데 얼핏 보면 할 일 없어 키보드 자판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논쟁거리로 치부하기 쉽다. 허나 의외로 이소룡 논쟁은 단순 '열기'만 강한게 아니라 꽤 집요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소룡의 강함을 주장하는 쪽도 집요하고, 이소룡의 약함을 주장하는 쪽은 '강하다'는 주장보단 기세는 떨어지지만 맞붙으면 결코 쉽게 물러서진 않는다. vs논쟁 중 백미인 호랑이VS사자는 열기는 강한데 논제 자체가 좀 쪽팔려 일시적으로 불붙고 말고, 불붙고 마는 형식이다. 그에 반해 이소룡이 쎄냐 안쎄냐는 논쟁은 한번 불붙으면 잘 안꺼지는 특성까지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열기도 강하지만 수준은 차마 높다할 수 없는 이런 논쟁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시대배경과 미성숙한 인식의 여파가 우선적 기초라고 생각된다. 이소룡은 다들 알다시피 1973년에 사망했고 70년대 인기배우 중 하나다. 이때는 마침 TV와 영화 등이 활성화된 시기이고, 당시 TV나 영화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것에서 문제는 비롯된다. 지금이야 이연걸이 효도르보다 쎄다고 할놈 없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화 속 모습이야 다 가짜라는걸 당연 상식으로 인지하고 있는 시대가 지금시대니까 그렇다.

그런데 이게 과거에도 그랬냐면 그게 아니라는게 문제다. 70년대가 아니라 80년대까지만해도 극중 악역을 맡았던 사람은 계란 세례를 얻었다고도 하고, 또 영화속에서 강한놈은 실제로 강한놈처럼 인식되는게 과거의 인식수준이기에 그렇다. 지금의 인식수준이야 TV따로 실제따로 완전 괴리되었다고 여기는것과 달리 TV와 영화가 막 활성화 될 말랑한 시점에서는 영상과 실제에 대한 인식이 그리 뚜렷히 구분되진 않았다. 이는 결국 영상매체가 발생하는 초창기에서의 성숙하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영화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종의 '착각'이라 간주할수 있고, 이런 특성은 '이소룡 허접설'을 지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문제는 이게 또 단순 미성숙한 인식에 의한 '착각'이라고 간주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 악당이 진짜 악당이라 악당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 쵤영기술은 지금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게 문제다. 지금이야 촬영하려면 대역에 CG에 가상의 그래픽을 창조하여 몸치도 무술인으로 변장시키는게 일도 아니지만 70년대는 이게 어불성설이었다. 고로 무술영화 찍으려면 배우도 무술을 당연히 아주 잘해야 한다는 결론이 성립한다. 특히나 빠른 펀치, 강한 킥등이 상대에게 꽂히는 모습이야 연출이지만 실제 능력이 없으면 이런 동작의 촬영도 불가능한 시절이었기에 이런 면모는 이소룡이 영화배우일지언정 실제로도 강했다는 점으로 뒷받침되어 '이소룡 강자설'을 지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여기까지 이소룡 강자설과 약자설이 대립하는 그 첫번째 라운드다. 두번째 라운드로 이소룡이 약하다는 입장은 그저 영화배우고 그 당시엔 영화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괴리되지 않았으므로 별 볼일 없다는 관점, 이소룡이 강하다는 입장은 그 당시 영화와 현실이 괴리 되지 않았으므로 실전능력이 없었으면 영화를 못 찍었다는 관점이 있다. 두가지 관점이 팽팽히 탐색전을 하는 와중에 아무래도 이때 이소룡 허접설이 우세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짜로 강하면 격투기 선수를 하지 영화배우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고, 실전능력이 있어야 한다해도 진짜로 엄청 강할 필요까진 없이 영상에 걸맞는 능력만 있음 충분하기 때문이다. 고로 영상촬영에 필요한 능력치의 요구량은 그런 절대적 강함에는 훨씬 미달할 수 밖에 없다.

이연결만 해도 진짜로 강한가?는 해당없지 않는가. 또한 이연걸까지 갈 필요도 없이 성룡은 그와 비슷한 시기에 극중에서 좋은 몸놀림을 보여주는 자였다. 그러나 성룡을 누구도 그렇게 강하다 주장하지 않는다. 어느정도의 실전능력이야 있겠지만 격투기 선수급의 무도인으론 봐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80년대엔 이소룡vs성룡 논쟁이 호랑이vs사자처럼 번졌었지만 지금은 막상 이소룡과 성룡을 비교하는 사람 없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소룡은 배우냐 무도인이냐 분분하네 반해 성룡은 명백히 배우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간단하게 논쟁이 마무리 되는 듯한 인상이나 앞서 말했듯 이 포인트는 그저 시작점이자 탐색전이다. 탐색전은 그저 이소룡 허접설이 우세하게 진행되었지만 2라운드는 전혀 다른 논점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이 바로 근육이다. 영화와 실제 미구분에서 나온 각기 다른 해석은 아무래도 이소룡 허접설을 보다 강하게 뒷받침하게 되다보니 이소룡 강자설을 주장하는 쪽은 논점을 바꿔 이소룡의 근육을 토대로 이소룡이 강함을 입증하게 되었다.

이 작업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여 탐색전에서의 밀림을 다소 만회하는 성격까지 띈다. 근육에 강함의 '이미지'가 깃든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이소룡은 분명 일반 몸과 두드러진 몸을 보여주긴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문제가 생긴다. 영화와 실제 영상의 구분상황에서만 인식의 성장이 있는 게 아니라 근육에 대해서도 인식의 성장이 있게 되었다. 근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그냥 몸에 줄 쫙쫙 가있으면 근육질이라 여기기 쉽지만, 근육에 대한 안목이 생기면 저건 데피네이션이고 말라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근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니 이소룡의 강함을 내세우고 입증하려 했던 이소룡의 몸은 되려 약함의 증거로 되는 양날의 칼로 돌변한다. 왜냐하면 근육은 몸에 있는 줄이 아니라 크기와 벌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근육에 대한 인식이 변해 애초 이소룡의 강함을 증명하던 이소룡의 '몸'은 되려 약함을 증명하게 되고, 여기에서 '이소룡 강자설'은 꽤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꼬리를 말긴 그렇기에 궁여지책으로 나온게 두가지 설이다. 하나는 압축근육설이고, 또 하나는 '광배근만 최강설이다'. 압축근육설은 그 명칭이 알려주듯 이소룡이 빈약해 보이나 근육이 죄다 압축되서 밀도 높은 근육이다보니 보다 높은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원천이다. 그렇기에 벌크근육은 가짜근육이고 이소룡의 압축근육이 진짜 근육이라는 주장이 이에 속한다. 허나 이런 압축근육설은 너무 급조된 티가 나서 아무래도 초딩이상이면 사실 취하기 어려운 설이다. 말그대로 압축근육이 진짜라면 근육의 크기가 아닌 애초부터 압축성으로 표현해야 합당한데 최초 주장형태는 그것도 아니지 않았는가? 더구나 이 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일반 보디빌더들도 다 수분까지 빼버려 보여주는 압축근육이라는 점이다.

위의 근육도 무슨 부풀은 근육이 아니라 지방과 수분까지 싹 빼고 순수 결정체의 압축된 근육사진이 저런 것인데, 압축근육이라 더 강하다면 위 사진 속 주인공은 이소룡 10배정도 되는 전투력을 보여야 마땅한데 그렇다곤 보기 어렵다. 위 사진속 주인공 보기엔 위협적이어도 사실 싸움도 잘 못한다. 고로 압축근육설은 사실 상종할 필요도 없고 검증되지도 않은 초딩수준 가설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자 뒤이어 나온 것은 '이소룡 광배근 최강설'이다. 펀치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근육은 '광배근'인데 이소룡이 다른 부위 근육은 없어도, 광배근 만큼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광배만 엄청 벌크업하고 나머지는 근육이 없어서 스피드가 빠르니 남들보다 3배 쎄다는게 이론이 그에 해당된다. 

이정도 수준이면 이소룡이 어떤 강자의 면모를 갖춰서 강하다는 것을 내세우다기보단 이소룡을 강하게 만들려고 이론을 창조하는 수준에 가깝다. 펀치의 강함은 격파나 실전에서의 능력으로 보일 문제지 광배근 크기로 보이려는 것 자체가 문제고, 광배가 커서 펀치가 쎄면 광배괴물 도리안에이츠는 스치면 사망수준은 보여야 한다.

과연 광배가 커서 펀치가 강하고, 또 광배가 크고 다른 근육은 없어서 펀치가 강하다는게 말이나 되나? 사실 이것도 앞서 본 압축근육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초딩수준의 급조된 설이라고 보인다. 이런 2라운드에서의 근육을 토대로한 논쟁은 슬슬 이소룡강자설의 억지주장으로 종결되는 듯하나, 이 불씨는 라운드만 바꿔 다시 새로운 논점으로 진행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소룡의 수련과정을 보임으로 진짜 강자라는 것을 뒷받침하게 되는 관점들이다.

단순 배우와는 달리 이소룡은 이렇게 수련에 시간투자하는 무도인으로서 자세를 지녀서 그냥 일반 배우와 차별화되고 그렇기에 진짜 강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과연 이 이후 논란은 있을까? 없을까? 희한하게도 이 3라운드에 해당되는 새 논점인 '과정조명'의 자세로 접근하자 논리측에선 시종일관 계속 유리했던 이소룡 허접설이 한풀 기세가 꺽이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이소룡 강자설을 뒷받침하는 과정조명이 보다 완성된 논리가 있어서일까?

의무부호 붙이며 질문처럼 내던졌지만 '과정조명'이 논리적 완성도가 높아 대응이론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유인 즉, 싸움은 전적으로 입증하지 '얼마나 훈련했냐'로 전투력을 측정하진 않기 때문이다. 훈련하는 모습만 보면 허접 3류권투선수도 세계최정상급 선수로 보일수 있고, 링에 나가떨어져 이제 한물 갔다고 평가듣는 효도르도 훈련 모습만 보이면 아마 곧 전성기 기량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소룡은 아무리 과정을 보여도 가장 중요한 '결과'가 없기에 강함을 증명할래야 할수 없는 운명이다. 고로 이소룡의 훈련과정을 공개로 강함을 주장하는 건 그런 헛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는 또 이소룡이 결과는 없는데 과정만 있다는것에서 이소룡 싸움질 논쟁은 단순 키보드 시간낭비 이상의 의미를 담게 되기에 이르른다. 과정에 집중하면 그 사람에 대한 몰입과 이해도가 커져 낙관이나 완화된 평가를 내리기 쉽고, 결과 위주의 판단방식은 엄격한 평가가 되기 쉽다는 일반법칙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제 전투력이 얼마인지 모르는 북한은 아래처럼 맨날 차력인지 훈련인지 분간도 안되는 훈련 '과정'을 보임으로 자신들의 강함을 과시하려 한다.

과정에 집중하면 매몰찬 평가가 어렵고, 결과에 치중하면 엄격한 평가만 되기 쉽다는 일반적 법칙은 이소룡 논쟁 말미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그렇기에 훈련하는 모습등으로 이소룡의 강함을 설명하는 방식은 논리적으론 하자가 있더라도 굳이 이 헛점을 공격하여 논파하려 하는 현상이 안보이게 되었다. 결국 과정중심 시각은 이해를 이끌어내는 힘을 갖추고 있다는것이다. 허나 과정에만 집중하면 지나친 과대평가가 이뤄지고, 엄격함이 사라져 물러지기 쉽다. 결과를 모른채 공부하는 모습만 보는 부모가 자식을 과대평가하게 되는건 이런 특성에서 나온다. 또한 결과만 알고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모르면 지나치게 엄격한 평가 일변도라 과정속에 담긴 각자의 노력은 결과속에 무시되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에 성적표만 보고 판단하는 부모는 자식의 심리를 이해할래야 할수가 없고 늘 성적중심의 무리한 목표치를 요구하다 갈등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가장 공정한 평가는 과정과 결과 둘다 고려해야 완성된 평가가 가능하고, 과정을 보면 물러진다는걸 스스로 인지한다. 결과만 보면 지나치게 엄격할수 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여 이해와 엄격함 속에 양자 균형을 맞춰야만 바른 평가이며, 어떤 평가든 항상 이런 밸런스는 기본으로 깔아야 한다. 

살인의 추억이 호평일색인 이유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각자가 다른 대답을 내놓기 쉬운지라 딱 찝어서 이야기하긴 어렵다. 다만 질문을 다소 바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가 뭐냐한다면 그래도 종전 질문보단 대답하기 수월할 것이다. 전자는 자신의 평가인데 반해, 후자는 객관적 반응도에 대한 평가이고, 이건 객관적 지표 등으로 설명하면 쉽게 답에 도달할 수 있다. 아마 상당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로 뽑을만한 것'이라는 질문에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을 꼽을 것이다.

그렇기에 올드보이가 재미있네, 살인의 추억의 재미있네 이런 논쟁으로 호랑이가 쎄냐 사자가 쎄냐 논쟁즐기듯 난리치기 십상이다. 허나 살인의 추억이 재미없다는 반응 자체는 사실 그닥 보지 못한 것 같다. 과연 이 영화가 재미있을만한 구석은 있는지 따져본다면 그것부터 매우 의문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기준을 토대로 볼때 살인의 추억은 아래와 같은 문제점들이 노출된다.

첫째 : 일단 살인의 추억의 최악의 문제점은 스토리가 진부하다. 이 영화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기반으로 구성된 내용인지라 애초부터 참신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실화라고 밝히고 들어가는 것에서 이미 창작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거기서부터 비굴하게 '실화니깐 재미없어도 봐달라'라고 애교떨고 엄살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고로 실화임을 밝히는 영화의 노림수는 재미있으면 영화탓, 재미없으면 실화라서라는 변명을 깔고 들어가기에 벌써 도망갈 구석부터 만들고 시작한다.

둘째 : 실화를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보충하며 극적으로 꾸밀 수 있음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 가령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미제사건인데 이것을 나름 작가의 상상력을 덧입혀 다른 이야기로 꾸밀수 있다. 그런데 살인의 추억이 과연 그런 부류로 볼수 있는 영화인가? 이미 뉴스로 보여준 것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셋째 : 영상미가 전혀 없다. 다 아는 스토리더라도 이것이 스토리만 있을 때와 영상으로 구현되었을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말로만 듣던 것을 영상으로 보고 싶은 것은 대다수 지닌 욕망이라 할수 있고, 이런 건 상상속 스토리를 영상으로 얼마나 잘 구현했냐가 관건이다. 대표적 예로 각종 소설과 사극 등을 영화화한게 해당된다. 그런데 살인의 추억은 시대 배경 자체가 현대와 가까워서 이런 게 들어갈 여지가 없음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도대체 왜 대작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넷째 : 최대 문제점은 이입대상이 없다. 통상 영화의 집중과 몰입은 그 영화 속에 누구에 이입하냐에 따라 갈리기 쉽다. 살인마를 피해 도망가는 여성에 이입된다면 그 여성이 닥친 위기에 이입되서 각종 공포등을 느끼기 쉽고, 살인마를 잡는 형사에 이입된다면 범인을 잡으려 함에도 잡지 못한 형사의 안타까움이 느껴 그 이입으로부터 재미를 느끼기 쉽다.

허나 이 영화는 마치 어떤 본문 글에 달린 빈정대는 댓글 느낌이라 이입대상 자체가 없는 게 특징이다. 굳이 따지면 송강호가 주인공이라고 하나 심리묘사같은게 드러난 것도 없고, 범인은 형사인지 누군지도 알길 자체도 없기에 이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기다 애초 불특정 다수로 출현하는 사람이 피해자라 피해자에게 이입되기도 어려운 등, 영화자체가 집중되기 매우 어려운 구조이다. 이와 대조할만한 영화는 추적자인데, 추적자도 나름 유영철사건을 극화했다고 하나 살인의 추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어 작가의 상상력으로 보충한 부분도 있다. 도망가는 여성과 잡는 형사에 이입되어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살인의 추억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영화로서 가치는 살인의 추억은 추격자를 한참 하회한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 이입대상이 없다보니 주인공 심리묘사같은 것도 전혀 볼수 없다. 차라리 다큐라면 모를까 이건 시종일관 관객을 극중인물과 거리 둔 관찰자로 두는 다큐형식이면서도, 다큐처럼 심도 있지도 않다. 내용은 다 아는 것이고, 영상미는 부실하며, 도무지 장점이라곤 볼래야 볼수 없는게 문제다.

보다시피 살인의 추억은 재미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매우 의문스러운 영화고, 기본적인 몰입조차 안되는 영화가 이렇게 한국에서만큼은 호평일색이라는 것에 심각한 의구심이 든다. 영화로 볼땐 낙제 수준이고, 차라리 사건을 디테일하게라도 다뤘으면 궁금한 이야기 Y수준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궁금한 이야기 Y에서 화성연쇄사건 다루면 되려 그게 더 흥미있는 연출이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단언컨데 살인의 추억은 영화가 아니라 돈낭비 공해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호평일색 이유는 뭘까.

첫째 : 이 영화는 숨겨진 상징과 분석 놀이로 인해 대작으로 재조명 받은 케이스다. 영화라는 건 상영관에서 한번 보고 몰입 잘되서 잘 기억나고 동화되려고 만든다. 불법다운로드 받아 곰플레이로 돌려보려고 만든 것 자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슨 봉테일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별칭달고 훈장이라도 되는 양 자만하는 듯하다. 사실 영화에서 주요 내용말고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들 속에서 내용 외에 주변부 상황을 일일히 따져보는 것 자체가 주의력 결핍증 환자가 아닌 이상 웃긴 것 아닌가.

시야는 A에 집중하면 B가 안보이고, A에 집중하면 B가 안보이게 되는 구조가 사람의 인식구조이다. 그런데 이런 주요촛점에서 벗어난 곳에 그것도 영상에서 디테일을 부가했다는 것 자체가 정신병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애초 이 영화가 스크린 상영포기하고 불법다운로드와 돌려보기를 노리고 만들어졌다면 모를까 스크린에 개봉했으니 문제지 않은가?

둘째 : 그러다보니 이 영화는 사실 세로드립이라는 놀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영화 내용은 형사가 범인 못 잡고 헤매는 깝깝한 내용인데, 주변장치를 통해 디테일한 상징들로 군사독재를 비판했다며 그게 참의미라고 하는 것의 사고회로 자체가 세로드립과 별 다를게 없다.

세로드립이 뭔가? 가로로 봐도 세로로 봐도 별것도 아닌 내용인데 통상 가로보기만 하는 습관을 이용해서 세로줄마다 의미를 숨겨놓은게 새로드립이라는 유치한 놀이지 않는가? 멀쩡한 정신이 있으면 유치해서 안하는 방식인데 웃긴 건 이같은 세로드립을 '천재'라고 하니 그 황당함은 매우 크다. 고로 봉준호를 천재 운운하는건 세로드립 해놓고 천재 운운하는 부류들과 다를 바 없다. 이 세로드립을 즐기는 사람들 수준에 맞는 세로드립 영상버전 살인의 추억이 나왔으니 저 영화를 대작으로 칭송하는것 아닐까.

셋째 : 나름 애국자 코스프레 심리도 한 요인으로 본다. 사실 군사정권 독재 비판할려면 애초 공식적 내용이 군사정권을 영상으로 다뤄 비극을 전달하는 것으로 해야지, 세로드립으로 군사정권 비판하는 건 비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방식이 통용되는 이유는 뭐냐? 독재는 바로 억압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현실이 억압되었으니 세로드립으로 비판한다는 결론으로 도달되는데, 사실 지금 상황에서 군사독재비판은 3살짜리도할수 있다. 굳이 저렇게 비판이라 보기조차 어려운 질낮은 왜곡된 비판을 하며 가상의 '억압'상황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볼수 있다. 억압이 있어서 억눌린 상징적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억눌린 상징적 비판을 통해 억압을 상정하는 선후가 뒤바뀐 미친 삽질이 결정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억눌린 비판으로 현존하는 허구의 억압을 이끌어내서 결국 억압에 저항하는 애국자나 투사에 본인은 빙의되었다고 주접떠는게 저 방식이다. 저건 정상적 사고방식으론 볼수 없으며, 유감스럽게도 한국엔 저런 정신병자가 많아서 거기에 휩쓸려 살인의 추억이라는 거품을 양산했다고 본다.

넷째 : 한국의 자칭 영화비평가들은 책 읽은 내용을 글에다 쏟아내는 걸 즐기는 자들이다. 책을 읽고 그걸 자신의 어휘로 소화해서 자신의 지식의 근육을 찌워 파워를 높이는게 아니라, 소화도 안되는 책들을 읽고 언제쯤이나 책읽은 티낼까나 골몰하는 자들이 영화평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휘를 자기방식으로 편하게 소화하기보단 책에서 익힌 어휘가 소화되는 것을 막아 단어를 쓸 기회만을 노리다 쓸때없이 영화비평같은 것에 사정없이 목구멍에 손가락 넣고 어휘 오바이트질 해서 역겨운 글 경연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영화평론장 양태다.

먹은 걸 소화시켜 에너지화하면 힘은 늘지만 뭘 먹은 티는 안나지만, 이게 소화를 막고 토악질을 하면, 뭘 먹었는지 증거처럼 잘도 튀어나온다. 고로 얼마나 비싼거 먹었는지 과시하려고 토악질 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가 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과시하려고 어휘 토악질이나 하는 게 영화비평가란 부류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영화비평에도 책 읽은 흔적을 냈다라고 일종의 표식을 내는 경연장이 되고 있는데, 이 부류들의 글 보면 글 경연장이 아니라 한마디로 오바이트 경연장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환영받는 영화는 그 당시 보고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말할거리 많이 만들어주는 영화고, 살인의 추억은 그런면에서 말할거리는 많은 영화다. 그것을 두고 이들은 '재미'라 부르고, 이걸 한번보고 습득해서 그냥 내용 그대로 전달하고 몇시간 즐겁게 보내는 그런 재미와 구분하여 '고상한 재미'라고 하는 것 같다. 이쯤되면 가히 신급이라 보인다. 그렇기에 이 영화비평가들은 말할거리 많이 만들어준 영화에 재미있다는 훈장과 더불어 대작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에 이르르고 그 결실로 살인의 추억은 대작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물론 앞서 나열한 이유들은 하나하나 어이없는 사유들이지만 ,이런 이유로만 살인의 추억이 부당하게 대작 취급받았다곤 보지 않는다. 즉 재미없는 개그에 웃어주는 헤픈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왠만해선 웃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영화에도 헤프게 재밌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까다롭게 굴어서 재미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히 가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재미있는 영화의 기준이 헤픈 사람이 살인의 추억을 재미있다고 해준 것이면 그러한 메카니즘으로 인해 호평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살인의 추억이 진입장벽 낮은 사람들의 호평이 모여 이룬 것이냐면 그건 또 아니다. 한국은 지금 재미없거나 쓰레기같은 것도 이러한 공작질로 좋게 평가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물론 살인의 추억이 저런 방식으로 조장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 건 재미 요소자체가 없는, 희한하게 대작 평가를 받고 세로드립 수준의 헛짓들이 대작으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자리잡아 희대의 거품 망작이 나왔다는 건 확실하다.

저런 영화가 대작 취급을 받는 이상 그것은 한국의 영화는 정말 볼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의 반증이며, 또한 평점가가 얼마나 못 믿을만한 부류인지를 더불어 반영하는 부분이라 본다. 해외에서 평가가 낮은 이유도 사실 간단한데, 저런 세로드립수준의 영상보고 천재라고 자뻑하는 건 지능있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하기 어려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저런 영화가 대작 취급받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문제는 저거 하나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에 심각성은 한층 더 크다. 살인의 추억에 대한 추억이라 제목을 썼지만 사실 오바이트의 추억이라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유감스러운 점 한가지는 ,이게 추억으로만 그칠게 아니라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