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결기고】제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문 평가
Ⅰ. 들어가는 말
제4차 국제로잔이 2024년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란 주제로 개최되었다. 제4차 국제로잔의 동기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선교적 격차와 기회를 해결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협력 이니셔티브[주도권]의 가속화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동기에 힘입어 이들은 “2019년 로잔4 여정을 시작했고, 2024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4차 세계복음화대회로 그 절정을” 이뤘다.
이들의 최종 목적은 이번 대회를 기반으로 삼아 “2050년에 열방의 제자화와 교회의 형성을 향한 지속적인 경청, 모임, 협력 행동을 포함하는 이 여정에 전 세계 교회를 초대”하는 데 있다(로잔운동, “홈피”, 2024년 9월 23일 검색).
그러므로 제4차 로잔대회의 「서울선언문」은 지난 50년 동안 발표된 「로잔 언약」 (1974), 「마닐라 선언」(1989), 그리고 「케이프타운 서약」(2010)보다 더 신중하게 작성하였을 것이다. 「서울선언문」이 로잔대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견고하게 확립하는 선언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개혁주의적 복음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제4차 로잔대회의 「서울선언문」을 평가하려고 한다. 평가 대상은 현재 주요한 이슈로 떠올라 있는 성경관과 종교다원주의 및 동성애(성혁명운동)에 관한 내용이다.
Ⅱ. 종교다원주의와 성경관
1. 종교다원주의
제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문」은 종교다원주의와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로잔운동이 종교다원주의나 종교혼합주의에서 자유로워진 것으로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서울선언문」의 서론에 “로잔운동은 지난 50년 로잔 언약(1974), 마닐라 선언(1989), 케이프타운 서약(2010)의 안내 지침을 따랐다.”면서 “제4차 로잔 대회 서울선언은 이전의 대회 문서들을 온전히 확언”한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잔운동은 2010년에 발표한 「케이프타운 서약」의 “타종교인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기.”에서 “우리는 타종교인들에 대해 민감하기 원하며, 그들을 억지로 회심시키려는 어떤 방식도 거부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개종은 타종교인들을 ‘우리처럼’ 만들고 ‘우리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하거나 ‘우리의 교파에 소속하도록’ 강요하려는 시도이다.”라 함으로서 복음전도를 개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슬림, 힌두교인, 불교인, 그리고 다른 타종교인들과 우정을 나누지 못한 것을 회개한다.”는 내용은 종교혼합주의에 문을 열어 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케이프타운 서약」이 “우리는 바울이 회당과 공공장소에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과 논쟁을 벌였던 것처럼, 타종교인들과 대화를 위한 적절한 장소를 모색한다. 기독교 선교의 합법적인 방법인 대화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과 함께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주장을 경청하려는 태도와 결합된다.”고 선언한 것은 성경의 의미와 배치된다. 사도 바울은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만났을 때 그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인정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로잔운동이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를 용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서울선언문」이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케이프타운 서약」을 따르기로 확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성경관 신학
제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문」의 성경관은 신정통주의 신학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선언문」의 성경관은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는 제하의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서울선언문」은 복음을 “우리가 살고 전하는 이야기”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복음은 일종의 공식이나 일련의 종교적 사상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이야기”라 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다양한 청중에게 복음을 전했고, 우리는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것이 바로 사도들과 역사적으로 수많은 기독교인이 우리가 살아가며 전하는 이야기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유이다.”고 했다. 「서울선언문」은 계속해서 “우리가 지역 교회에 모일 때, 우리는 만물의 참된 이야기인 복음을 살고, 연습하며, 기억한다. 우리는 예배에서 은혜로운 그 이야기의 저자와 그의 업적을 송축한다. 우리의 존재, 실천, 그리고 선포를 통해 우리는 땅 끝까지 복음의 이야기를 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은 다양한 인간 저자와 문학 장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위해 한 백성을 선택하신 이야기를 통일되고 일관된 증언을 구성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므로 교회의 성경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모으고 다스리는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오류가 없다. 성경은 전적으로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교회의 삶을 위한 최상의 규범이다.”고 했다. 또한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통일된 이야기, 즉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절정에 이르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서울선언문」의 성경관 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경과 복음을 역사가 아닌 이야기로 취급하고 있는 점이다. 이야기가 무엇인가? “20세기 문학평론가 허먼 노스럽 프라이(Herman Northrop Frye)는 이야기가 희극, 로맨스, 비극, 풍자의 네 가지 원형에서 나온다”(위키백과, “이야기”, 2024년 9월 25일 검색)고 했다. 우리는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란 말을 알고 있다. 여기서 호랑이는 참이지만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는 것은 허구이다. 이처럼 이야기는 허와 실이 공존한다. 그런데 「서울선언문」은 복음을 이야기라 하고, 성경을 이야기로 규정하면서 “교회의 성경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모으고 다스리는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오류가 없다. 성경은 전적으로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교회의 삶을 위한 최상의 규범이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의미라면 자기모순이다. 하지만 성경은 무오(無誤, inerrancy)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무류(無謬, infallibility)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라면 자기모순이 아니라 「서울선언문」의 성경관 신학을 잘 드러낸 문장이다. 이러한 성경관은 루터, 츠빙글리, 칼빈, 그리고 정통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성경관이 아니다.
Ⅲ. 동성애(성혁명운동) 신학
「서울선언문」의 동성애 산학은 「케이프타운 서약」에 없는 성경적 바른 신학을 언급한 점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서울선언문」은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섹슈얼리티”, “성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란 제하에서 성적 지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는 섹슈얼리티(sexuality, 성적 지향성)에 대한 왜곡을 탄식한다. 우리는 개인이 우리의 창조성과 무관하게 젠더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한다. 생물학적 성(sex)과 성별(gender)은 구별될 수 있지만, 분리할 수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인간 창조의 고유한 사실로서, 문화권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때 표현하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성별 유동성(gender fluidity, 상황과 경험에 따라 성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이 유동적이라는 주장)이라는 개념도 거부한다.
그런데 이어진 “동성 성관계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란 제하에서는 “기독교인은 유혹에 저항하고 욕망과 행동 모두에서 성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성경의 주장은 동성애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애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하여,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을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과 동일한 시각으로 보도록 유도하였다. 즉,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듯이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정상이 아니냐는 의미를 심어주고 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동성에게 끌리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인식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우리의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음을 회개한다.”고 했다.
이 말은 그동안 교회가 동성에게 끌리는 사람도 성령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임을 인식하지 못한 무지함을 회개하라는 말로 들린다. 또한 이 말은 동성애자나 젠더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형제자매이니 그들에게도 교회에서 전도사,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의 직분을 주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것이 「서울선언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부당성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Ⅳ. 나가는 말
상기에 살펴본 바와 같이 제4차 로잔대회의 「서울선언문」(2024)은 1974년의 「로잔 언약」, 1989년의 「마닐라 서약」, 그리고 2010년의 「케이프타운 선언」과 신앙과 신학에서 있어서 차이점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추가로 「서울선언문」 “결론”에 기록된 “오 하나님, 우리를 도우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란 내용 역시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된다.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다보스포럼과 올림픽의 결합체, 복음주의자들의 축제인 ‘2024 서울·인천 제4차 로잔대회’가 지난 9월22일 개막했다.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 (Let the Church Declare and Display Christ Together)’ 는 주제로 인천 송도 컨벤시아센터 메인홀에 모인 200여개국 5000명 참석자들이 모였다. 로잔대회는 지난 9월 28일까지 열렸다.
선교를 지향하는 로잔대회는 대회 기간중 서울선언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이들은 역시 개혁주의가 아니고 복음주의 진영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들은 복음주의자들로서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다.
이번 서울로잔대회 선언문 69항.70항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평가하지 않고 있다. 즉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옹호한 나머지 동성애가 하나님 앞에 죄라는 사실을 규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옹호하면서 동성애 자들의 죄악성을 지적하는 자들의 행위를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더 나아가 동성애자들의 죄악성을 지적하는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68항에서는 동성애자들끼리의 성행위를 죄악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동성간의 성행위를 인권이고 행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창조원리인 이성간의 결혼을 통한 성행위를 무시하고 동성간의 성행위를 합리화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리폼드투데이 신학팀>
2024 서울-인천 제4차 로잔대회
-한국로잔 목회자 콘퍼런스 개최와 목사 명단
마이클오 총재(국제로잔) ,
브라이언채플 박사(커버넌트 신학교 명예총장),
이규현 목사(KWMA이사장, 수영로교회, 합동),
이재훈 목사(로잔대회 공동조직위원장, 온누리교회),
유기성 목사(한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선한목자교회 원로),
주승중 목사(한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주안장로교회),
최성은 목사(한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지구촌교회),
문대원 목사(한국준비위원회 총무, 대구동신교회, 합동),
한기채 목사(한국로잔위원회 부의장, 중앙성결교회),
최형근 교수(한국로잔위원회 부의장, 서울신학대학교),
한철호 선교사(한국로잔위원회 부의장, 미션파트너스),
길성운 목사(성복중앙교회, 합동),
김경진 목사(소망교회),
김형준 목사(동안교회),
박노훈 목사(신촌성결교회),
박영호 목사(포항제일교회),
안광복 목사(청주상당교회),
이인호 목사(더사랑의교회),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정명호 목사(혜성교회, 합동),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로잔대회는 빌리 그레함 목사와 존 스토트(성공회)가 주축이 되어 1차 로잔대회를 스위스의 로잔에서 실시한 것이 오늘날 제4차 로잔대회로 온 것이다. 현재 로잔대회 참가자 40% 정도는 WCC 가입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