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진칼럼】한 교회를 통하여 보는 미국교회의 추락상
하영진 목사, 시카고 거주, 총신대학교 및 총신신대원(79회)
*들어가는 글
케냐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안식년을 맞아 시카고 북쪽 디어필드에 위치한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로 선교학 공부를 하러 왔었습니다. 일단 코스웍을 끝내고 다시 돌아가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는 동안에 누군가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한국의 후원교회들에 저를 음해하는 편지들을 보냈습니다. 누군가에 의한 정치적 장난은 결과적으로 후원교회들이 후원을 끊게되었고 계속적인 선교사역에 차질을 빗게되었습니다.
따라서 암울한 여건과 경제적 상황 아래서 시카고 지역에 머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한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왔었고 불가피하게 이민목회를 하게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좀 특이한 교회였습니다. 자기네들 사이에서 소위 로얄 패밀리라고 일컫는 대구 경북대 의대 출신 의사들의 기득권층이 단단했습니다. 일부 장로들은 목회자의 설교권과 담임목사로서의 인사권마저 좌지우지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설교는 그런대로 괜찮으니 자기들 말만 잘 들으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주겠다는 노골적 제안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 교회를 벗어나 뜻이 맞는 분들과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몰튼 그로브(Moton Grove)라는 백인 중산층들이 사는 동네에 아담한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들어 있던 이 미국교회를 통하여서 미국교회가 무너져가는 상황을 서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전통적인 개신교회 전성기.
이 교회는 주로 백인 중산층들이 모이던 교회였습니다. 70년대 80년대에는 교세가 컸던 교회였습니다. 장년성도들이 5백명 정도 모였었고 주일학교 학생들도 수백명이 모이던 지역 복음화를 이루었던 부흥하던 교회였습니다. 돌로 지은 아담한 교회당 건물을 지녔습니다. 강단 후면 전체 벽에는 당시 교회 성도중 조각가였던 성도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를 형상화한 하얀색 석고 부조(릴리프)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카펫이 깔려있는 바닥에는 스팀 파이프 난방이 되어있어 밤에도 겨울에도 기도하기 참 좋은 환경을 지녔습니다.
둘째, 교회 정체기.
무엇보다도 당시 담임목사였던 마이클 윈터스(Michael Winters) 목사가 호의적이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다소 리버럴한 경향이 있었으나, 인격적으로는 참 좋은분 이었습니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 미 공군으로 춘천에서 복무한적이 있는 한국을 잘 알고있는 목사님이라서 저희를 기꺼이 받아주었고 월세도 형식적인 액수만 받았습니다. 그리고 밤에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주고 교회 전체 열쇠도 주었습니다. 가끔씩 저를 불러서 대화도 하고 점심도 함께 나누는 온화한 성격의 목회자였습니다. 두 교회 성도가 함께 식사를 하며 친교하는 행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춘천에서 복무할 당시 용산 8군 사령부로 일을 보러올 때면 트럭을 타고 비포장 도로를 털털거리며 거의 6시간 정도를 왔었다고 하면서 발전된 한국 뉴스를 보고듣고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도 하였습니다. 비어있던 사택(manse)에 들어와 살라고 하기도 하고 참 친근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교회 성도들도 저와 한인교회 성도들에게 형제와 자매처럼 대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연령대가 노령화 하면서 교회가 정체되었고, 정체를 지나서 침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에게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의 교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자기는 미국인을 위한 목회를 하고 저에게는 한인 목회를 하면서 행정과 재정의 통합을 시도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한인 성도들이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아주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런 통합 논의가 진행되던 중 윈터스 목사가 목회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셋째, 교회 침체기.
윈터스 목사 떠나고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는 여자 목사였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바로가 이집트의 왕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핍박을 받기 시작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전개 되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우호적인 분위기는 사라졌습니다. 모든 관계가 딱딱한 사무적인 분위로 변했습니다. 우선 그동안 형식적으로 내었던 교회 사용료를 시가로 계산하였습니다. 그러니 사용료가 이전보다 3배로 대폭 인상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사기 사용 등 사무실 이용을 제한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들 마음대로 교회를 사용하던 것도 우선 신고와 허락제로 바뀌었습니다. 드디어 재정적으로 교회 운영이 어렵다고 토요일에는 필리핀 안식교회에다 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밤에 기도하러 오던 것도 눈치를 볼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저희들에게 교회를 떠날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더 많은 렌트비를 내는 안식교회에게 자유로운 사용권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8년간 예배드리고 기도하여왔던 교회당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별다른 의논도 없었던 일방적안 결정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8년간 기도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달려갔던 기도처소가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하루도 예배당에 가서 밤기도를 빼놓지 않았던 사모인 제 아내가 가장 가슴 아파 하였습니다. 기도처소가 사라진 것은 저희 부부에게 영적으로 큰 도전이었고 상처가 되었습니다.
넷째, 교회 종말기
이 후 그 지역에는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들려오는 소식은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교회 부임하였던 마이클 윈터스 목사는 암으로 소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에게 아주 사무적으로 까다롭게 대했던 여자 목사도 교회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 교회에 여자 동성애자인 퀴어 목사가 부임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 사람은 백인여성이고 파트너는 흑인여성인 레즈비언들이고 누구 딸인지 입양인지는 모르는 딸 한 명이 있는 퀴어목사가 담임목사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영적으로 구역질이 났습니다. 이제 교회의 사명에 암울한 조종이 울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섯째, 교회 사망선고
두어 달 전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희가 예배드리고 기도하던 장소 몰튼 그로브 커뮤니티 교회가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는 황당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주 전 일부러 그 동네에 가보았습니다. 아담한 교회 건물과 주차장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코너에 있는 표지석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Morton Grove Community Church 글자가 있던 곳이 Morton Grove Islamic Center라는 글자로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일이 바로 내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맺는 글
미국의 건국은 1920년 영국에서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신앙 박해를 피해서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청교도들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륙으로 건너 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 청교도(Puritans)들을 미국인들은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 순례자)'라고 부릅니다.
성경적 복음으로 무장한 순례자들은 대륙에 정착하면서 복음대로 살려고 노력했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의 순수한 신앙은 미국의 건국정신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1774년 미국이 영국으로 독립하였을 때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들이 제정한 헌법에도 그 정신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정교분리 정신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알고있는 것과는 반대입니다. 교회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정치와 정부가 교회를 간섭하는 것을 배제한 것입니다.
그리고 25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청교도 정신, 건국의 아버지들의 정신을 다 잃버렸습니다. 그동안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들 중 이슬람 국가에서 온 무슬림들에게 사회가 휘둘리고 있습니다.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자들에 의하여 기독교 신앙이 훼파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 정신이 빠져버리고 미국 교회가 그 인본주의적인 흐름을 막지 못하자 교회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교회의 몰락은 너무 심각한 현상이라서 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오래전 북 아프리카 리비아 해안가에 자리잡고 지중해를 오가는 상선들을 공격하던 이슬람 바르바리 해적을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정복하였습니다. 그 후 미국 건국의 아버지요 제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은 후손들에게 이슬람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고 경고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지금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을 닫는 교회를 무슬림들이 사들여서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모습들 중 하나 입니다.
인권과 평등, 다양성, 포괄적 기회 균등, 차별금지라는 단어를 앞세우고 교회와 신앙을 무너뜨리는 자들에 의하여 교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권을 잡은 민주당에서는 노골적으로 교회와 기독교 신앙을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공공기관과 대학교와 기업에 DEI 정책을 우선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 DEI는 Diversity(다양성), Equity(평등성), Inclusion(포괄성)을 의미합니다. 이 정책은 노골적으로 무슬림과 흑인, 여자,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 소위 사회적 약자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용하고 승진시키라는 악법입니다. 주류 교단도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DEI 정책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필자가 알고있는 한 교회, 중산층 동네에 자리잡은 지극히 전형적인 미국교회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서술하였습니다. 단 20년 사이에 교회는 교회 본연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더니 드디어 문을 닫고 이슬람교 사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교회건물을 다른 용도 사용할수도 있고 자선단체나 소수민족 교회에 양도할 수도 있는데 이슬람교에 팔아넘겨 버렸습니다. 이슬람은 이제 약자가 아닙니다. 공세적으로 미국을 점령하려는 침략자입니다.
저는 이 교회를 통하여 미국교회의 앞날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역교회들이 몰튼 그로브 교회의 전철을 밟아갈 것입니다. 미국교회들만 그럴까요? 한국교회도 전개과정의 차이만 있지 교회문을 닫는 빈도가 점점 늘어갈 겁니다. 사람에게 촛점을 맞추지 않고, 다음 세대 신앙교육에 투자하지 않고, 건물이나 땅에 투자한 교회들은 결국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경쟁적으로 예배당 건축, 기도원 구입, 교회 묘지 구입에 헌금을 쏟아부은 결과가 어떤가요? 기도원에 기도하러 오는 성도들이 줄을 잇던가요? 교회묘지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묻혔나요? 그런 외형적 자산축재가 그리도 중요하던가요?
유럽의 기독교는 이미 무너져 내렸다는 평가들을 합니다. 그래도 미국에는 아직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지역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감리교 장로교 회중교회 등 역사성이 있는 주류교회들은 동성애와 포괄적 포용정책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제는 어느 교단에도 속하지않은 독립교회(non-denominational independent church)가 성장하고있으며 이들 교회에서는 성경적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은 교단의 횡포와 교권주의자들의 타락상이 심합니다. 목회자들 개인들의 물욕과 명예욕이 극심하고 성적인 타락상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특별히 목사들은 정신차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통회자복해야 합니다. 껍데기가 아닌 속사람이 변화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날이 멀잖았습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