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문제되는 지점과 해결책

2024-05-20     리폼드 투데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교육만큼 골머리를 잡게 했던 분야가 없다시피 했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방, 통일, 경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질적 문제가 교육이라 할 수 있는데, 교육정책은 근본적은 두가지 딜레마 속에 놓여지게 되는 운명을 지닌다. 첫째는 교육은 많이 시키면 좋다는 것이고, 최대한 많이 시켜야 하는 게 교육정책의 목표다. 둘째는 교육을 많이 시킬수록 교육의 문제점이 극도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교육은 많이 시키자니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고, 또 교육의 문제점에 치중하여 교육을 덜하자니 불안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는게 오늘날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딜레마가 발생하는 이유는 교육열이 낮아서라는 보기 드문 답안을 제시한다. 한국은 기괴할 정도로, 아니 극도로 교육열이 낮은 국가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낮은 교육열이 높은 것처럼 인지되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모두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제일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 하지 않는가? 하지만 단언컨데 이것은 결코 착각이다. 진짜 교육열은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 가져야 할 '교육열'이기 때문에 그렇다. 허나 이것은 극히 낮고, 부모가 자식에게 주입하려는 교육열은 높아 무리한 주입이 이뤄지는게 지금 교육이 문제되는 현상이다. 즉 이런 기괴한 역설적인 현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스스로의 내적 교육열이 너무 낮은데 반해, 교육열이 높다고만 생각하여 처방을 마련하려니 저런 딜레마적 현상이 도출돠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열이라는 부분부터 상식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 정답이다보니 한국의 교육은 꼬일래야 꼬일수 밖에 없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인데 공부는 싫어하고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교육은 항상 '공부는 싫은 것인데 얼마나 억지로 견디느냐' 의 역량에 따라 성취도가 갈리는 것처럼 인지되는게 한국교육의 현실이다. 어차피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게 공부이다보니, 억지로 시간을 늘리는데 주안점을 둔다. 그렇게 억지로 잡아두니 능률은 떨어지고 시간이 더 필요한 악순환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서양은 나름 흥미와 취미 속에 스스로 내적 개발 욕구로 인해 정진해나가나, 한국은 서양의 그것에도 미치질 못해 뒤떨어지는 현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도대체 그토록 교육열이 높고 대학생은 그렇게 많다면서 한국에서 나오는 이론은 무엇이고 나오는 학설은 무엇인가? 학문의 성과는 그렇다쳐도 한국에서 이론이 안나오고 있다니 이건 무슨 교육이라고 해놓고 뻘짓거리나 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기에 '교육열'부분에서 부모 주도하에 자식 머리에 깔때기 꽂고 지식 부어주기 식 교육이 진행된다. 웃긴 건 부모가 부어주는 지식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다는 것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니 얼마나 만족하게 투입되었는지의 '지표'를 필요로 하게 되고, 여기서 '석차중심'의 교육이 발생하게 된다. 자식이 얼마나 알아들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똑같이 남의 자식과 비교해서 그 등수로 주입된 양을 측정하겠다는 무식한 발상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런 병폐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범대상이 한석봉의 어머니다. 한석봉 일화가 어떠했는가? 한석봉이는 어릴 때 나름 글씨 잘 쓴다고 까불다가 어머니의 떡썰기 신공에 멘탈이 박살나서 다시 서당에서 글쓰기에 정진 후 성공한 일화지 않는가? 사실 이런 경우 한석봉이는 어머니의 장난에 당한 것이라 보는 게, 원래 칼질은 안보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불끄고 썰어도 별로 상관없다. 그런데 글씨는 안보고 쓰면 당연히 흐트러지지 않는가? 즉, 불끄고 떡썰어 더 난이도 있는 것을 몸소 보여줌으로 자식의 학구열을 불태우게 한 것이다. 즉 한석봉 어머니의 일화는 알고 보면 자식을 골탕먹이는 아줌마의 심술어린 귀여운 트릭이라고 보는 게 맞다. 다만 이게 역사가 오래된 사건이다 보니 과대평가 받고 엄숙하게 받아들여져서 저런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훼이크에도 지금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주목할 부분은 별도로 존재한다. 그 주목할 부분을 나열하면 첫째로, 자식을 혼내려 했다기보단 자식의 '내적동기'를 불태우게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요즘 같은 부모는 자식이 뭔가 마음에 안들면 만득이 귀신처럼 끝까지 따라다녀 24시간 통제모드로 잡으려 하지 않는가. 물론 중요한건 한석봉 어머니의 교육은 자식의 내적 욕구를 자극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높이살 부분이 있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 자식의 상태를 남의 눈을 빌리지 않고 파악했다는 점이다. 만약 한석봉 어머니가 요즘 시대처럼 훈장이 주는 성적표를 토대로 판단했으면 그냥 자식 궁둥이 뚜들기고 끝나서 어찌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한석봉 어머니는 자식의 상태를 '직접'자기 눈으로 판가름해서 자식의 내적동기를 돋구는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이렇듯 한석봉 어머니의 가장 큰 성공포인트는 자식의 내적동기를 일깨웠다는 점에 있지만, 재수가 좋아서 일어난 일이지 늘 그게 가능할 수는 없다. 지금 시대 사람들이 가장 본받아야 할 점은 자기자식의 상태를 외부의 눈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왜냐면 작금 한국의 엄청난 병폐가 항상 외부의 눈을 빌림으로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이 맛탱이 가는 것도 결국 국민들이 자기 눈을 잃고 언론의 눈만 빌려 속편하게 언론이 떠드는대로 현실을 인식하다보니 이 지경까지 오게된 것 아닌가?

자식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파악하면 무리한 교육은 다시 못 시킨다. 어차피 내가 할줄 아는 내에서 가르치는게 고작일텐데 무리한 교육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부모의 상황은 어떤가? 자식보다 무식한 건 기본이자, 자신보다 무조건 더 배워야 한다는 일념 하에 자식 뇌에 학원, 과외, 학교, 인강이라는 지식의 깔때기를 꽂고 사육되는 프랑스 거위마냥 들이붓는다. 뭘 붓는지도 모르니 그동안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뒀는지 '성적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자식을 자기눈으로 직접 파악하여 가르침을 준 케이스라면 한국은 애초 그 케이스는 아예 무시하고 성적표에 의존하는 것이 당연한 교육풍토로 자리잡았다. 그 사이 애들은 머리에 박힌 깔때기가 버거워 교육거식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성적과 시험은 애당초 '목표'개념은 될 수 없다. 목표는 오로지 '앎'이다. 시험때 알았다가 시험 이후 까먹는건 지식적인 측면에서 정말 아무 쓸모 없다. 그런데 한국사회에 권장되는 것은 무엇인가? 시험때 알았다가 시험이후 까먹는 것이 필요한가? 아니면 시험 때는 몰랐다가 시험 이후 아는 것이 필요한가? 한국은 시험자체가 목적이 되어 시험 때 알았다가 시험 이후 까먹는 걸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국 교육은 지식보단 시험성적을 택하게 되었고, 애초 시스템이 이러하니 위조학력자도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 없는 자는 일시적 암기 위조로 자신의 앎보다 성적을 뻥튀기 시키고, 돈 있는 자는 기록 위조로 자신의 앎보다 성적을 뻥튀기 시킨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결국 자식의 상태를 자기눈이 아닌 성적표를 토대로 파악하려는 선택적 무지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현상이다.

1. 자기눈을 잃게 만드는 악성질병이 이미 교육에서 비롯된다. 교육 자체가 자기눈 실종의 연쇄기 때문이다. 부모는 성적표를 통해 자식의 성취를 파악하고, 기업은 학교의 성적표와 학교 네임벨류에 따라 신입사원의 능력을 파악하려 한다. 때문에 교육은 교육 자체의 필요성 보단 품질 등급표 역할을 수행하느라 존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와 같은 세태는 자기눈 실종 사태의 주범이 되었다.

2. 통합보단 갈등 분열의 사태를 교육이 불러일으켰다. 내 옆의 친구는 친구이기 전에 성적표상으로 경쟁자이다. 결국 모르는 것은 서로 알려주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게 하기보단 내가 아는 것은 상대가 몰라야 하는 분열 갈등 사고방식을 교육이 심어주는 것이다. 애초 교육의 목표는 성적이 아닌 지식인데, 지식은 간과되고 성적이 우선시되다보니 나오는 부작용이다.

3. 지식에 대한 갈망 대신 구토만을 유발하게 되었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 평생을 정진하게 하기보단 억지로 깔때기 꽂혀 주입되다보니 지식이 역류하고, 3줄만 넘어가면 읽지 못하는 지적 권태감을 선사하게 되어 결국 무식한 국민을 선도하는 교육이 되었다.

4. 교육자체가 사람의 역량을 늘리기보다 역량을 가리고 억누르는 억압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결국 지금 현실의 문제인 자기눈의 실종, 불필요한 갈등조장, 지적권태감등은  애초 교육자체의 문제점이 심각해 거기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교육은 일시적 기간 동안만의 임무가 아닌, 평생 해나가야 할 것임을 인지하도록 인식변화를 이끈다.

2. 교육이 취업이나 어떤 즉각적인 가시적 산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 이론과 학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이론과 학설이 늘어나면 국가경쟁력은 반사적으로 증진되는 것이지 국가 경쟁력 늘린답시고 가시적인 것을 집착하다 교육의 참 목표인 학설과 이론을 등한시하고 있는 게 지금 꼴이다.

3. 교육은 부모가 평가 할 수 있는 만큼 한에서 자식에게 가르치는 게 옳다. 부모가 아는 것 이상을 가르치려 들 때 이는 결국 깔때기 꽂은 프랑스 거위신세에 돌입하게 된다.

4. 석차를 없애버린다. 과목은 오로지 논패스와 패스만 있게 해야 한다.

5. 시험 때 알고 평생 모르는 것은 불필요하고, 시험 때 모르고 평생 알고자 교육하는 것임을 확실히 재무장한다.

이상의 해결책은 나름 지금 교육이 문제가 되는 부분의 해결책이고, 전부는 아니지만 이정도만 확실히 지켜도 교육의 문제점은 상당수 해결할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결국 한국의 문제도 자기눈 실종상태에서 언론이 사기쳐서 오는 것이고, 한국의 교육도 성적위주로 변형된 교육열이 형성되어 생겨난 악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교육이 계속 이러하다면 지금의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수 있다는 것이고, 또 지금의 문제가 다 일거에 해소되면 교육의 문제 또한 해소될 길도 열어준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나라의 위기는 결국 교육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닌 수준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