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지극히 높으신 약속, 지상약속(至上約束)
본문: 마태복음 28장 20절 하 반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명령(至上命令)을 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 상반절에서 다 끝냈다. 그런데 왜 20절 상 반절로 문장을 끝내지 않고, 콜론을 사용하여 20절 하 반절을 카이(κα: 그리고)와 이도우(ἰδο: 볼지어다.)라는 단어를 쓰면서 붙여 놓았을까? 대부분은 지상명령에 붙어 있는 사족(蛇足)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크게 잘 못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예수는 이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모든 사역의 총 결론을 내린 부분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사용된 이도우(ἰδο: 볼지어다)는 give attention please, 즉 “주시하시오!”란 뜻으로 신약에는 187회 나온다. 이 말로 시작하는 말씀은 긴장해서 살펴보고 꼭 알아야 한다는 경고다. 그러기에 저는 이 마지막 말씀을 예수의 지극히 높으신 약속, 지상약속(至上約束)이라고 한다.
여러분이 믿는 여러분의 하나님 이름을 아는가?
기독교인의 하나님 이름은 신약성경 헬라어(Greek)로는 “에고 에이미(ἐγ εἰμι)”이다.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묻고 답한 곳은 꼭 한 곳에 있다. 출애굽기 3장 13절에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 조상들의 하나님 이름을 물었을 때, 14절에 하나님은 즉시 대답하셨다. "I ΑΜ ΤΗΑΤ Ι Α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했다. 히브리어로 표기하면 에흐예흐 아쉘 에흐예흐(היחא רשׁא היהא)인데, 영어로 “I ΑΜ ΤΗΑΤ Ι ΑΜ”이고 우리말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되었다.
헬라어로는 에고 에이미(ἐγ εἰμι)인데 예수가 친히 4 복음서에서 결정적일 때 몇 차례 자기를 친히 에고 에이미(ἐγ εἰμι)라고 하며, 자기가 하나님임을 나타낸 적이 있다. 그러나 에고 에이미(ἐγ εἰμι) 부분을 영어로 번역할 때 “I AM. 나는 나다.”로 번역하지 않고 “I AM he: 내가 그니라”라고 번역하였기 때문에 고유명사인 이름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의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예수가 에고 에이미(ἐγ εἰμι)로 말씀하신 문장은 “내 이름은 에고 에이미(ἐγ εἰμι), 곧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8장 20절 하 반절에도 예수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ἐγ εἰμι)”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마지막에 자기가 곧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선언하시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 임마누엘(Ἒμμανουλ: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약속하시고 마태복음을 끝내셨다.
이 임마누엘(Ἒμμανουλ)의 약속은 예수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최대의 복된 약속이다. 사실 마태복음은 1장 23절에 임마누엘(Ἒμμανουλ)로 시작하여 28장 20절에서 임마누엘(Ἒμμανουλ)로 끝난 임마누엘(Ἒμμανουλ)의 복음서이다. 이 부분을 번역하면, “주시하여 보라!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매 순간 너희들과 함께 한다.”라고 종지부로 끝냈다.
예수는 명령하신 후, 주로 그 즉시 그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적인 약속을 하셨음을 본다.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예수는 “그리하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했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명하신 예수는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하셨듯이,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라.”라고 하신 후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한다.”라고 약속하셨다.
만약 우리 성도님들이 이 짧은 마지막 약속만 바로 깨닫게 된다면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나, 성도들, 심지어 선교사들도 이 약속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젖먹이 아기에게 어머니의 함께 하심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듯 성도들에게는 예수의 함께 하심이 그 모든 것이다. 이 약속을 그대로 믿고 살았던 옛 성도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다. 사실 신구약의 총 주제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함께하심(임마누엘)이다. 예수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 이 약속은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려고 떠나는 성도들에게 주신 최대의 능력이고, 힘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 이보다 더 확실하고 큰 약속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성도에게 이보다 더 크고 현실적인 약속은 없다. 이 약속을 참으로 깨닫은 그 날부터 성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꼭 이 약속의 위대함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 약속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알고 살아야 한다.
A. 이 약속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이 약속은 단순하다. 성경 말씀 그대로 “나, 예수가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항상 함께한다.”이다. 동행, 동거한다는 것이다.
B. 이 약속은 무슨 뜻인가?
사실은 그 약속 속에 예수의 인격과 예수의 사역 전체가 있다. 몇 가지만 살펴봄으로 예수의 함께 하신다는 이 약속이 얼마나 엄청난 약속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가 함께하신다는 이 약속은 예수가 지금 우리 속에 성령 하나님으로 오셔서 함께 계신다는 것인데, 이 약속은?.
첫째, 예수가 항상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이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했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가 우리 안에 계셔야 과실을 많이 맺는다는 약속이다.
둘째,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나를 성전 삼으셨다는 약속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다. 예수가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 성도는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우리 성도는 성전으로써 거룩한 삶을 산다는 약속이다.
셋째, 예수가 항상 나와 동거하신다는 약속이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 문만 열면 예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지내신다는 약속이다. 예수가 풍성한 정식(dinner)을 항상 마련하시고 우리와 같이 식탁의 교제를 늘 나누며 동거한다는 약속이다.
넷째, 예수는 일평생 한 번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는 약속이다.
히브리서 13장 5절 하 반절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우리는 양처럼 제 길로 가고 예수를 떠나려고 하는 때가 있으나 예수는 우리를 절대로 한 번도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신다는 약속이다.
다섯째, 나에게 향한 예수의 사랑하심이 영원하시다는 약속이다.
로마서 8장 38절-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했다. 우리를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영원히 보호하신다는 약속이다.
여섯째. 나에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약속이다.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아무 걱정 두려움이 없다는 약속이다. 예수가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약속 그 자체가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는 고백이다.
일곱째, 나를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세우시겠다는 약속이다.
고린도전서 3장 6절-9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 (중략)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했다. 예수가 함께하신다는 약속에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은사로 능력 주셔서 동역자로 일하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일한대로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삯)을 주시려고 동업자 삼으셨다는 약속이다.
여덟째, 궁극적으로 내가 구원받았음을 확증해 주신다는 약속이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의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라고 했다.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안다는 것은 내가 구원받은 자임을 확증해 주시고 계신다는 약속이다. 예수가 함께하시지 않는 인생은 버리운 자요, 생명이 없는 멸망의 자식이다. 요한일서 5장 11절-12절에는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영생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했다. 예수가 함께하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임마누엘이 아닌 인생은 생명이 없고, 아무것도 아닌 제로의 인생이다. 멸망하는 인간이다.
아홉째, 성령 세례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약속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라고 하셨다.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믿는 자는 성령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약속이다.
소위 성도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가 함께하심을 안 믿고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믿은 지 수십 년 되는 사람도 기도할 때에 항상 ”하나님이여, 이 자리에 함께하여 주소서.”라고 아우성치고 있으며, “주여! 주여 이곳에 지금 오소서”라고 애원하고 간청하고 있다. 마치 “지금 예배당에 와서 굿판을 벌렸으니, 하나님이시여! 여기에 강신하소서.”라고 청혼하는 꼴이다. 우리 예수는 우리 속에 오신 후에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도 버린 적도 없는데, 애걸복걸하고 고함치니까 하늘 높은 곳에 누워계시다가 잠시 시찰 오시듯 오셔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하늘에 올라가 버리는 게으른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확실히 안다면 우리 성도들의 삶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항상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신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확실히 고백하고 영접했다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고 풍성한 삶을 살면 된다. 우리의 하나님은 예배당 귀신이 아니다. 여기 예배당에 와야 만나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거룩한 하나님께 가는 자처럼 거룩하나 예배당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세상에 나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은 예배당 안에 있으니 내가 무엇을 하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신 예수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떤 상황이라도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성도인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C. 그러면 누가 이런 약속을 할 수 있으며, 그 악속을 지킬 수 있는가?
소설이 아니고서는 이런 약속을 지킬 자가 없다. 사람은 지키지 못한다. 설령, 약속했다고 해도 지킬 사람은 사람 중에는 한 사람도 없다.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아내도, 애인도 안 된다. 다만 예수만이 약속할 수 있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어떻게 예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나요?
첫째,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는 마태복음 28장 20절의 그의 마지막 약속 속에서 그가 하나님 되심을 말씀하셨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출애굽기 3장 13절에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고 하나님이 14절에 대답했다. 에흐예흐 아쉘 에흐예흐(היחא רשׁא היהא: 스스로 있는 자. I AM THAT I AM)라고 했다. 이처럼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예수 자신이 하나님임을 선언하셨다. 헬라어로 “ἐγ εἰμι” (에고 에이미: I am, 나는 지존자이다.)라고 했다. 사실 I am.은 주어와 완전자동사로 된 1형식의 문장이다. 예수는 이 마지막 문장에서 그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혔다. 예수가 곧 하나님이 시기에 예수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한다.”라고 약속했고, 지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둘째, 그는 부활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부활하셨고 영원히 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 중에는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예수만 부활하셨다. 그러기에 그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한다.”라는 이 약속을 하셨고, 이 약속을 지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D. 그런데 왜 그는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것인가?
그 이유는 딱 하나 예수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저는 목사 아들로 지나면서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내가 죄를 짖나 안 짖나 항상 불꽃 같은 눈으로 감시하시는 하나님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오해였다. 100% 오해였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감시하시려고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오로지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예수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성도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라도 지켜 주려고 함께 하시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E. 그러면 과연 예수는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인가? (누가복음 24장 15, 16, 31절)
첫째, 안 보이시게 함께 하신다.
지금의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정체성이다. 누가복음 24장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가 접근하여 그들과 대화하고 숙소에 들어가 식사 기도를 한 후 24장 31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는지라.”(31절)라고 했다. Invisible God, 안 보이시는 하나님.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정체성이다. 분명히 거기에 계셨으나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안 보이시는 상태로 거기에 계셨다. 떠났다든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계셨다. 그러나 안 보이시는 원래의 하나님으로 되신 것이다. 요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 땅끝까지 도망가기 위해 배를 타고 배 밑바닥에 가서 구석에 누워 깊이 잠들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셨다. 제비를 뽑을 때도, 바닷속에 던져질 때도, 큰 고기 배 속 어두운 상태로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을 때도 하나님은 거기에도 계셨다. 다만 안 보이시게 계셨을 뿐이다. 우리의 하나님이신 예수도 우리가 볼 수 없지만, 항상 함께하신다. 영원히 지금의 우리 눈에는 안 보이시지만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한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 언제나 어디에나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둘째, 예수는 스스로 자원하여 우리와 함께하신다.
내가 간절히 예수를 초청하고, 부르짖고, 준비했기 때문에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는 자신이 “내가 너희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한다.”라고 하셨다. 내가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성령 하나님으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스스로 자원하여 항상 영원히 함께하시는 것이다.
너무나 나를 사랑했던 부모님이나, 자식들이나, 친구나, 아내나, 남편이라도 항상 영원히 나와 같이할 사람은 사람 중에는 아무도 없다. 의심 많던 도마처럼 내가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던 그 순간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예수께 감사하다. 자녀 된 내게 “내가 너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한다.”라고 약속하셨다. 감사할 뿐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더 이상 예수를 만나겠다고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이미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다. 항상 어디나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신다. 떠나시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신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도 없다. 등 뒤에서 가라고 떠미는 사람도 아니고, 식탁의 손님으로 계시는 분도 아니다. 어린아이에게 어머니의 함께 하심이 모든 것이듯이, 예수는 우리의 모든 것의 모든 것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창조자 하나님,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친히 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 임마누엘!
마지막으로 작자 미상의 “발자국들”이라는 시 한 편을 드린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예수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꿈을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나는 두 사람의 발자국을 볼 수 있었네.
하나는 내 것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것
나의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고 모래 위의 발자국을 뒤돌아보는 순간
나는 확인 할 수 있었네
내 인생길에 다만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는 것을
더 기막힌 사실은
그 때는 바로 내 인생길에서 매우 비참하고 슬픈 시절이었네
이 사실은 나를 견딜 수 없게 했고,
마침내 나는 예수님께 불평하며 물었네
예수님! 언젠가 내가 당신을 따르겠다고 했을 때
당신은 약속했지요? 일평생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그러나 보세요. 나의 일생에 가장 어려울 때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지 않습니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내가 참으로 당신이 필요할 때 당신은 떠나 버렸음을
예수님 내게 대답했네; 나의 아들 나의 참으로 귀한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너의 시련과 고통의 시간,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는 그 때
내가 너를 품에 안고 걸었노라(I carried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