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씨를 뿌리는 사람들

【종그니칼럼】사랑의 힘

2024-10-14     김종근 목사

나는 지난 해 봄 4월에 강원도 춘천 지역 목사들과 함께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 땅 임실군 관촌면 가정 마을을 잠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찾지 못한 고향 마을은 내가 어릴 때와는 전혀 다르게  어린 아이도 젊은이도 없는 적막한 마을이 되어 동구밖에도 마을 고삿길 어디에도  왕래하는 사람이 없어 마치 내가 공동 묘지에 온 것이 아닌가 착각할정도로 적막하고 을씨년 스럽기만 하였다. 마을 전체가 텅빈 것처럼 공허하였고 집들도 하나같이 녹 슬어 우중충 하게 재 빛처럼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골 마을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면소재지인 관촌리와 전라선 기차 역이 있는 곳과 전북 도립공원인 사선대(四仙臺)가 있는 유원지에는 사람들이 사는 곳처럼 보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입학생이 자그마치 800여명이었는데 금년에 입학한 학생수는 십여명이란다. 춘천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고향 관촌에 도착하니 점심 때라 마침 고향 후배가 운영하는 관촌 사선대 민물 매운탕 식당에서 점심 때가 훌쩍 지난 후에야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 땅에 부모 없는 자가 없듯 고향 없는 이도 없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이 이렇게 쇠락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동안 나는 고향 마을을 등지고 오로지 사는 문제에만 골몰하느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산실의 고향을 돈다무시 하고 정함이 없는 몸으로 객지를 정처없이 떠돌며 살다가 이제 몸이 늙어서야 철이 들어 찾아 온 늙은 내 모습이 퇴락한 고향 마을과 함께 겹쳐져 새 삼 삶의 무상을 느낀다. 이처럼 나는 떠돌이로 방랑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나와는 전혀 다르게 이곳에 태어나서 부터 팔십이된 지금까지 고향을 지킨 불알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훨씬 더 똘똘했고 야무졌고 공부도 잘 했지만, 나를 비롯하여 하나 둘 모두 고향을 뒤로하고 도시로 도시로 나아갈 때 그들은 황량해져 가는 자신들의 요람지인 고향을 온 몸으로 끝까지 뻐팅기며 지켜왔다.    

동춘이 해근이 점동이 현호  문갑이 규태 영식이 내문이 등등 헤일수 없이 많다.이처럼 끝까지 고향을 지킨 지킴이들이 있었기에 나같은 늙은이도 늙으막에 돌아 갈 고향이 있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고향 앞 산 뒷 산할 것없이 온통 민둥 산이었을 때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교에서 배급받은 어린 묘목을 이산 저산에 올라 심는게 우리에게 안겨준 숙제였다. 그때 우리가 고사리 손으로 심었던 그 어린 묘목들이 칠십년을 자라 어느덧 아람들이 나무가 되어 전국 어딜 가도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금수강산이 되었다. 만약 "하면 된다"는 불굴의 통치철학을 가진 박정희와 같은 혁명아가 없었다면 아마 오늘의 금수강산은 없었을 것이다. 

팔십 살이 된 이 나이까지 고향 땅을 지키는 지경석이 된 고향 친구들아! 우리가 어린시절 고사리 손으로 숲이 울창한 금수강산을 만든 것처럼 머잖은 날 이 대한민국을 새롭게 다시 탄생시켜 상전벽해를 이룰 기적의 그 날이 시골에도 예전처럼 젊은이와  어린이들로 가득찬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여서 진실로 축복받은 나라다. 육지의 농촌 마을과는 달리 예를 들어 전남 완도와 그리고 소안도 노화도 보길도 청산도 등 크고 작은 섬마다 그곳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또 바다 해산물인 양식(養殖)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젊은 가정들이 각처에서 들어와 이 사업에 뛰어 들고 있어 어촌 마을이 몰라보게 젊어져 섬마을에 어린아이들이 뛰놀고 있어 마치 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나와 친숙히 지내는 목사 중에 나보다 훨씬 젊은 송영규 목사가 있다. 그는 어려서 고향 집을 떠나 자수성가한 진국 목사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린 나이에 중국 식당에서 잔뼈가 굵어 중국 요리에 관한한 그의 큰 손사이로 나오는 짜장 면발에 쏘스가 올려지는 순간 그야말로 천하일미의 짜장면이 된다. 순전히 손 맛이다. 이처럼 맛갈스런 그만의 음식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발군이다.  송영규목사는 지금 한창 농익은 오십대 중년의 목사다. 그는 중국요리 솜씨하나로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빈 몸으로 가평 설악면으로 이사 온지 얼마 안되어 그 일대에서 '짜장면 목사'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수년동안의 그의 짜장면 식당은 짜장면을 찾는 식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짜장면에 관해서는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맛집이라 할수있다. 

짜장면 식당이 주일이 되면 '짜장면 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송목사는 마침내 설악면에 교회 부지를 매입하고 수많은 우여 곡절을 격으면서도 뼈를 깍는 혼신의 기도와 인내로 아래 층은 교회로 윗층은 방을 만들어 환상의 전원교회를 하나님께 봉헌할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설악면에 빈 손으로 들어와서 짜장면을 만드는 하나님이 주신 맛 솜씨로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로 교회 부지를 마련하였다.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를 모두 타개하고 '하나님의 전 아름다운 2층 전원 교회'를 봉헌한 가히 입지전적 목회자다.  

그는 수년전부터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 어르신들에게 매년 이맘 때가 되면 해마다 요양원을 찾아와서 짜장면  접대를 해드리고 있다. 그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시골을 너무 사랑하여 시골 중의 시골인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설악면'으로 들어 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마침내 하나님의 전을 세운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일년 중 가을이 되면 매 해마다 요양원 에 계시는 90여 분의 어르신들과 60여명의 직원들을 위해 며칠 전부터 열심히 준비를해서 지난 목요일에 그 맛깔스런 음식솜씨로 짜장면을 해드리는 봉사로 어르신들과 직윈들의 입을 호강시켜 주었다. 

송 목사의 백미는 또 있다. 그가 찬양을 할 때는 발성이 감미로와 듣는 모든 이에게 큰 울림을 준다. 배워서 터득하는 것을 학이지지 (學而知之)라 한다.  그런데 배우지 않고 천부의 자질로 찬양을 토해 낸다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진면목이겠는가! 그는 이처럼 주어진 날 들을 주의 종으로 섬김의 삶을 살려는 보기드문 진국 목사다. 이처럼 송영규 목사는 바쁜 중에도 시간을 만들어서 이날 득달같이 와서 즐거운 맘으로 어르신들을 섬기고는 커피한잔 나눌 시간도 없이 후일을 기약하고 집과 교회가 있는 설악으로 훌훌털고 가버렸다.

우리 주변에는 마치 엘라 골짜기의 물 맷돌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웃들 중에 이런 사람도 있다. 그는 본래 혈혈단신으로 쉰 네살이 되도록 나 홀로 살아 왔기에 가정도 자녀도 없다. 그는 부모의 사랑도 아니 부모의 존재도 모른채 세상에 태어났지만 세상으로부터 모진 홀대 속에  태어난 순간부터 버려진 길위의 인생으로 자랐다.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도 2학년까지 겨우 다니다가  중국요리 식당에서 일해주고 허기진 배를  달랬단다. 열살이 넘자 자전거를 타고 짜장면 배달을 하였고 열 댓살이 되어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자장면 배달을 하게 되었다.  월급은 한달에 40만원이 고작이었다. 

이처럼 천애 고아로 하루 하루를 겨우 살면서 한사람 누우면 꽉 차는 쪽방에서 살았다. 그래도 모진 세월은 흘러 그의 나이 쉰 네살! 계절로 말하면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의 인생 행로는 언제나 밑바닥이었다. 이러한 그의 인생 여정은 여름 일까요? 가을일까요?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미 그의 인생은 겨울인 것이다! 그의 이름은 '김 우수'다. 그는 2011년 9월 23일, 오토바이로 짜장면을 배달하던 중 승용차와 추돌하여 병원에 실려 갔으나 워낙 중상이어서 교통사고를 당한지 2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시내 도로 위 한복판에서 마치 곡예하듯 4륜차들의 틈새 사이를 질주하는 두 바퀴의 오토바이를  종종 볼수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교통사고로 숨진 '고 김우수님의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왔다. 이 때 정계 거물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의 장례에 참여 하였다. 그의 죽음이 왜 이처럼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안타까움을 끌었을 까요? 그는 그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도 매월 5만원~10만원을 어린이 재단을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을 수십년을 도왔던 것이다. 2006년부터 그는 이들을  돕는 일에 혼신을 다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불우한 소년 소녀가장들을 위해 4,000만원 짜리 보험도 들었는데 이는 그가 죽으면 그 돈을 타서 어린이를 돕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어린이 재단 후원회장인 '최 불암'씨가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주도하였었다. 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의 애도하는 편지가 수북히 쌓였다. 어린아이들이 쓴 편지 내용은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하여 주시던 아저씨를 가슴에 묻고 평생을 바르게 살겠습니다.” 였다.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영정 앞에서 말했다.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리십시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인 앞에서 말했다. “고인의 삶은 거친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작은 것을 나눔 으로서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고. 

그가 그렇게 죽은 후, 어린이 재단 홈페이지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었다. 그리고 재단 홈페이지에 오른 댓글들은 대부분 “천사 중국요리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나도 기부를 시작 하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삶으로 보여준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인생의 겨울 길목에 서서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황량한 광야처럼 거친 인생의 여정에서 그는 꾸준히 생명의 밀알을 뿌림으로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그의 아름다운 삶으로 우리에게 큰 울림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고 김우수씨는 인생의 겨울에도 사랑의 씨를 뿌리는 성실하고 오지랍이 넓은 사람이었다. "진정한 친구를 가졌다는 것은 당신은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진 것이다"라는 '토마스 풀러'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고 김우수씨 처럼 어떻게하면 오늘을 힘겹게 사는 이들과 진정한 친구로 남아 있을까를 인생의 끝자락에서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지금 당신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몇명이나 있는가? 당신에게 단 한명의 원수가 있어도 그것은 너무 많다. 세계 제 2차 대전당시 전쟁의 참상을 그린 '펄벅여사'는 "용기는 희망을 잃은 절망에서 피어난다." 고 갈파 했다. 

【종그니칼럼】사랑의 힘

우리나라는 산유국이 아니어서, 석유 전량을 수입해서 쓰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여서, 대부분이 해상 무역이기때문에, 석유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뿐만아니라 석유가 바다 밑 지하에도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래 저래 석유 유출로 바다를 오염시켜, 수많은 바다 생물들과, 바다 어류들을 먹이로 살고 있는 조류들까지도, 자연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이 어찌 기름뿐이겠는가! 인간들의 절제없는 무한 소비탐욕이 빚어낸, 프라스틱을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산업쓰레기들이,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들고 있다. 인간들의 절제없는 과잉 소비심리가, 하나뿐인 지구의 한정된 지하자원을 비롯하여, 땅과 대기와 바다까지,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처럼,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잡이로 오염과 훼손을 일삼고 있어, 내일이 없는 천박한 소비 자본주의의 한탕주의로 병들어가는 지구를 본다. 

달나라를 비롯한 우주 개발의 제일 요인이 무엇이겠는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키려는 자원 발굴에 있음은 물론이다. 우주정복이 바로 우주자원 전쟁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중병을 앓고 있는 지금,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수 있는 비젼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이를 위해 얼마나 심도있게 모색하고 있는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무엇보다 먼저 대자연과의 사랑으로 엉킨 공생적 관계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같은 지구촌 아래에서, 자연을 비롯한 수많은 동식물들과의 교감어린 공생인 것이다. 인간이란 단어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뿐아니라,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함유한 관계인 것이다.

지금부터 10여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태평양 건너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남 동해안 '프로 베타'의 어촌 마을에 사는, 70대의 '주앙 페레이라 들 수자'라는 할아버지는, 평생을 벽돌공으로 일하다 은퇴를 한 그는, 2011년 어느 날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에, 해변에서 기름에 뒤범벅된 채 굶어서 죽어가는, 자그마한 펭귄 한 마리를 발견하자, '수자' 씨는 자신의 집으로 펭귄을 데려와, 기름 때를 깨끗이 씻기고, 멸치와 정어리를 먹이며 정성다하여 돌봐 주었다.    그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펭귄의 몸은 이전으로 회복되어, 아주 건강하게 돌아 다닐수 있게 되었다. 

'수자' 씨는 이 펭귄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몇 번이고 바다로 돌려보냈지만, 펭귄은 돌아가질 않았다. 심지어 아주 멀리 배를 타고 펭귄을 놓아주었지만, 배보다 먼저 할아버지의 집에 펭귄이 도착해 있곤 했다.  사실 알고 보면 이 펭귄이 기름범벅이 된 것도 인간이 저지른 재난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이 까닭을 알리없는 펭귄의 진순무구한 사랑을 보라! 하는수 없이 수자씨는, 펭귄에게 '딘딤'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무려11개월을 같이 보냈다.  그런데 털갈이를 마친 딘딤은, 어느 날, '수자' 할아버지를 남겨 두고,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사라졌다. 

약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놀랍게도 딘딤은, 다시 '수자' 할아버지를 찾아와 꽁지를 흔들며, 할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이 펭귄이 칠레 최 남단 '파타고니아' 에서 무려 8,000㎞를 헤엄쳐 '수자' 씨에게 돌아온 것이다. 매년 6월이면 영락없이 찾아와, 약 8개월을 '수자' 할아버지와 보내고, 2월이면 짝짓기를 위해 그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 펭귄은 '마젤란' 펭귄으로, 원래 펭귄은 집단으로 모여 생활 하는 동물로서, 한 마리가 따로 떨어져서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이 딘딤 펭귄의 독특한 행동을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 의 대학에서 연구 중이라고 한다.

'수자' 씨와 함께 있는 8개월 동안에 '딘딤'은, 함께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함께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펭귄은 '수자'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여서, '수자' 씨가 “집에 돌아오면, '디딤'이 목까지 올라와, 소리를 내며 반갑게 맞아 준다고 한다. 행여 다른 동물이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오면, 날갯짓을하며 쫓아내 버리는, 질투가 어린 행동까지 한단다.  '딘딤'은 이제 1,300명 정도가 사는 마을의 마스코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모 방송사에는 두 번이나 '딘딤'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해, 이제 SNS를 타고 세계적인 마스코트가 되었다. 8,000km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서울과 부산을 16번을 오가야 하는 거리다. 이 자그마한 펭귄에게는, 너무나도 까마득히 먼 거리다.   

사랑의 힘, 특히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사랑의 힘은, 감성보다 먼저 이해득실을 생각하는 사람과 달리, 오로지 죽음 직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인 딘딤 펭귄에게 있어서는, 8000km거리의 양양한 대양의 바다를, 헤일수 없이 수많은 날개 짓으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무릅쓰고, 헤엄쳐 달려오게 하는 힘을 제공해 준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사랑의 힘은 이토록 위대하다는 것을, 이 작은 펭귄에게서 새삼 느끼고 배운다. 남태평양의 자그마한 나비 바람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태풍이 되듯, 자그마한 펭귄 '딘딤'이 인간이 저지른 재앙으로 죽어가는 것을, '수지'노인이 살려낸  이야기가, 온 세계에 태풍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온 인류가, 하나님 형상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 대 자연과 하나로 호흡하는 새 인류가 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