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나노사회의 목회방향과 전략
제18차 총회목회자특별세미나, 2023 목회전략수립
엔데믹 시대를 거쳐 성경적 원형교회(Anew church)로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엔데믹 시대를 맞고 있다. 팬데믹은 바이러스 전염병이 창궐하던 때이고, 엔데믹은 그 후유증을 앓아야 할 기간을 말한다. 엔데믹의 원래 치사율이 낮은 상태에서 주기적으로 혹은 국부적으로 발생하고 퍼지는 전염병으로 학자들은 이 시기를 대략 2년 반에서 3년으로 본다. 그러면 엔데믹의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하고 교회를 세워나갈 것인가? 나노사회에 어떤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가가? 성경적 원형교회(Anew church)를 세우기 위함이다. ‘성경적 원형교회’는 예수님이 사도들을 통해 가르치고 세우고자 하는 교회이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동력으로 세운 ACTS Church를 말한다. 바로 말씀과 성령의 임재, 사도성이 충만한 교회를 가리킨다.
사실 이 세상에 새로운 교회는 하나도 없다. 모델교회는 Anew Church(성경적 원형교회) 밖에 없다. 새에덴교회 역시 모델교회가 아니며 새로운 교회도 아니다. 다만 성경적 원형교회로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몸부림치는 교회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간절한 마음이다. 간절함이 없으면 핑계만 대고, 간절함이 있으면 길과 방법이 보인다. 우리 모두 간절함을 가지고 목회 환경과 통전적 조망을 할 필요가 있다.
2023년 목회 환경과 통전적 조망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나노사회를 예측했다. 그런데 ‘트렌드 코리아 2023’에는 나노사회가 더 강력하게 될 것을 예측한다. 나노 사회란 개인의 취향, 산업의 형태, 사회적 가치가 점차 극소 단위로 파편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공동체가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개인은 더 미세한 존재로 분해되며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고립된 섬이 되어간다. 이러한 현상으로 한국 교회 역시 단절된 공동체, 조각난 공동체, 고립된 공동체의 재앙을 직면하고 말았다.
노마드 대세사회에서 통계보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다. 통계는 현실이다. 빅데이터는 예측할 뿐이다. 과거 노마드는 목초지를 찾았으나, 지금은 의미와 가치를 찾아 이동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마드가 가는 곳에 의미와 가치를 들고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 아니, 미리 가서 그들을 맞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곳이 아골 골짝 빈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목회 방향과 전략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1) 교회를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로 세워야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부족의 시대’라는 책에서 우리 사회가 새로운 부족사회로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을 했다. 인류는 한동안 개인주의를 추구하다가 다시 부족공동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당시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마케팅 전략가로 꼽히는 세스 고딘 역시 최근에 출간된 ‘Tribes(부족)’라는 책을 통해서 새로운 부족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런데 코로나를 통해서 이러한 예견이 더 앞당겨 이루어져 버린 거다.
온라인 비대면문화가 이루어지면서 개인의 취향이나 사상, 혹은 어떤 제품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커뮤니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코로나 이전의 전통, 제도, 조직을 탈피해서 호감이 가는 사상이나 제품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거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하여 재편된 사회 속에서 전통적이고 제도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조직이나 공동체는 무너진다는 거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공간의 권위, 제도와 전통의 권위를 넘어서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 즉 새로운 부족사회, 신 커뮤니티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로 비유한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사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족장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결속력이다. 그래서 거기엔 강력한 결속력을 이루기 위해 골수팬덤이나 프로슈머(충성고객)가 생겨난다. 나심 탈레브에 의하면 2%, 국내 통계학자 김범진 교수에 의하면 3.5 %의 사람들이 골수팬덤이 되어 제품을 홍보를 해 주고 팔아주며 확장성을 갖는다. 즉 파레토의 법칙을 초월해서 그 2 %의 골수팬덤이 20 %를 이끌어가고, 그 20 %가 또 다시 전체 절대다수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실례로 마켓컬리의 회원이 수도권에서만 560만 명인데, 최근에는 580만 명이라고 한다. 그 안에 20만 명이 충성고객, 골수팬덤이 되어서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고 홍보하고 마케팅을 해 준다는 거다. 그러므로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골수팬덤을 세워야 한다.
부족하지만, 저와 새에덴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 더 강력한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한국교회 최초로 ‘메디컬 처치’를 시작하여 선제적 방역을 했다. 이 메디컬 처치가 얼마나 성도들에게 심리적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지역주민들에게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화상줌 예배를 도입하였고, 선한소통상품권을 발행하여 지역주민을 섬기는 사역을 했다. 예배도 기존의 매뉴얼을 그대로 돌리는 것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예배를 기획하여, ‘보랏빛 초청주일’, ‘홀리 트라이브 주일’ ‘우생순 감사주일’ ‘거룩한 초연결기도회’ ‘에델바이스 성탄절’ ‘로즈마리 성탄절’ 등 창의적 예배를 드렸다.
그 결과 우리교회는 코로나 시기에 오히려 더 강력한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를 이루며 교인들이 더 늘어났고, 재정이 더 증가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방역 제한이 완전히 풀렸을 때, 100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 이전보다 거의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예배가 빠르게 회복이 되었다. 이것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강력한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 교회4.0 시대를 이루는 원년이 되도록 한다. 닐 콜은 ‘교회 3.0’에서 미래 사회는 종교 없음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시대 흐름이나 사회 현상으로 보면 닐 콜 학자의 말이 맞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스 큉은 1996년 튀빙겐 대학교에서 은퇴식을 할 때 이런 말을 했다.
“21세기, 즉 미래로 갈수록 현대인은 기존 교회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많이 나타나겠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심과 종교적 욕구, 또한 영성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질 것이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현대인은 전통 교회나 제도적인 교회에 대한 부정적 반항감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영원에 대한 갈망과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은 더 커져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예견대로 “탈종교화, 탈기독교화, 탈교회화”라는 3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어령 교수는 생명을 자본으로 삼는 교회는 오히려 목회 황금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되어도 AI에게는 생명이 없다. 소화, 생식도 못하는 기계일 뿐이다. 더구나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런데 교회에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목회자의 내면이 복음의 생명력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다시 목회전성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주여,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충만하게 채워 주옵소서. 그래서 다시 목회전성시대를 맞이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이 발달할수록 영성 시대는 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저는 ‘교회 4.0’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 4.0’이란 생명을 자본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이 동력이 되는 교회를 말한다. 같은 시대, 같은 상황 속에서도 교회가 생명으로 가득하고, 주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으로 가득하면 교회 4.0이 되고 목회 전성시대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옥시토신 하트”를 소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회자에게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옥시토신 하트가 생긴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슈퍼 히어로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고, 사즉생의 각오로 임할 수 있게 된다. ‘한산’이라는 영화에 보면, 이순신 장군은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각오로 전투에 나가서 왜구를 물리치고 나라와 백성을 구한다. 영화 ‘탑건-매버릭’이라는 영화를 봐도, 사즉생의 리더십이 나온다. 탑건 비행학교의 교관인 매버릭은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로 부하들을 지킨다. 그러자 모든 탑건 비행사들이 원팀이 되어 도저히 불가능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게 된다. ‘한산’이나 ‘탑건’이라는 영화를 생각하면 한국 교회의 현실이 오버랩 된다.
매버릭이 말한 것처럼 생명을 걸고 한계를 뛰어넘을 때 진정한 탑건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코로나 팬데믹 탓만 하며 주저하거나 원망하고 불평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사즉생의 탑건 목회, 이순신 목회의 신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바로 이것을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십자가 충격으로 목회하자는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체험하고, 경험하면 못 할 것이 무엇인가? 죽기를 각오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다.
4) 예배에 주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시스템이나 경영도 아니다. 물론 건물이 예배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교회도 시스템과 경영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의 운행하심과 임재가 빠져버린 교회는 아무리 건물이 화려해도 교회가 아니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배의 형태와 요소만 강조한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도 예배의 형태와 요소에 대해서 논쟁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요4:21) 그리고 참되게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했다.(요4:23) 예배의 본질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고 어떤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는가보다, 중요한 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이 가득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향한 간절함,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그 간절함, 또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감동을 갈망해야 한다. 예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형식과 요소가 아니라,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예배를 주관하시는 그 예수님이 찾아오시느냐, 안 찾아오시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 시간에 선포하는 목사의 설교는 성령의 임재 언어가 되어야 하고, 그 임재 언어는 거룩한 말씀의 퍼포먼스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설교를 듣는 자들이 반드시 반응하게 되어 있다. 거룩하고 신령한 기쁨으로 반응을 한다든지 아니면 감격과 기쁨으로 반응을 하게 되어 있다.
이걸 언어학 이론에서 ‘효과수반발화행위’라고 한다. 설교에 이런 ‘효과수반발화행위’가 나타나야 한다.(① 단순발화행위 ② 의미수반발화행위 ③ 효과수반발화행위) 그러므로 포스트 엔데믹시대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의 설교를 통하여 거룩한 성령 언어의 퍼포먼스가 나타나야 하고, 성령 언어의 임재 사건이 나타나야 한다. 성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거룩한 기쁨으로 가득하든지, 아니면 가슴에 뜨거운 감격과 눈물을 흘리는 예배의 경험과 반응이 나타나야 한다.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구나. 설교는 예배의 한 형식이 아니구나. 설교가 성도들의 마음을 강타하고 감동을 주는 성령의 퍼포먼스가 되어야하겠구나.”
나는 코로나 위기 때에 가장 먼저 예배의 본질, 가치를 붙잡고 하나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이 가득한 예배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주일예배를 7번을 드리고 모든 새벽예배, 저녁기도회, 공예배를 직접 다 인도했다. 그만큼 하나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이 가득한 예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나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현장예배가 되었건, 유튜브 예배가 되었건 간에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을 갈망하고 경험하도록 몸부림쳤다. 아니,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퍼펙트 스톰의 역사가 영적인 감동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감동과 생명력을(유튜브와 성도들의 삶을 통해) 바깥으로 공급했고, 성도들의 삶과 감동을 통해 밖으로 흘려보냈다. 그랬을 때, 거리두기 제한이 풀리자, 일반적인 다른 교회에 비해서 예배 회복과 영적 감동이 더 빠르게 회복되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팬데믹의 안개를 뚫어버리고 엔데믹 상황에서 생계형의 교회를 넘어서는 길이다. 그리고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를 이루며 새로운 스타일의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길이다.
5) 교회를 메디컬화 해야 한다. 의료진은 과거에 있었던 사스와 메르스 대처를 통해서 전염병 위기 대응에 대한 매뉴얼을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험과 매뉴얼이 코로나 방역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게 된 것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전혀 경험도 없었고 매뉴얼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가장 비난과 공격을 많이 받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바로 감지하고 메디컬처치를 세웠다. 그리고 담임목사와 메디컬 담당자가 교회를 메디컬화 하기 위해 온 수고와 헌신을 다했다. 그럴 때 성도들은 감동을 받고 헌신하는 것을 경험했다. 김두현 박사는 “빌딩 지키기 목회, 공간 목회에서 호스피탈 목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교회를 호스피탈하게 하고 목회를 메디컬화 할 필요가 있다.
6) 소그룹과 팀 처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소그룹의 중요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별히 코로나 팬데믹과 엔데믹 상황에서 소그룹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대형 그룹은 모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그룹은 모일 수 있고, 팀 처치를 이룰 수 있다. 비대면 사회에서 인터넷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끈끈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엔데믹 시대에도 소그룹 모임과 팀 처치를 이루어야 한다.
평상시에 소그룹과 팀 처치가 잘 되어 있었으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이렇게 교회가 무너질 수가 없다. 담임목사가 대형 그룹을 이끌어가지 못하더라도 소그룹만 살아 있으면 교회가 여전히 부족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다. 소그룹이 살아있을 때 유튜브 사역도 가능하고 온라인 사역도 가능하지, 소그룹이 없는 상태에서는 유튜브나 온라인 사역 역시 큰 효과를 이룰 수가 없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대형 그룹의 예배가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소그룹이 살아있기 때문에 유튜브나 온라인, 미디어 공간을 통하여 계속해서 영적인 은혜와 파장이 전달되고 확장될 수 있다. 그런데 소그룹을 강조한다고 해서 소그룹 성경공부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소그룹으로 말씀을 나누고 구역예배를 잘 드리라는 의미만도 아니다. 소그룹 활동 안에 그 모든 게 포함되어 있다. 일단 소그룹으로 모여서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교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을 이룰 때는 소그룹으로 모여서 전도하는 것, 교제하고 성경공부하는 것까지도 힘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미디어를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만남의 시간은 짧았지만, 소그룹은 관계와 소통과 교제를 가능하게 했다. 어느 교회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교회 안에 소그룹만 유지되고 살아 있었다면 평상시처럼 성경공부도 가능하고 말씀을 쉐어링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새에덴교회의 경우 성경공부를 하고 쉐어링 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참여하고 교제하고 봉사하는 것까지 다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도 온라인 성경공부, 애간장 기도회, 직장인 사명자 토요모임, 원데이클래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플리마켓 프로젝트, 신실한 독서모임, 행복음악회, 힐링 야유회 등을 할 수 있었다. 사실은 이것도 다 소그룹인 동시에 팀 처치의 모습이다.
그런데 소그룹과 팀처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리더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리더를 훈련시키는 게 중요하다. 새에덴교회에서는 리더들을 중심으로 해서 애간장기도회를 인도했다. 그래서 리더가 살아있을 때는 애간장기도회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릴레이 기도회도 오게 되고 더 은혜를 사모하고 결집하며 확장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리더는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대표 리더이지만 리더가 결손이 생길 때 언제든지 부리더가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사람을 키워 기회를 주고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리더에게도 때로는 권한을 주고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원래 리더는 부리더의 멘토가 되고 조력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리더가 지치지 않는다. 탈진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소그룹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중소형교회를 살리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면, 첫째, 영상 방송을 잘하는 것이고, 둘째, 끊임없이 전도를 하고, 셋째, 소그룹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전도는 교회로 오라고 하는 전도도 중요하지만, 관계와 참여형 전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앤데믹 시대에는 중소형교회에서 무조건 교회로 오라고 하기는 매우 힘든 시대이다. 그러려면 예배가 정말 하나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이 느껴지는 감격이 있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신자들이 교회에 한 번 왔다가도 불안해서 그냥 가버린다.
그런데 이것 역시 소그룹이 건강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전도를 해 와도 팀 처치가 안 되어 있으면 정착할 수가 없다. 소그룹에서 말씀도 나누고 교제도 하고 봉사도 하면서 교회의 일원이 되고 가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스트 엔데믹 시대에는 소그룹이 정말 중요하다. 소그룹이 잘 되어야 예배가 빠르게 회복되고 건강하게 세워진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소그룹이 없어도 기존의 포맷과 매뉴얼에 의해서 유지가 되었는데, 그런 교회는 포스트 엔데믹 시대에 100% 회복하기가 힘들다. 소그룹이 잘 되어야 예배도 회복되고 교회도 세워진다. 만약에 교인이 부족하면 세 명씩이라도 세워보라. 반드시 그 세 명이 소그룹의 제 값을 치루어 줄 것이다.
7) 끊임없는 전도를 통해 새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온라인 전도와 오프라인 전도를 병행해서 끊임없는 긍정적 전도를 해야 한다. 새에덴교회도 전도를 하지 않았으면 예배 회복율이 70%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전도를 하기 때문에 잃은 양을 끌어오고 라이언 일병을 끌어낼 수 있었다. ex)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뿐만 아니라 우리는 외연 확장과 새영토 확장을 위해 전도했다. ex) 민들레야, 어떻게 영토를 확장하니?
2023년 실제적 목회전략은 생명나무 목회가 되어야
선악 판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우선하고, 생명을 추구하며, 오로지 생명만을 붙잡게 하는 목회이다. 생명나무를 중심으로 한 소통, 관계 맺기, 참여하게 하는 사역을 위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1) 교회 표어 만들기. ex) “다시 본질로, 다시 원형으로, 다시 생명으로”
2) 비젼, 사명 선언문을 만들기. ex) “우리는 생명나무 신앙으로 팬데믹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현장 예배를 완전히 회복할 뿐 아니라 온라인의 새 영토를 확장하여 거룩한 초연결 확장공동체를 이루는 영향력을 한국과 세계로 넓혀간다.
3) 목회자의 헌신 서약과 선언하기. ex) 월삭 금식, 일주일에 하루 전도하기, 정오기도회, 애간장 기도시간
4) 신년기도회와 사명자 기도회. ex) 신년 축복성회, 분기별 사명자기도회
5) 여름수련회. 개척교회 때부터 코로나 팬데믹 때도 안 쉬고 했음.
6) 형식이 아닌 가치, 의미 있는 심방.
7) 홈 플랜팅(Home Planting) 사역. 가정을 세우는 사역을 하라.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도록 하라. 서로 축복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라.
8) 헤리티지 서약, 혹은 신앙 유산 서약. 돈보다 물질적 재산보다 신앙을 심어주고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줄 것을 서약함.
9) 효과적 소그룹 사역. 팀처치 형성, 소통관계 맺고 참여, 회중 공동체 형성.
10) 끊임없는 온, 오프라인 전도. ex) 애간장 기도회를 전도로 이용
11) 특별 새벽기도회, 특별 밤 작정 기도회
12) 성경 필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