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꿈은 이루어진다

【종그니칼럼】 화이부동(和而不同)

2024-04-02     김종근

어쩌다 대한민국이 근자에 들어 해마다 무역이 적자란다. 무역의 부가가치로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수출이 적자인데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을까? 모자란 돈을 부채로 메운다면 요즘 우리나라 일년 부채는 얼마씩이나 더 늘어나고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맘이 착잡해진다. '자린고비'란 말이 생각난다. 내가 노인복지를 운영하면서 운영자금 때문에 어느 하루 평안한 날이 없었다. 그런때에도 근검절약으로 버텨나갔더랬다. 그런데 선거철만 되면 여야없이 공약들을 남발하면서 서민들의 홀로서기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서민들의 어려운 삶을 위해 일정부분 생활자금을 무상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먹기는 꽂감이 달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이름이다. 내 고향 임실에 가면 특히 내가 자란 마을은 사람만 늙은게아니라 집들도 아니 마을전체가 같이 늙어 쇠락해서 마치 사람이 살지않는 마을처럼 우중충하고 꾀죄죄하다. 손때 묻은 정감보다 사람도 집도 마을도 모두 낡고 늙어 을씨년스럽다. 이러한 시골 풍경은 비단 내 고향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마 지자체도 지쳐 농촌 살리기에서 진작 손을 놓아버린 것인가?  그토록 마냥 구태에 머물러 있어도 되는지 묻고 싶다. 우리 국토 면적의 73%를 차지하는 1182개의 면 지역엔 초등학교가 몇 개나 있는지 아시는가?  면 단위로 겨우 1000개에 불과하단다. 1970년 이후 5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문을 닫은 초·중·고등학교가 무려 4000개에 달한단다.  마을에 있던 초등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들은 날마다 차를 타고 먼 길을 오가거나 학교가 있는 도시로 떠나야만 한다.   

그러니 학교가 사라지면 시골 마을엔 영락없이 젊은이도 함께 사라져 일시에 꿈을 잃은 늙은 마을이 되어 버린다. 경남 함양군 서하면, 17개 마을에 1500명이 사는 이곳에도 초등학교는 송계마을 서하초등학교 달랑 하나 뿐이다. 이웃 은행마을과 본정마을에도 초등학교가 하나씩 있었지만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두 학교 모두 분교를 거쳐 1995년과 1999년에 잇따라 문을 닫았다. 본정분교가 문을 닫은지 20년이 지난 2019년 서하초등학교는 6학년 학생 4명이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듬해 입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남아있는 학생은 10명, 만약 1명이라도 전학을 가게 되면 분교로 바뀔 처지였다. 그런데 서하초등학교는 이웃 초등학교 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시골을 살리려는 작은 학교"에는 마치 동화 같은 4년 동안의 숨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하초의 기적' 이라고도 부르는 이 일을 이끈 건 신귀자 서하 초등학교 교장과 장원 농촌유토피아 연구소 소장이다. 함양에서 나고 자란 신 교장은 1983년 지금은 문을 닫은 서하면 운정초등학교 에서 아이들을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다. 고향에서 교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던 그는 2015년 9월 서하초 '작은 학교 살리기' 공모제 교장을 자원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4년이었다. 그는 서하초등교를 살리려고 교과 과정을 바꾸고 학생 맞춤형으로 학교 분위기를 바꾸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한 것이 결실을 맺어 2년 만인 2017년, 서하초등학교는 전국에서 15개 학교만 뽑는 '교육과정 우수 학교'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다시 2년 뒤인 2019년 학생 수는 처음보다 더 줄어 있었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엄청 높았다. "작은 학교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절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임기가 만료되었다고 내가 그만두면 학교가 폐교되는걸 알면서 도저히 그냥 퇴직할수 없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 했던가! 마침 서하초등학교가 '광역통학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학생 수가 100명에 달하는 이웃 안의면의 안의초등학교 아이들도 서하초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신 교장은 이 기회를 활용해 관내 귀촌·귀농 학부모들에게 설명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여기서 판을 키운 건 장원 소장이었다. 10여 년 전 이곳으로 귀촌한 농촌 활동가인 장 소장은 서하로 귀농하는 학부모들에게 일자리와 집을 제공할 수 있다면 서울에서도 시골로 오려는 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함양군 내에서 설명회를 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역 학교끼리 제로섬 게임이 될 뿐이니까요. 기왕 할 거면 전국을 대상으로 학교 살리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하와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귀농·귀촌을 꿈꾸는 도시 학부모들의 이목을 충분히 끌 수 있을거라 확신했어요." 둘은 농촌과 학교 살리기에 함께 할 관계자들부터 모았다. 이주 가족들이 살 집과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함양군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야 가능한 일이었으므로 둘은 서하초 교직원과 학부모는 물론 총동창회, 서하면 향우회, 함양교육지원청, 함양군청, 함양군의회, 교육장, 군수, 면장 등을 무조건 만나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처음에는 모두 뜬구름잡는 소리로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이는 내 고향 살리기 운동이잖아요. 첨엔 젊은 동력이 없어서 "국가나 지자체에서도 못하는데"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게 모두 내 일이었으므로 발벗고 나서자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2019년 11월 27일 마침내 서하초에서 첫 모임이 열렸다. 긴 논의 끝에 그날 '학생모임위원회'가 꾸려졌고, 이틀 후인 12월 19일 '전국 설명회'를 열기로 뜻을 모았다. 이제 남은 일은 살 집과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었다. 학교 교직원들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빈집을 찾았고, 마을 주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마침내 비어있던 마을회관을 비롯한 전셋집 7채를 마련할 수 있었고, 1년에 200만 원 정도만 내면 살 수 있도록 했다. 일자리를 찾는 일은 군청이 맡았다 마침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전기차 생산업체 에디슨모터스가 이주 학부모들을 우선 채용하겠다고 나섰다. 한두 주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직에 월 250만 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학교에선 학생을 위한 혁신적 교육 프로그램과 여건을 마련했다. 주 1회 영어 특성화 방과후 수업, 원어민 영어 교육, 전교생 해외 어학연수, 전교생 장학금 제공 등이 그것이다. 필요한 돈은 학생모집위원회가 모으기로 했다. '목표는 1억 원' 장 소장이 먼저 마중 물로 열 달 동안 100만 원씩을 내기로 하자 지역민은 물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졸업생들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농협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차곡차곡 펴서 ATM기에 넣으시더라구요. "할아버지 뭐 하세요"하고 여쭤봤더니, 서하초 기금을 넣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아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그해 12월 19일 설명회 소식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설명회에는 200여 명이 참석을 했고, 거의 모든 중앙 언론사가 취재를 왔다. 그러자 설명회가 끝난 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이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신 교장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결국 신청자가 너무 몰리는 바람에 75가구를 끝으로 모집을 중단해야 했다.   대성공이었다.

미리 마련해 둔 기준에 따라 일곱 가구가 뽑혔고, 학교엔 17명의 새 아이들이 생기면서 학생 수가 27명으로 늘었다. 학교가 살아나면서 문을 닫았던 마트가 다시 문을 여는 등 마을도 되살아났다. "아이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저절로 살맛이나고 웃음이 났다. 마을 사람과 새로 생긴 카페에서 만나서 수다도 떨었다. 여러모로 학교가 살아나면서 나도, 마을도 보이지 않는 혜택을 받고 있었다. 후에 이 학생들이 자라서 여기서 보낸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면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 되리라."  하지만 과연 '서하초 모델'은 오래갈 수 있을까? 더 많은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장 소장은 '주택공사'를 찾아가 더 많은 이주민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지어달라고 했고, LH가 이를 받아들였다  LH는 2020년 3월 '농촌 활성화 사업 모델 TF'를 꾸려 이 일에 뛰어들었고, 두 달 뒤 민간건설업자가 지은 주택을 매입해 임대·운영하는 방식으로 서하초 건너편에 12채의 단지형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함양군도 비용의 15%를 대기로 했다. 월 임대료는 56~82제곱미터 기준으로 15~20만 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최대 20년 동안 살 수 있도록 했다.  사업을 책임졌던 정승태 LH 경남지역본부 부장은 "신속한 의사 결정과 지자체의 지원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라면서 조직마다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해 나가는 '키 플레이어'(key player)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LH는 이웃 안의면에도 공동 주택 60호를 짓는가 하면, 훗날 서하초를 졸업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마치고도 계속 함양군에 머물 수 있도록 '일자리형 매입 임대주택'도 지을 계획으로 있다.  
 
함양군과 LH는 그 뒤로도 지역 맞춤형 농촌 재생 모델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마을 주민과 입주민의 사랑방이 되어 줄 카페, 귀촌 청년을 위한 스마트팜과 창업 공간 플랫폼 그리고 어린이도서관을 마련 했다. 이주민들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준비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졌다. 그렇다면 서하초 모델은 오래 갈 수 있을까?  전국 설명회를 거쳐 2020년에 처음 새 식구를 받은 지 3년이 지난 2023년 기준으로 지금 서하초에는 모두 24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1학년 새내기도 2명이 있고, 내년에 1학년이 될 유치원생도 7명이나 된다. LH는 함양군을 '농촌 유토피아 시범 사업 1호 대상지'로 선정하고, 서하초 모델을 주변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경남도와 '경남 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 추진 협약도 맺었다. 김지원 작가는 "시골의 모든 학교가 서하초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출산율이 해마다 가파르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학령인구의 감소를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유입된 인구를 오래도록 머물게 하려면 수도권보다 살기 좋다고 느낄 만큼 다양성을 지닌 제반 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진단이다.

유 교수의 말처럼 서하초가 언제까지 학생 수를 이만큼 유지할 수 있을지, 또 서하초 모델이 다른 지역에서도 똑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수년간의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년 사이 학교와 마을 풍경은 상전벽해처럼 달라졌고, 아이들에겐 이곳 송계마을 서하초등학교에서 보낸 시절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없어선 안 될 밑거름이 되어줄 테니 말이다. 시골의 모든 학교가 서하초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서하초만의 길을 찾아낸 것처럼 다른 학교와 마을도 각자의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서하초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신 교장과 장 소장을 비롯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보여준 마음자세를 배우라는 것이다. '일 잘하는 국회와 지역 일꾼'을 뽑는다' 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 때문에 지역 의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우리 마을에 돈 잘 끌어오는 일꾼도 좋지만,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함께 머리를 맞댈 일꾼이 더욱 절실하다. 지역민의 도전을 믿고 힘을 실어줄 그런 일꾼. 부디 이번 선거엔 그런 지역 일꾼들이 많이 뽑혀 지역마다 크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종그니칼럼】 화이부동(和而不同)

요즘 나라를 치리하는 이들의 언어행태를 보면, 나라를 파국으로 만든, 고대 희랍의 소피스트들이 떠오를 정도로, 궤변적이고 소아적이다. 다시말하면 위정자들의 언행에 포용성이나 전정성이 전혀 없는 독불장군처럼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언행을 통해, 현실정치의 현주소를 보는듯하여, 맘이 착잡하고 암담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 정치인들의 말속엔, 해학도 포용력도 없다. 그런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정치현상은, 날이 갈수록 삭막하게 퇴행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여야의 주장을 아우를수 있는 중간지대도 없다. 그러니 국가 중대사를 놓고도 그들 가슴속엔, 여야일여(與野一如)란게 아예 없다는 말이다.

사람의 나이 60을 이순(耳順)이라 함은, 듣는 귀가 순해진다해서 이른 말인데, 정치인들 60을 넘은이들이 수두룩해도, '순해진 귀'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언중유골을 넘어 말속에 비수가 숨겨있을 뿐이다. 말에는 듣는 상대가 있는 법인데, 그 상대에게 공감이나 정반합을 이루려는 소통이 없다. 

언로(言路)로 화합이나 상생(相生)의 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순리가 아닌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든다. 논어(論語)의 자로(子路) 편에, ‘군자 화이부동 (君子和而不同) 소인 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는 화(和)하되 동(同)하지 않고, 소인은 동(同)하되 화(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화(和)라는 것은 화합, 화목, 어울림 등, 즉 견해나 소견이 서로 다름을 수용하여, 정반합(正反合) 을 지향하는 것이고, 동(同)은 동아리, 획일, 하나 됨 등, 의사(意思)나 소견이 주장자의 자의로 일치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의 참 뜻은,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간의 화합과 어울림을 추구하되,'획일적인 의견일치'를 지양하지 않으나, 소인(小人)은, 획일적으로 자기와 색갈이 같은 것만을 요구하므로, 서로간의 견해 차이 즉 다름에 대해, 이를 인정할수 없으므로, 이와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금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사간의 갈등 등을 보라.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적 쟁점에 있어서, 한쪽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어떻게 하든 조화로운 해결점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 혹 있는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자기와 색깔이 다르다하여, 아예 그 실체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절대다수들이 있다. 현실을 보는 소견이 자기와 다르다 싶으면, 그 다름을 다양성으로 용인하고, 능소능대하게 대처해야 함에도, 무조건 적으로 돌리려고만 하는 인사들이, 쓸데없는 정쟁을 일삼고 있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전자가 군자이고, 후자가 소인일 텐데,작금 우리 사회에서는 논어에서 말하는 '소인의 목소리가 워낙 강하여,' 군자의 목소리는 거기에 함몰되어, 되려 회색분자로 매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으론 조선 시대의 당쟁정치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소위 패거리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의견 에는 귀를 닫고, 자신이 몸담고있는 조직 내에서도, 다른 소리를 내면 배신자로 찍히는 것이 오늘의 우리모습이다.

허나 역사를 돌아 보라. 과연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쪽이 절대적으로 틀린 적이 있었는지를! 또 자신만이 절대 진리임을 내세워 정치를 농단(壟斷)하였을 때, 과연 그 주장이 국리민복을 가져 왔었는가를! 이에 대해 신영복 교수는 존재론적 세계관에서 관계론적 세계관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재론적 세계에서는 모든 존재와 존재들 간의 관계가 경쟁적이며 각자의 존재성을 배타적으로 키워 가려하여 아주 이기적으로 움직인다. 이를 신교수는 현대물리학의 세계를 예로 들면서 우주의 실상은 존재론적 구조가 아니라 관계론적 구조라고 갈파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세계에서 생명은 배타적인 존재일 수 없으며 다수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나와 너가 여아일여로 결합된 관계(關係網)의 융합의 관계 그 자체라고 갈파한다.

그렇다! 정반합(正反合), 관계의 세계에서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수산 드렁칡이 얼키듯이 서로 얼켜지고 융화되어서 전 우주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 혹은 이웃은 내가 살기 위해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또 다른 ‘나’인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그런 또 다른 ‘나’는 나와 똑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유기체적 생명이건 조직적 생명이건 다양한 색채를 가지고 혼연일체를 이루어야 변화무쌍한 세계에 적응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그 반대로 획일적이면 겉으로 보기엔 강하게 보일지라도 큰 시련 앞에선 가차없이 도태 되고 말 것이다.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이제부터라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여 화이부동(和而不同)하자.

야고보는 1장22절에서,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였다.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세계인 모두가 예외없이 입에 망을 씌우고 있는 하늘의 깊은 뜻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