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은색별로 기억된 아기 예수, 베들레헴 탄생동굴을 가다

▶【소강석】“더위가 숨고 바람이 멈춘 언덕”

2022-12-02     소강석 목사

저는 지금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이스라엘에 와 있습니다. 기자들과 성지순례를 하며, 기자들의 시각에서 본 현지의 모습들을 연합뉴스를 통해 전해 드립니다. (베들레헴=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2022-11-29

『'은색 별'로 기억된 아기 예수…베들레헴 탄생동굴을 가다』

▮ 현지 기념교회 지하에 탄생 지점 표식…전 세계 각지서 방문객 줄이어
▮제롬의 '불가타' 성경 자취도…성탄절 이목 집중 '캐서린 교회' 한자리
 
세계 각국에서 온 기독교인과 관광객들이 지하 동굴로 통하는 계단에 줄지어 서 있다. 국적도 인종도 다양해 보이는 이들은 큰 기대감에서인지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침묵 속에 동굴 안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이들은 차례가 오자 동굴 한쪽 바닥에 은색 별로 치장된 표식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짧게 기도를 올리며 은색 별을 만지거나 입을 맞추기도, 그 옆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28일(현지 시각) 기자가 찾은 '예수탄생교회'(Church of the Nativity) 내부의 지하 동굴 풍경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베들레헴 중심가에 있는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장소 위로 세워진 기념 교회다. 예수는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구간 위로 교회가 들어서다 보니 탄생 장소는 자연스럽게 지하 동굴 같은 형태 안에 남게 됐다. 교회는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1년 완공했다.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디며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유지해왔다.
동굴 내부의 제단 아래 있는 은색 별은 예수가 태어난 지점을 알리는 표식이다. 1717년 가톨릭교회가 만든 표식은 '베들레헴의 은별'이라고도 불린다. 은색 별은 보통의 별과 달리 독특한 형태다. 성경적 의미를 담아 14각형으로 만들어졌다. 은색 별 표식 한쪽으로는 아기 예수가 탄생 이후 놓였던 구유도 볼 수 있다. 예수 탄생 당시 구유는 나무 재질로 알려져 있으나 이곳에서는 돌로 만들어졌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구유는 예수 탄생의 의미를 더하는 듯했다.

은색 별의 표식과 구유 앞에서는 떠나기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동굴 안으로 인파가 밀려옴에도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는 듯했다. 예수탄생교회 지하 동굴에서는 예수 탄생 외에도 성경 역사에서 기억될 만한 성인 예로니모(영어명 제롬)의 흔적도 만나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4대 교부로 꼽히는 그는 이곳에 머물며 신·구약성경을 모두 라틴어로 완역했다. 405년 완성된 이 성경을 '불가타'(Vulgata)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일반에게 널리 보급됐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공인을 받은 이 성경은 중세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고, 기독교 역사가 2천년 넘게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롬은 죽기 전 성경 번역에 몰두했던 지하 동굴에서 잠들기를 바랐다고 한다. 희망대로 그는 세상을 뜬 뒤 동굴 안에 묻혔지만, 성인을 더 가까이서 보기 원했던 이들의 뜻에 따라 시신은 가톨릭의 본산 로마로 옮겨졌다.
"당신이 이곳에 여행자로 들어왔다면, 나갈 때는 순례자로 남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순례자로 들어왔다면, 나갈 때는 더 거룩한 이로 남게 될 것입니다."
 
예수탄생교회와 나란히 붙어있는 캐서린 교회 출입문에는 이런 글귀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매년 12월 25일 성탄절 기념 미사가 봉헌되며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온 캐서린 교회가 방문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누구든 예수가 탄생한 이곳을 찾게 된다면 숭고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읽혔다.
예수탄생교회를 함께 찾은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돼 오실 수 있는지, 하나님 아들이 어떻게 사람 육체를 입고 올 수 있다는 말인지, 이것은 신비 중의 신비이자 지상 최고의 수수께끼"라며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예수 탄생의 의미를 해석했다.

 

◆【소강석】“더위가 숨고 바람이 멈춘 언덕”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에는 가을을 무색케 할 정도로 한여름 같이 덥더니 어느새 더위가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아니, 벌써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매미는 할 일을 다 한 지가 오래고 그 사명을 풀벌레에게 기쁨으로 넘겨주었습니다. 더위는 어디로 도망가 버렸을까요.

언젠가 제 서재에서 본당으로 가다 보면 뒷담벼락 위에 개망초꽃이 하얗게 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망초꽃이 지고 나니까 더 하얗게 일대를 덮어버린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경사가 험한 언덕에 하얀 꽃으로 덮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풀벌레들이 얼마나 요란하게 합창을 하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보니 바람이 불어도 꽃들이 흔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을바람도 저 꽃잎들 앞에는 쉬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도대체 저 꽃은 무슨 꽃일까?” 마침내 저는 운동화를 신고 그 곳으로 직접 가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날씨였습니다. 제가 어지간하면 짧은 팔 차림으로 나갈 텐데 요즘 같은 때 감기에 걸리면 사람이 추하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행여라도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하고 조심스럽게 긴 옷을 입고 갔습니다.

가서 보니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온 언덕 위에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막상 그곳에 가니까 전혀 춥지가 않았습니다. 차가운 가을비가 온 후였는데도 수풀 아래는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순간 시인의 상상력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 며칠 전까지 한낮을 달구었던 그 더위가 이곳으로 와서 숨어버린 것은 아닌가. 더위가 그냥 도망갈 수는 없어서 잠시 이곳에 숨어있나 봐. 그렇다면 왜 더위는 이곳에 숨었을까. 아마 이 꽃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피어 있게 하려고 이곳에 숨었겠지.” 별의별 시적 상상이 스쳐갔습니다.

비 갠 뒤 상큼한 하늘은 청옥같이 맑아 보였고 거기서 비쳐오는 햇빛은 꽃들을 더 하얗고 눈부시도록 해주었습니다. 순간 이런 상념에 젖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험한 언덕이라도 하얀 꽃들이 피어 있으면 이토록 아름답고 눈부시게 보이는 것을... 증오를 심고 미움을 심으면 우리 마음에서부터 독버섯이 솟아나거늘, 우리도 소설가 이청준의 ‘꽃씨 할머니’처럼 온 세상에 꽃씨를 뿌리며 살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무슨 꽃인가 궁금했습니다.

옆에 있는 수행비서에게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서양등골나물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본 꽃명이었습니다. 꽃 이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꽃이 어떻게 여기에 심겨져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한두 송이가 핀 것도 아니고 언덕 전체를 차지하여 하얀 꽃 세상을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죠. 민들레 홀씨처럼 한꺼번에 이곳으로 날려 와서 그들의 영토를 확장해 했는지, 아니면 이청준의 ‘꽃씨 할머니’처럼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꽃씨를 뿌렸는지,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또다른 방법으로 꽃씨를 뿌려 놓았으리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꽃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이런 아름다운 꽃밭 언덕 같은 세상을 일구라는 걸 깨닫게 하시려고 그랬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매일매일 창문 너머로 그 꽃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언제까지 더위가 그곳에 숨어 있고 바람마저 쉬어가는 가를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 부디 저 꽃들이 오래오래 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설사 찬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려 꽃들이 진다해도 제 마음의 뜨락에 하얀 꽃들이 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 하얀 꽃들을 바라보며 ‘너는 진다해도 너를 대신해서 나는 지지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 가슴의 언덕에 바람도 쉬어가고 더위도 숨어 있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