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계엄령과 계몽령
【종그니칼럼】잃어버린 나를 찾자.
나는 오늘 점심식사 후에 잠간 TV를 보았는데 말(馬)들이 아무리 명마라해도 말의 전성기를 지나 퇴마(退馬)가 되면 말의 노후가 아주 비참하게 된다는 기사를 보고 "토사구팽은 사냥 개(犬)에게만 있는게 아니고 말(馬)에게도 있다"는 걸 알았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애지중지 하다가도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버리듯 안면몰수 하는게 인간들의 심보다. 요즘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을 위한 개 호텔도 있고 혹 그 개가 죽으면 개 장례 식장은 물론이고 개 공원까지 있다고 한다. 나도 수년전에 애완견을 기른 적이 있다. 우리 내외가 십수년을 길렀는데 몹쓸 암병에 걸려 죽었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후 마누라가 날마다 울었다. 개가 죽었다고 저리 울면 내가 죽으면 얼마나 울까?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수만 있다면 어찌우나 죽어서라도 꼭 한번 보고싶어 지기도 했다. 애완동물이 어찌 개 뿐인가? 양도 있고 닭도 있고 돼지도 있고 부지기 수로 많다. 그런데 요즘 유독 '개 인격'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썰들을 푼다. 나는 몇년전에 알게 된 길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데 특이한게 새끼를 3개월에 한배씩 낳는다. 그래 얼마안가 집에 고양이로 가득찰 줄 알았는데 그건 기우였다. 적자생존이라더니 끝까지 살아 남은 것은 얼마되지 않아 자연히 교통정리가 되었다. 벌써 한 해가 기울고 새 해가 되어 낼이 음력 설이란다. '설 날'이 다가 왔어도 요양원을 찾는 가족은 해마다 쫄아드는 것같다. 어느 때부턴가 부모보다 애완견이 상전이 되어선가?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아낙이 애완견을 포대기에 싸서 등에 업고 공원에 나와서도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해서 어느 할머니가 첨엔 "손주를 업고 나왔나 보다."했단다. 그런데 후에 보니까 개를 업고서 '내 새끼' 라고 하니 기가막혀서 "아니 어쩌다 개를 낳았노?" 내가 이제 늙어 보는 시각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상이 점점 개판이 되어가고 있는 것같다.
금번 소위 국헌 문란을 일으킨 것을 두고 "도적이 제발제린다"더니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고 윤대통령 측들이 주장한단다. "내가 정말 잠시 권력욕에 눈이 어두어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대 국민 사과를 하면 될 것을 도리어 국민을 우롱하듯 '계엄령'이아니라 '계몽령'이라고 일국의 대통령이 거짓을 진실처럼 호도하니 참 어이없다. 그 말을 그대로 믿는다해도 정작 계몽을 받아야 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자성할 줄 모르고 염장지르는 소리만 해대는 윤대통령 무리들이다. 정말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이런 맹랑한 궤변을 늘어놓는 걸까? 그가 정녕 이나라 대통령이었던게 맞나 싶다. 계몽이란 수세기 전 유럽 전지역에 일시적으로 계몽주의 전제국시대가 있었던 '앙상레짐' 이다. 윤석열 대통령측은 지난 1월 23일 헌법 재판소에서 "국민들은 12.3 계엄령 이 아닌 '계몽령'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 헌법 재판관을 지낸 윤석열의 변호인이 국민의 이름을 빌려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 주장했다. 요즘 며칠동안 중국에서 서풍이 불어와 미세먼지가 대기를 완전히 오염시켰고 이제는 눈이 전국적으로 내려 전국 도로가 눈으로 뒤덮혀 귀성객들이 힘들어 하듯 정국 또한 한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들만큼 요동치고 있다. 윤석열씨가 정치만 어지럽히고 있는게 아니라 언어까지도 한없이 오염시키고 있다. 참 오래 살다 보니 계엄령을 계몽령 즉 "무지몽매 한 국민들을 일깨우고자 '계몽령'을 선포했다."하니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계몽령이란 단어를 처음 발표한 이가 지난 날 헌법재판관까지 지냈던 이나라 법조계 원로의 입에서 조금도 주저없이 국민들을 호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권력과 인간에 대한 비애를 느꼈다.
일국의 대통령과 전 헌법재판관 그리고 국방부 장관이었던 자들이 대 국민 앞에서 안면몰수하고 어떻게 일상의 언어까지 이렇게 오염시킬수 있을까 싶어 화가 치민다. 특히 지난 날 헌법재판관까지 지냈다는 법조인의 입에서 계엄령을 계몽령이라 미화시킴으로 나라의 근간인 법까지 희화해서 필경은 모든 국법까지 오염시켜 법(法)을 마치 차선(車線)없는 도로(道路)처럼 법이 무너져 내린 사회를 상상해 보시라! 한때 헌법을 수호했던 전 헌법 재판관의 입에서 헌법을 이리 깔아 뭉개고 계엄령을 정당화하는 윤석열의 변호인 이전에 법을 지켜야 할 법조인으로 서의 법인격이 여지없이 추락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위치와 여건 그리고 상황따라 저리도 변할수 있을까? 하고 가슴아프기도 하고 그 입에서 어떻게 엄정 엄혹하게 적용해야 할 법을 마치 곡예사 (曲藝師)가 줄(線)을 자유자재로 타고 노는 것처럼, 법조인들도 법(法)이라는 줄(線)을 자유자재로 타고 넘나들듯 엄혹한 나랏 법을 마치 조령모개 (朝令暮改)처럼 줄타기를 하는 망발들이 여과없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노라면 가슴이 아린다. 그들은 '비상계엄'의 의미를 "어리석은 국민들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을 한 것이라는 윤대통령 측과 윤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유투버들은 엄정한 헌법 재판정에서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을 한것"이이라고 자기들 수준에서 말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법조인을 법(法)을 가지고 법 줄타기하듯 말 장난을 한다 하여 '법 곡예사' 란 말까지 나왔을 것이다. 언어의 유희로 언어를 더럽히는 극우의 논리를 '헌법 재판소' 까지 끌고 들어온 이들이 바로 '계엄의 주동자들'이다.
계엄령을 주동자들 듣기에도 좀 섬뜩하게 들렸거나 대 국민들의 귀에 순하게 인식시키고 싶었든지 계엄을 계몽이라고 국헌문란의 주동자들이 자기들이 한 짓이 자기들 생각에도 낯이 부끄러워 말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의 단초를 연이가 바로 전직 헌법 재판관을 지냈던 조대현 즉 윤석렬 변호인이 말을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같이 법 줄타기를 능소능대하게 잘하는 '법곡예사' 들이고 더 비하해서 말하면 '법 꼬라지들'이다. 또한 윤석열을 극성스럽게 지지하는 극우들도 조대현 변호사의 표현대로 계엄령을 희화해서 계몽령이라 부른단다. 도적이 제 발 제리듯 계엄령을 순화해서 진실을 호도하거나 희화해서라도 국민들의 귀에는 순하게 들리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제 2차세계대전의 추축국인 독일의 '히틀러'와 '괴펠스'가 아주 능소능대하게 법을 희화해서 국민들의 눈을 절묘하게 가려서 마침내 법(法)을 절대권력의 시녀로 만들어 필경 악마같은 야심으로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괴펠스같은 위인은 '진실'이란 언어자체를 부인하고 비틀어버렸다. 거기에는 승자독식의 중상모략만 있을 뿐이었다.
오늘 대한민국을 혼돈의 회리바람속으로 몰아 넣고 있는 윤석열씨의 어쩌면 평검사로 끝날 것을 사람 볼 줄 모르는 문재인에 의해 최고의 권좌까지 올랐으면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더 더하다 장기 집권의 야욕을 드러내면서, 마치 불꽃을 향하여 몸을 던지는 불나비처럼 아니 그 보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추축국으로 전 세계를 미승유의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세계대전의 주범인 독일의 히틀러와 괴펠스 같은 권력의 화신들을 보는 것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그는 지금도 자기 반성은 없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종종 그 수를 알 수 없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수억마리의 메뚜기 떼들이 마치 먹장구름처럼 하늘 가득히 까맣게 뒤덮고 날라와 채소 밭에 내려 칼로 채소를 자르듯 사각사각 삽시간에 모두 갉아 먹어 버린다고 한다. 며칠 전 서부지법이 마치 전쟁의 융단 폭격을 맞은 듯이 아니 어쩌면 피 맛을 본 지옥의 아귀들처럼 아프리카의 메뚜기떼들 처럼 서부 지법에서 윤대통령에게 공수처의 구속수사를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리자 윤대통령 지지자들이 갑자기 폭도로 돌변 서부지법 건물전체를 완전히 무법천지의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꼭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평생을 법에 묻혀 살아온 대통령이 자신이 발표한 '계엄 포고령'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변명은 국민을 너무 우롱하는 행위다. 계엄령으로 국가 권력을 오로지하려는 것과 강도가 상대를 제압하고 강도 질을 하는 것과 그 근본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계엄령으로 나라가 엄청난 국난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에 대한 비난을 모면 하려는 것을 가리고 엄포만 주려 했다고 하는 것은 주객(主客)을 전도(顚倒)시킨 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왜냐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계엄령으로 "국가 모든 수사권을 줄테니 싹 잡아들이라"고 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입법부의 모든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비상입법기구를 만들려고 했다는게 자명해 진다.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지키는 자리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설혹 대통령일지라도 그 누구도 임으로 할수 없는 원칙이 바로 '삼권분립(三權分立)'이다.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윤대통령이 승소하여 다시 남은 대통령 권력을 회복케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이번 헌법재판소에서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의 거짓과 허구가 낱낱이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혹 그가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 한다면 그는 어떤 모습의 대통령일까? 도찌니 개찌니다. 달라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비상계엄의 격식을 갖추려고 국무위원들에게 명령쪼로 쓴 쪽지를 똥과 된장도 구별할 줄 모르는 김용현은 "자기가 작성했다."고 하니 참 소가 웃을 일이다. 계엄 주동자들은 각 부처에 대한 대책을 계엄령으로 대신하고, 현재의 입법 기구인 의회를 해산하고 '비상 입법 기구'를 두어 국회를 대신하려 하였다. 그들은 오로지 권력욕에 사로잡혀 계엄령 을 발포함으로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를 뿌리째 말살하고 히틀러와 같은 파시즘과 군국주의로 그리고 서슬퍼렀던 전두환과 박정희 시대로 시계추를 되돌리려 했던 권력욕의 화신들이었음을 명심하고 혹여라도 저들의 궤변에 속지 마시라!
앞서 말한대로 저들은 계엄령이 아니라 '대 국민 계몽령'이었다 하고 "이 계몽령'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새롭게 깨어나게 하려 했다."고 '파씨스트들의 궤변'으로 마치 에덴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하던 뱀처럼 세치 혓바닥으로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우기는 이 이무기들이 바로 극우 유튜버들과 극우 지지자들의 단골 멘트인 것이다. 뭐든 극좌 극우가 말썽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정에서 다시 이 말을 들고 등장 했다. '국민들은 비상계엄을 '계몽령' 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통령에 저항하는 세력이 윤대통령을 내란 죄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또 다시 꺼내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언론들은 이를 궤변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국회의원선거만 부정이고 대통령선거는 부정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저들의 궤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비정상적 투표용지가 무수히 발견되었는데도 대법원은 '선거부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으며, 중앙선관위는 독립된 헌법기관 이라며 "조사를 못 하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한 조대현 변호사는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통령 대리인단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후 이듬 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돼 6년간 근속 했다. 한때 헌법을 수호했던 전직 헌법 재판관이 인면수심이되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함께 "계몽령'이란 주장을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까지 끌고 들어 왔다. 그는 또 "의원이 아니라 '요원'을 빼내라"고 했다고도 했다. 화생섬섬(禍生纖纖)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이말은 '티끌모아 태산'이란 말처럼 "나라의 큰 재앙도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말로 우리 요양원 금년 좌우명이기도 하다.
【종그니칼럼】잃어버린 나를 찾자
흔히 사가(史 家)들은 권력의 화신으로, 중국 당(唐)을 멸하고, 신(新)을 세워 16년동안 철권통치를 한, 측천무후를 꼽는다. 그리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초석을 놓은 정도전 (鄭道傳,號는 三峰)은, 朝鮮을 요즘 버젼으로 말하면, "왕(王)은 존재하나 통치하지 않는 입헌 군주제"를 꿈꿨으나, 전제 군주국을 내세운 이성계의 제 5자 이방원에게, 참살당하고 말았다. 새 왕조 건국의 야심을 품은 이방원은, 부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후, 그가 조선 제 3대 왕(太宗)이 되자, 왕권을 튼튼히 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중신들과 왕가의 인척가문을 척살하였다.
그렇게 세운 조선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옛말에 기만즉 일, 인만즉 상(器滿卽 溢, 人滿卽 喪 : 그릇이 차면 넘치고, 사람이 차면 죽는다.)이라 했다. 조선역사에서 세종과 정종외에는, 모두 범인에 불과하여, 결국 근세(近世)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高麗)는 천년의 빛깔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고려청자에서 보듯이, 자기의 기량을 맘껏 펼수 있는 실사구시의 사회였다. 허나 조선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사대부 중심의 신분사회였다.
그리스의 정신적 지주 였던 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당시 부패한 사회를 만들어 낸, 소피스트(지식쟁이)에 의해, 사회는 겉잡을수 없는 혼탁한 사회가 되어 갔다. 이때 그는 권모술수가 난무한 정치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독잔 '헴록'을 마시려하자, 제자들은 그를 향하여 "이 나라의 버팀목인 스승에게 사약을 내리다니요!" 그러나 그는 조용히, "악법 또한 법이다."하고, 사약 헴록을 마시고는, “크리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 주게나.” 아스클레피오스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의료의 신이다. 사람들은 병을 고쳐 준 의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닭 한 마리를 바치는 것이 관례였다. 소크라테스는,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이 일을 기억하고 이를 부탁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현인으로 높이는 이유는, 뭇 세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이런 남다름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대로, "인간은 홀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 감사하며 사는 것이, 바른 인간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 날, 이 보편적인 것이 오히려 번문욕례처럼, 버거운 짐이 된 세상이다. 지금 우리는 양보와 호혜가 아닌,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법치 만능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법치는 경우와 사리(思理)의 원칙을 이름이다. 과연 그러한가? 작금의 법조인을 세인들은, 법이라는 줄을 타는 '법 곡예사'라 칭한다. 법을 수호하는 자가 아니라 "법을 용의주도하게 이용하는 자"라는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아주 "닳고 닳은 뱅이들" 이라는 게다. 그러나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쌀 뒤주가 크다 보면 뉘도 있고, 돌도 있듯이 말이다.
어느 분야에 소위 전문인이 되려면, 최소한 2만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데,
사람을 교도소로 보내는데 숙달된 검사가, 등떠밀려 대통령이 되었다. 1950~1970년대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려면, "무의식에서의 모든 생각이 법의식화가 될 때."라고 했다. 이처럼 모든 사고(思考)가 법의식화된 검사가, 대통령으로서의 국정에 대한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 아마추어 대통령이, 거대한 나라의 살림을 살려내는 대통령, 그리고 민심을 읽고 여야를 아우를 줄 아는 대통령이길 바란다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싶다. "법은 강자의 논리."라는 말 처럼 법이 정치화 되어, '강자의 논리'대로 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대통령이 국정을 잘 펴도록 보필을 잘 해야 하는데, 하나가 되지 못하고 삐꺽소리만 들리고 있다. 왜 그럴까? 바로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빵집에서 빵하나를 훔친 소년이, 경찰에 붙잡혀 바로 즉심에 넘겨졌다. 판사는 잔뜩 쫄고 있는 소년에게 물었다. "왜 빵을 훔쳤니?" "너무 배가 고파서요." "빵하나 사먹을 돈이 없었니?" "예." "부모님은 뭐하시니?" "아빠는 도박을 하다가 교도소로 가고, 엄마는 도망갔어요." "네가 남의 물건을 훔쳤으니 벌금 5달러에 해당한다." 그리고 판사는 자기 지갑에서 5달러를 꺼내면서, "이 돈은 너처럼 가난한 아이가, 거리를 방황하는 동안, 나는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배를 채우고 있었던 것에 대한 벌금이다." 그리고 판사는 5달러를 모자안에 넣고는, 방청객들을 향하여, "여러분도 나처럼 벌금을 내고 싶다면 이 모자안에 넣으십시요." 모자가 방청석을 돌기 시작하자, 모두 흔쾌히 모금에 동참하였다. 잠시 동안 판사의 모자는 지폐로 가득찼다. 판사는 그 것을 소년에게 주자, 소년은 당황하였다. 판사는 다정하게 "너는 이 벌금을 받을 자격이 있단다. 이 돈으로 네가 지불해야 할 빵값과 벌금을 내고 집으로 가서, 다시는 이 자리에 오지 말거라." 이 소년이 자라 어떤 인물이 되었을까?
기독교에서는 부활 신앙을 흔히 '죽어서의 부활'만을 얘기한다. 그러나 부활을 이처럼 끊어서 얘기하지 말고, 바로 지금 살아서의 부활을 얘기하자! 인간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받고 태어났으어도,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기대고 살면서, 타고 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주님께서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에, 마르다는 마지막 때의 부활을 얘기한다. 바로 지금이 아닌, 먼 훗날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창조자의 뜻을 따라 사는 진정한 부활의 삶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지 않고 사는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