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제안
임성모 목사 (웨슬리안조직신학 연구소)
오늘 저에게 주어진 과제는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를 정확히 이해해 보고 양자 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설정해 보는 것입니다. 순서는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핵심적 가르침에 대한 간략한 이해, 두 진영 간의 불신, 두 진영의 건설적인 관계’입니다.
흔히 개신교회 신학 경향을 크게 나누는 틀 가운데 첫째는 근본주의/복음주의 자유주의, 둘째는 칼비니즘/알미니아니즘 (또는 웨슬리아니즘)입니다. 그러나 현재 전세계 교회에 가장 강력한 신학적/목회적 흐름은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입니다 (에큐메니칼 진영도 포함할 수 있겠으나 그들은 신학적 자유주의를 선호하고, 특히 최근에 동성애와 종교 다원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로 목회 일선에 서 크게 환영받지는 못합니다.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관계 설정은 교회의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1. 개혁주의 (Reformed Theology, Reformed Tradition)
개혁주의란 종교 개혁자 존 칼빈 (장 칼뱅) 사상과 그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발전한 칼빈주의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마틴 루터도 종교개혁자이지만 그의 사상을 개혁주의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칭의론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루터 에 비해 칼빈의 신학 범위는 더 포괄적이고, 성경을 주로 다루던 루터에 비해 칼빈은 성경 주석과 더불어 조직신학에서 큰 강점을 보입니다.
칼빈에서 시작하는 개혁주의의 학문성은 청교도주의 (Puritanism), 프란시스 툴레틴 등의 17세기 개혁주의 스콜라티시즘 (Scholaticism),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 화란 개혁주의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등), 미국 개혁주의 (루이스 벌콥, 벤자민 워필드, 찰스 핫지 등), 유럽 개혁주의(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토마스 토랜스 등)를 거쳐 최근 각광받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마이클 호튼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교파적으로 보면 가장 학문성이 강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침례교회는 칼비니즘과 알미니아니즘 (또는 웨슬리아니즘)에 크게 의지하고, 감리교회는 조직신학 분야가 개혁주의에 비해 약세입니다. 물론 과정신학 같은 것을 발전시키기는 했으나 성경, 교부, 종교개혁자를 중시하지 않기에 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개혁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교리 연구가 깊고 그것을 신앙고백 (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핵심적인 신조 (도르트회의의 TULIP)에 잘 표현합니다. 이제는 영국의 로버트 레담의 말을 빌려 개혁주의의 주요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The Centrality of God,’ ‘Cristocentricity,’ ‘Pluformity’).
첫째, 하나님의 자기 계시, 삼위일체,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개혁주의의 명백한 초점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오직 하나님 지식에 의해 자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구원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활동에 근거합니다. 이중예정설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인간에게 달려있지 않고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속죄 (atonement)에 근거합니다. 성령님은 신자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연합하게 합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삶은 성경에 의거하여 질서를 잡게 되고, 성화와 율법 준수가 중시됩니다.
둘째, 칼빈 등 초기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지속적인 초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스콜라티시즘이 도입되고 언약신학이 발전하면서 그리스도 대신 다른 요소들이 지배적이게 되었습니다.
셋째, 개혁주의는 단일하지 않습니다. 도르트회의 이전에는 구원의 범위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었습니다. 17세기 언약신학이 발전할 때도 언약의 성격에 대해 견해차가 있었습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하신 일방적 약속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상호적인 동의인가에 대해서였습니다 (2016: 748-749). 레담이 빠뜨린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성경 권위 강조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당시 가톨릭과 달리 권위를 교황, 교회, 전통에 두지 않고 성경에 두었습니다.
19세기 독일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역사비평 등 세속 학문의 눈으로 성경 권위를 허물고 교회가 그 영향을 받고 있을 때 미국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 무오설 (biblical inerrancy), 성경 영감설 (biblical inspiration) 등을 발전시켰습니다. 교회가 여전히 신앙과 신학의 최고 표준과 권위는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가르침 (Sola Scriptura, Norma Normas non Normata)을 유지할 수 있게 된데는 이들의 공헌이 큽니다. 발제자는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근본주의 신학으로 무장한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다종교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는 벌써 혼합종교가 되어있었을 것입니다.” 교회 정체성을 지키는데 있어서, 성경적 신앙과신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개혁주의는 ‘높은 학문성,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 권위에 대한 일관적 강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조롭지 않고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 습니다. 약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한국 장로교단은 3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교리적이어서라는 설명은 단견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지역적, 인간적, 신앙적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되어 교단이 갈라집니다. 교단이 갈라지는 것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 없습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메이첸과 반틸이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로 갈라져 나간 사건은 진리 수호를 위한 좋은 예입니다.
성경 권위, 성경 진리를 수호하는 것과 칼빈 신학을 따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때때로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성경의 핵심적 가르침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집중하지 않고 사소한 것 가지고 다투는 점과 성경의 권위를 높인답시고 복음이 아닌 당대 문화적 요소마저도 영속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격상시키는 해석학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유지하면서도 역사나 문화적 요소에 대해서는 해석의 탄력성과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가 신학적 목회적 과 제가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 복음주의 (Evangelicalism)
복음주의란 오해가 많은 용어입니다. 다양한 흐름이 포함되어 있기에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듭니다. 또한 복음주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복음주의자 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아 다소 헐값이 된 느낌도 있습니다.
먼저 복음주의란 개신교 신학을 가르킵니다. 더 좁혀서 루터교를 가르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계는 18세기 영국의 Methodism 운동 (존 웨슬리, 조지 휘필드),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부흥 운동을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기원으로 봅니다. 근본주의를 복음주의에 포함하는 학자들은 20세기 복음주의를 신복음주의 (New Evangelicalism)로 부릅니다. 근본주의를 포함하지 않을 경우 18세기 운동부터 20세기 운동까지를 일관적으로 복음주의라고 부릅니다.20기에 영국에서는 존 스토트, 미국에서는 칼 헨리, 빌리 그래함 등이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복음주의는 어느 교파 운동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교파와 일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오순절교회 등 다양한 교파 안에서 (파라처치 운동 포함) 복음주의 경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복음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주의 특징을 말할 때 David Bebbington의 자주 정의(定義)가 인용됩니다. 그는 conversionism, biblicism, crucicentrism, activism 4가지를 구별해 냅니다 (Hindmarsh 2017: 292).
첫째, 복음주의는 중생 경험, 회개와 칭의를 중시합니다.
둘째, 성경을 신앙과 신학의 최고 권위로 여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 말씀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습니다.
넷째, 신앙의 표현 (전도, 봉사 등)을 강조합니다.
존 스토트가 주도한 1974년 로잔회의에서는 기독교인의 사회정의를 위한 참여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더 좋은 정의는 로버트 존스톤 (풀러신학교)이 내립니다. 그는 복음주의 신앙의 핵심적 특징 (성경적 권위, 개인의 회심, 복음적 증언)을 머리 (head), 가슴(heart), 손(hands)으로 비유하고 셋이 같이 움직이는 것을 중요하게 봅니다(2000:219).
복음주의의 장점은 머리, 가슴, 손을 동시에 강조하는 균형있는 신앙입니다. 약점으로는 쉽게 세속정치와 결탁하는 것 (예를 들면 우파 정치인들을 지원하는 미국 복음주의자들), 타락 (예를 들면 미국의 방송 설교가들) 등을 들 수 있 겠습니다. 가장 큰 약점은 신학적으로 깊이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학계에서 지금은 그 위상이 상당히 다릅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톰 라이트 (성공회), 스탠리 그렌츠 (침례교), 케빈 밴후저 (장로교, 성공회), 미로슬라브 볼프(오순절 교회 출신), 리차드 헤이즈 (감리교회) 등은 세계 신학계를 주도합니다.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신학교들도 대단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예.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그러나 목회 현장에서는 정확하고 깊이있는 신학 훈련이 부족한 목회자를 자 주 볼 수 있습니다. 신학을 덜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에 초래된 문제일 수도 있고, 신학 교육과 목사 안수 과정이 총제적으로 부실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목회 현장에서는 워낙 다양한 그룹이 복음주의란 타이틀을 내세우기에 교리적 일체감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면 오순절 교회가 주장하는 방언을 비롯한 성령의 은사, 성령 세례 등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신학 훈련이 부족하기에 목회자들이 신사도 운동 등에 빠지기도 합니다.
3. 상호 불신
개혁주의측은 복음주의권이 신학적으로 부족하다고 비판합니다. 목회나 전도를 위해 진리를 제쳐두는 경향성이 있다고 불쾌해 하거나 폄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주의권에는 알미니안 또는 웨슬리안이 포함되어 있는데 (예. 감리교회, 성결교회, 펜테코스탈 교회, 상당수 침례교회, 구세군 등), 그 점도 개혁교회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습니다. 알미니안은 오랫동안 칼빈주의자에게 이단 또는 칼빈을 왜곡시킨 자로 공격받았기에, 일부 보수적 개혁주의측은 감리교회도 의심스러워합니다. 웨슬리를 알미니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소위 웨슬리 사변형 (Wesleyan Quadrilateral, 성경 전통 이성 경험)도 비판의 대상입니다.
장로교회 복음주의자인 도날드 블뢰쉬는 이성과 경험이 독립변수로 작용하는 경우를 지적하고 비판합니다 (1992: 209). 물론 웨슬리는 사변형을 주장한 적이 없고 자신을 ‘한 책의 사람’ (Homo Unius Libri)로 규정하기에 과녁을 벗어난 비판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웨슬리안들이 자유주의 그리고 지금은 펜테코스탈교회 영향으로 교리와 성경을 이탈하여 세속적 이성과 감정주의/열광주의/신비주의로 빠지는 경우가 가끔 일어나기에 전혀 틀린 비판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즉 블뢰쉬의 비판은 웨슬리에게는 맞지 않지만 일부 웨슬리안에게는 해당됩니다
반면에 복음주의권은 개혁주의를 차가운 교리주의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특히 보수적이고 정통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일수록 성령의 은사를 초대교회 기간에 국한시킨다고 불평합니다. 개혁주의가 성령의 사역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주의 교회는 펜테코스탈 교회의 영향으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에 여기에서 입장 차이가 생깁니다.
4. 상호 존중과 상호 협력
세계 교회, 특히 한국 교회는 교세의 약화, 이단의 창궐, 동성애 문제 등 교회 내적 외적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개혁교회와 복음주의는 상호 겹치기도 하지만 독특한 신학적/목회적 지향과 실천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둘 다 주님을 따릅니다. 둘 다 주님의 교회입니다. 서로 장점을 배우고 약점을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기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 힘을 합해 시대적 도전에 응전해야 할 시점입니다. 개혁교회는 복음주의권에 신학의 중요성을 가르칠 수 있고 (예. 여의도 순복음 교회, 한마음교회, 인터콥 등), 후자는 개혁교 회에게 성령님이 주시는 신앙의 활력 (vitality)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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