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Just do it.

2022-07-21     김종근 목사

나의 고향은 전라북도 임실이다. 탁 트인 들판이 없는 두메산골에서 자란 더벅머리가, 1960년대 중반, 서울 땅을 첨 밟았을 때, 서울은 완전히 딴 세상 별천지였다. 그때보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오늘의 서울 모습을 그때 보았더라면, 나는 아마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갔었을 것이다.  춘천에서 일년에 한번 정도, 어쩌다 서울에 들어서면, 괴물처럼 천정부지로 들어서 있는, 현란한 빌딩 숲과, 탁한 공기에 숨이 차다. 1960년대의 서울! 옛과 현대가 적당히  조화된 고풍스런 도시였다. 사람이 환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환경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그 당시 서울역에서 초등선생님이 계시는 왕십리를, 도저히 찾아 갈수 없어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시골 촌뜨기인줄 금방 알아보고, 서울거리를 돌고 돌아, 쌀 한가마 값을 지불하고서야 주소지에 내릴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택시기사가, 그 돈만 받고 주소지에 내려 준 것만도 고맙다.  시골 쑥맥이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서울 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시골에 이대로 눌러 있다가는, 새로운 문물을 읽힐 기회를 영영 잃을 것같아, 무조건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시골 촌뜨기로는, 내 생애에 있어, 인생의 대 전환이었다. 그때 상경할 때, 내 손에 쥐어진 돈은 고작 송아지 판 돈과, 쌀 한가마 값,  일만 오천원이 전부였다. 나는 그 돈으로 그해 겨울까지를 견뎌냈다. 박찬원 은사님이 운영하는 사설학원에서, 밥해 먹고, 잠자고, 종로 1가에 있는 EMI학원에, 근학생으로 들어가 대입시준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생애에 유일한 꿈꾸는 낭만의 때 였다. 그땐 공중화장실 이용 요금이 대소변 구별없이 5원이었다.  당시 전동차 요금이 2원 50전인 것에 비하면, 공중화장실 요금은 턱없이 비쌌다. 그래서 나는 금쪽같은 돈을 아끼려 하수구를 찾아, 소변은 거기서 실례를 했다. 서울 유학의 고학생활은 이처럼 지독한 자린고비의 삶이었지만, 그러나 그 시절은, 오늘의 나를 형성한, 젊은 날의 낭만의 세월이기도 했다.

이처럼 자연의 섭리인 춘하추동처럼, 인생을 운명에 맡기는 숙명적인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주어진 여건에 던져, 용트림을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삶에는 결단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어서, 일회자의 삶에 천금같은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에 온 다음 해에, 삼양라면을 처음 맛을 보았 는데, 그 맛이 가히 별미였고 인기가 대단했다.  맛과 요리를 완전히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인생도 이와 같다. 인생은 누가 열어주는 것도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1960~70년대 스포츠화 시장의 독보적인 회사는 ‘아디다스’였다. 워낙 독보적이어서 다른 브랜드는 감히 경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렇게 아디다스가 독점하고 있는 시장에서, '뉴 프론티어정신'으로 몇몇 젊은이들이,   신세대들의 안목으로,  스포츠 운동화에  창업의 뜻을 품께 되었다. 자본도 부족하고 경험도 일잔한 젊은이들이, 젊은 프론티어정신 외에, 아무 노하우도 없이, 스포츠 신발업에 뛰어든다는 것이, 기성세대들에겐, 신선한 충격이 아니라 만용으로 보였기때문에,  부정적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세론에 밀리지 않고, 젊은 패기를 자본으로 창업을 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손을 놓아야 할 위기가 왔지만, 응당 예고된 위기였기에,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 여기고, 젊은이들이 다시 모여, 판도를 바꿀 새로운 전략을 모색했다. 

여러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그 어떤 것도 판도를 바꾸기에는 부족한 방안들이었다. 한참 회의를 거듭하다가,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일하면서 배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뭐라고 폄하 하든 물러서지 말고, “그냥 하자!"고 했다. "그냥 하자!" Just do it!  이 공감대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고, 마침내 Just Do It!이 회사의 슬로건이 되었다.  “Just do it!" ‘나이키는 창업 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아디다스를 앞질러, 전 세계 최대 스포츠 용품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일' '무난한 일'을 찾기보다, 원래 '기업정신'이 호기심 가득한 '모험심'에서 나왔듯이, 무모하리만큼 도전하다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노 하우를 스스로 터득해 가는 것이, 바로 창업정신이다.

우리나라 기술진으로 만들어진, 초음속 군사 비행기가, 엇그제 수시간 동안 실험 비행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수년전 미국이 기술 이전을 해주겠다 해놓고, 약속을 어기자, "우리 스스로 도전 해보자!" 우리도 할수 있다! "하면 된다!"고 다짐,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세계가 깜짝놀랄 쾌거를 일궈낸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이 있다. 그럼 아는 것이란 무엇인가?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 존재이기에, 인간의 힘 중에서 가장 큰 힘은, 사랑의힘, 신앙의 힘이요,  섬기는 힘, 낮아지는 겸손의 힘이다. 나라 정치도 이와 같이 서로를 존중해 주는, 생각이 달라도 '듣는 귀'가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성경에서는 ‘멍에’라는 말은, ‘하나님의 법’을 가리킬 때 사용했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닌, 아주 편하고 가벼운 짐으로 여겼다. 믿음을 간직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인생의 짐을 흔쾌히 지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멍에를 메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다. 그들의 삶이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주의 일을 하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의 부요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하다 보면, 길이 열린다.  “Just do it.” 그러기에 사람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재산도 지위도 아니고,  바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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