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민초(民草)의 맘을 읽는 정치.

【종그니칼럼】거듭남

2024-03-23     리폼드 투데이

옛 말에 "丈夫一言  重千金(장부일언 중천금)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소신이나 공인으로 밝힌 말을 손바닥 뒤짚듯 말 바꾸기를 능사로 하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는지 공인으로서 한 말도 여건이나 입장에따라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요즘 국회의원 선거 철이 되어서 그들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 민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보다 오로지 서민들의  표심을 손 쉽게 얻어내기 위해 여야할 것없이 온갖 공약(空約)들을 남발하고 있다.  그 공약들을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공인(公人)은 국민들을 상대로하여 쏟아 낸 말들에 대하여 상응한 책임을 져야한다. 윤대통령은 몇년 전 대선 때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해 조목 조목 지적한 말들을 지금 기억하고 계실까?  총선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서민들의 삶은 너무도 팍팍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해 3월 어느 날 울산광역시 신정시장 내 과일가게를 방문했을 때 그 상인이 푸념하듯 하소연 하기를 "비싸서 못 가져와요  도매 시장도 좋은 건 한 송이 1만 5000원이 넘는데 그걸 누가 사겠어요?  그나마 수입 과일이 싸요" 새벽마다 주차장 한쪽에서 야채와 과일을 파는 이 아저씨는 도매시장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과일 값이 오른다고 하소연 한다.   실제로 청양고추는 100g이  2000원이고 풋고추는 18개 3000원, 설 명절 지나면 나아질거라던 과일과 야채 값이 오히려 천정부지로 올라 이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못해 사는게 두렵다. 

대체 서민들이 어떻게 살라고 물가가 올라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채소·과일 등 55개 품목으로 구성된 신선식품의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0% 급등했다. 지난 달 과일 물가지수는 38.3% 올라 199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것은 통계일 뿐 현실에서의 서민들의 절박함은 훨씬 더 크다. 사과 하나에 6천원, 대파 한단에 7천원. (그런데 엇그제 윤대통령이 서울 강남 어느 대형마트에 들렸는데 대파 한단을 특가로 820원에 팔고있을 때 윤대통령이 그 대형마트에 들려 한마디 했다.  "채소 값이 이 정도면 살만하다"고 했단다. 선거철임에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것은 드문일이다. 그럼 총선이 끝난후엔 어찌될까?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에 비해 물가가  안정적이어서 국내 해외여행객들이 너 나없이 일본 여행을 간다고 한다.   그에 반해 일본인의 우리나라 여행객은 미미하다.  더 암울한 소식은 물가가 더 오를 것이 국제 유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 대선 문재인정권 때 물가 급등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묻자"고 하던 윤 석열 대통령은 지난 문정권때보다 훨씬 더 치솟고 있는 오늘의 물가에 대해 할 말이 없을 것같지만, 그러나 대통령은 이처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물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총선시기에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있는 것이 두 내외분이 어쩌면 저리도 얼굴이 두꺼울까 싶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 11월 15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문재인 정부, 돈 뿌리기 그만하고 물가 대책에나 주력하시라"는 장문의 글을 SNS에 올려 문재인 정부 경제 실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성 돈 뿌리기 정책이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이때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코로나 지원금' 등이 물가를 끌어 올리고 나라 살림살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돈 풀기 정책보다는 집권 2년 동안 긴축재정으로 국민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한 윤석열 대통령. 그런데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의 고통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문재인 정부 때보다 되려 지금이 훨씬 더 혹독하다. 물가 상승에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일이 커진 후에야 늑장대책을 하고 있다고 나무랐던 윤석열 후보였다. 하지만 집권 3년 차 윤석열 정부 역시 물가고를 미리 대비하지도 못했고, 이미 오른 물가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윤대통령은 전국을 돌며 수십여차례 민생 토론회를 열었지만 정작 국민들이 가장 듣고싶어 하는 이야기는 없다. "돈 뿌리기 포퓰리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물가가 오르냐"고 묻는 참석자도 없고, "치솟는 물가 대책을 어떻게 세우겠다"는 설명도 없다. 그럼 저들은 이 모임에 왜 왔을까?  이게 바로 우중정치 (愚衆政治))다.   

물가 관리는 민생 안정의 기초다.  지금 소득 하위 20%의 국민들은 식비가 가처분소득의 절반을 넘고 있다고한다.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치도 없는 막막한 서민들의 삶에 대한 공감대도, 해결 의지도, 대책 마련도 전혀 보이지 않는 민생 토론회! 그것도 국회의원 선거철에 오히려 위정자들의 머리꼭때기에 있는 민초들이 어떤 맘을 갖고 있는지 서민들의 내면의 맘도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민생토론회를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국회의원 선거 철에 역주행하고 있는 민생토론회가 너무 속보여 민망스럽다.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윤석열 정부의 경제 실정이나 물가고를 해결하라는 주장은 언론에서도 쉽게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와 주가조작 의혹도 관심사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다.  그러나 선거는 유권자인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선택이다. 사과 한 개에 만원이 가는 물가고에도 전국을 누비며 '민생에대한 대책 없는 민생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현 정권에게 총선의 심판목록 1호의 대상은 뭘까?  바로 경제 정책이다. 지난 2020년 4.15 총선을 하루 앞두고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사설에서, "이번 총선은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세력을 심판하는 선거다.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는 선수(집권 세력)의 퇴장을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고 반칙에 대한 엘로카드를 줄 것이냐를 결정하는 자리다.  선거에서 패배해도 문 정권은 그대로 있다. 적어도 2년은 그렇다. 다만 나라의 경제를 파탄 내고 안보를 멋대로 재단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좌파 이념 몰이'는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는 중간 평가의 자리다." 이제와서 위 칼럼을 읽고 있노라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아닌 윤석열 정부를 향한 힐란의 칼럼으로 읽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글이다.  이처럼 역사는 인간의 욕심을 따라 어리석은 길을 반복하여 가는가?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패한다고 해도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유권자는 공정성을 잃은 법 집행, 폭등하는 물가고, 부자와 기업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부자 감세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 말하면 좌향 좌의 좌파 정권도 우향 우의 우파정권도 이처럼 시야가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자칫 모두 불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위정자가 방향설정이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주는 것이 주권재민인 유권자에대한 예우이자 책무다. 김대중 주필은 같은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는 지난 3년간 문재인 대통령을 알 만큼 알아왔다. 매일 보고 듣고 살아왔다.   결론은 문 대통령에게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우리에게 보여줄 것도 없다"고 했다. "그는 경제정책의 잘못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는 국민 앞에 어려움을 털어놓고 솔직히 이해를 구하는 인간성을 보여준 적도 없다."는 이 말은 지금 시점에 대입해도 송곳 같은 지적이다. 문재인정권도 현 윤석열 대통령도 숱한 실정과 경제 난맥상에도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거나 이해를 구한 적이 전혀 없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란 어제 나의 정적이 있던 그 자리에 오늘 내가 그 자리에 있음을 이름이다.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가 있다. 오늘의 영국이 그렇고 일본이 그렇다. "왕은 존재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체제이다. 우리나라는 선거에 의해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뽑는데 대통령후보자 조건이 대통령학을 이수해야한다든가 하는 대통령후보로서의 어떠한 자격 전제조건도 없다. 그러다 보니 한 때의 인기를 업고 아무런 검증도 없는 아마추어 통치자들에의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린 예들이 많았다. 우리몸에 병이 오는 것은 99%가 좋아도 1%에 이상이 있을 때 병이 온다.  프로 의사는 이를 밝혀내지만 아마추어는 알리없다. 예를들면 박근혜, 문재인 전대통령이 그러하다. 특히 문재인정권은 재임시 원전을 후퇴시키고 화력발전을 국내와 해외에까지 확대하였다. 북한에 대해서도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현 윤석열대통령은 그가 대통령후보 때에 전두환 정권에대해 "그는 나라 각 분야를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전권을 맡겨 예상외로 나라경영을 잘했다."고 평했다. 그런데 전두환은 '인사가 만사' 라는 통치 술로 그분야 전문가에게 맡겼는데, 그런데 윤대통령은 장관 임명이나 정부 요직 인사를 완전히 자기 사람 중심이다. 이들은 대개 웟선 눈치나 보고 대부분 자기 소신이 없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본다. 그러기에 아무리 얘기해도 백년하청이다.   그래서 한번 엇나가면 항해의 동력을 잃은 정권은 갈데까지 가다가 결국 국민의 바다속에 잠기게 된다. 이 와중에 의사 증원의 원초적 문제로 의료 계와 사활을 걸고 승부수를 두고 있는데 신의 한수가 될지  장고 후의 악수가 될지 혹여 자신에게는 고무줄자를 상대에게는 쇠자를 들이 대며 서로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마치 국가권력과 국민건강을 담보로 한 의료집단과의 고래싸움에 애꿎은 국민들만 새우 등이 터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종그니칼럼】거듭남

나는 가끔 광활한 대 우주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일으킬 때가 많다. 대 우주 안에서 지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양양한 대양의 바다에, 좁 쌀 한 알보다도 작다고 한다. 그럴진대 우주안의 나를 말해 무엇하리! 며칠 전 보도에 의하면, 미 우주국에서 쏘아올린 인공위성이 보내준 사진을 보면, 광속으로 1250광년 거리에 있는 살아 있는 별 사진을 보내 왔는데, 인류에게 가장 큰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대 우주의 생성의 신비에, 한발짝 성큼 다가서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베일속에 있던 대 우주의  생성과정과 활동의 비밀들과, 그 이면의 모습들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무한성과 무한생성에 비해, 섬광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티끌에 불과한 우리가, 삼라만상 대 우주를 담은, 작은 우주적 존재임을 한번 상상해 보시라!  그때에야 비로소 이 우주를 창조하신 만유의 주 하나님을 실감하게 되리라!  대 우주앞에서 유한하고 잠시 있다 사라지는, 한낱 티끌같은 우리 인생들이, 과연 얼마나 대 우주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 우주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을 과연 티끌만큼이라도, 알고 있을까?   이천여년 전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옷을 입고, 로마의 속국 이스라엘에 오셨으니, 이 또한 얼마나 작은 모습으로 오셨는가?

그러나 그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 이심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듯이,  진실로 대 우주의 섭리를 좁쌀만큼만 깨닫게 되어도, 인류사뿐만 아니라 우주안의 모든 섭리가, 그분의 역사(history)임을 깨닫게 되는 날,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창조의 신비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안에 겨자씨 한 알갱이 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갈 것이다.” (마태 17,2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로보건대 우리는 이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기 때문에, 걸핏하면 불평 불만을 쏟아내고, 하나님 뜻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순무구한 사랑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분을 향한, 나의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없는 믿음을 키워야,  그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이 내삶의 전부가 될 때라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무한한 대우주적 사랑안에서, 좁쌀만한 믿음이라도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을 내 삶의 첫 자리에 모실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 말씀은, 처음 주님의 말씀을 접하는 사람에게는 충격적일 것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교회에 왔는데,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라고 하신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주신 말씀 또한 충격적이다. "부자간, 모녀간, 고부간에 갈라지면서, 서로 원수가 되리라."말씀하셨으니 말이다. 이는 무조건 원수가 되리라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순위에 두게 되면, 육신의 소욕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 온 모든 삶의 무게가, 아주 작아질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스스로 있는 그 자체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심과는 정반대의, 육신의 안목으로 사는 세상 세력은, 우리를 어떻게 하려 할까? 육의 세력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온갖 속임수로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그 세력이 바로 나일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평화가 아닌 분열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주님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서로 분열될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38) 

이사야 예언자도 이렇게 외친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케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이사 1,16)
주님께 합당한 자녀가 될 수 있는 믿음을 키우라는 것이다. 이처럼 육신의 욕망에 붙들려, 그것에 붙들려 있으면,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기때문에, 지난 날 살아 온 과거의 삶까지 모두 허구로 채우려 든다. 그러므로 육신의 안목을 버리고, 믿음의 신령한 눈으로 나를 보고, 이웃을 보고, 대 자연을 보고, 인류 공동체를 보게 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인류를 새로운 인간으로 재창조하시려 오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위치가 너무 작다고 생각지 마시라. 주님은 이땅에 아주 작은 모습 '섬기는 자'로 오셨다. '섬기는 자'는 내가 낮아지고 작아 질수록 '큰 자'가 된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역설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