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명품 인생.

2022-07-10     김종근 목사

옛글에 "지족이면 가락이나 수탐 즉 우(知足 可樂, 隨 貪 卽 虞")라는 말이 있다. "족한 줄을 알면 모든 것이 즐거우나, 탐심을 품는 순간 걱정이 온다."는 것이다. 나라 경제가 아무리 좋아졌다 해도, 현재의 삶에 자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왜냐하면 돈이란 바닷 물과 같아서 들이킬수록 갈증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나라의 경제 지수가 높아진 만큼 국민의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예전에 아주 가난했던 이가,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이만하면 됐다."하고 자족할 줄 알까?  부자가 되면 될수록 재물에 대한 욕심은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자기만족의 행복지수는, 바닷물과 같은 세상적인 것으로 충족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컨트롤 할수 있는 초아적인 것은, 육신의 안목이나 세상적인 잣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변화 내지 환골탈태란 육신적인 안목으로 얻어질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자기변화 즉, 일신 우 일신(日新 又 日新)이, 참으로 좋은 자세 이지만, 육신의 안목으로 보이는 세욕을 끊고, 육안대신 영안을 넓혀, 새로운 자아를 찾는 새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세상 탐닉에 물씬 물들어 있는,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어렵다. 자기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사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특별한 능력과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 내면의 영적 인격의 교감으로,  중생의 체험이 있게될 때, 비로소 새 사람이 되어, 세상적이고 찰나적인 삶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잊고 사는게 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도, 그 소중한 하나님의 형상을 까맣게 잃어버리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왔음을 깨닫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 중생이요 거듭남이다. 잃어버린 본래의 나를 되찾아 주시고자,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인본주의적 의지로는, 혹 세속적인 일을 이룰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런 의지력만으로, 새 사람 즉 원죄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타락하여  육신의 본능을 따라 삶으로, 참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우리 인생을 찾아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벌거벗은 몸 그대로 만나, 잃어버린 나를 찾겠다는 절치부심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오신 예수를 만날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본래의 나를 구현 해 나갈 때, 비로소 변화되어가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명품을 선호한다. 어느 백화점 점원이 상품 값을 10만원으로 적을 것을 실수로 100만원으로 적었더니,  10만원일때는 고객들이 그 상품에 관심도 없더니, 100만원이 되자 불티나게 팔렸단다. 명품 증후군에 걸린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명품을 좋아하면서도,  자기변화 즉 명품인간이 되려는 데에는 관심이 적고, 세상과 함께 육신의 안목을 따라, 내면보다 겉치례에 더 마음을 쏟는다. 시샘과 의심으로 이웃과 불신의 감성에 매몰되어, 자기 변화에서 더 멀어질 때가 많다. 온 몸을 명품으로 치장한다고해서, 내가 명품 인격이 될수 없고, 얼굴을 뜯어 고친다고 인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건만, 우리는 '내면의 나'보다 외모에 목숨을 건다. 정작 인생의 모든 것이 변화된 사람은, 외모의 명품보다, 육안으로는 볼수 없는, 나의 내면의 바름을 본다.  

실제로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이에게 언제나 열린 마음을 가진 자이며, 의심과 불평이 아니라,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 때, 회당장이 찾아와 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오셔서 손을 얹고 안수해주시면, 살아날 것이라고 고백을 한다. 오늘 날 우리는 최첨단의 문명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참 나를 찾는 문제에 있어서는, 문명은 답이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참 자아를 찾을수 있다는 믿음도 없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내 지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이, 그를 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럼 믿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단순히 입으로 믿는다는 것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 생각만으로 '믿는다.'고 말할 수 없다. 복음에 나오는 회당장과 같이, 예수님을 찾아 가야 하며, 혈루증을 앓던 여자처럼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그 즉시 나으리라."는 절치부심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런 굳센 믿음을 통해서만 진실로 자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호와께서 내 죄를 감찰하실진대, 누가 주 앞에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나이다. 내 영혼이 주를 기다리며,내가 그 말씀을 바라나이다! 파숫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이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리로다!

 
       종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