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치리자의 품격.
【종그니칼럼】동방의 등불 대한민국
성경 잠언 23장 29절~ 31절에,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과 분쟁과 원망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술에 만땅으로 취하게 되면, 망나니가 된다. 그런데 취하고 빠져드는 것이 어찌 술 뿐이겠는가? 세상에 취하고, 돈에, 육신의 향락에, 권력에 취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다 잃는다.
'축배의 노래'가 있다.
'(OPERALA TRAVIATA)'
"마시고 또 마시자!
넘치는 잔속에 정렬의 꽃이 피어나네!
덧없이 가는 인생 쾌락으로 맘껏 채워보세!
정렬로 가득찬 흥분속에서 이 잔을 들이켜 보세!
오! 저 눈이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네!
마시자 마셔!
정렬의 포도주를!
사랑의 뜨거운 입맞춤으로 청춘을 즐기자!~~~"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심홍식이란 술 주정꾼이 있었다. 아내가 떡장수를 해서 근근히 사는데, 이 남정네는 허구헌 날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술 주정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이를 보다 못한 아내가, 술 주정을 술에 취해서 하는 건지, 아님 술을 빙자한 버릇인지 그게 궁금해서, 어느 날 밤 큰 유리병에 쌀 뜨물을 가득히 담아서, 술에 취해 천지가 모르게 자고 있는, 영감 방 윗목에 두었더니, 영감이 정신없이 코를 골며 자다가, 한밤 중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떠 보니, 막걸리가 가득 담긴 큰 술병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자다가 "이게 웬 술이냐" 하고, 쌀 뜨물을 막걸리로 알고 정신없이 마셔댔다. 그러고는 영락없이 또 술 주정을 해댔다. 그러자 이를 지켜 본 아줌마가 독하게 쏘아 부쳤다 "이놈의 영감 탱이가 쌀 뜨물 쳐먹고도 술 주정을 부리네" 이 말에 주정뱅이 영감 말이 걸작이었다. "어쩐지 잘 안 되더라."
옛 선인(先人)의 말에, "주중 불언은 진 군자(酒中不言 眞 君子)요, 재상 분명은 대장부(財上分明 大丈夫)"라 하였다. 국가의 오늘과 내일을 치리함에 있어서, 저울추처럼 공의로워야 한다면, 나랏 일을 맡은 삼권분립(三權分立)의 조정자로서의 대통령은 어찌해야 할까? 우리 대통령이, 벌써 나라 살림의 전부를 파악을 하신 것일까? 아님 술꾼이 술에 취하듯 권력의 술에 벌써 취하신 것일까? 평생을 법 집행자로 살아 온 분이, 대통령으로서의 초월적 자리에 군림하시니, 법치를 내세운 인치(人治)의 대통령이 되신 것인가? 정치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너무 즉흥적일 때가 둔감한 나의 눈에도 보여진다. 장사(商)에도 상도(商道)가 있듯, 나라를 다스리는 통수권자에게는 반드시 '격(格)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정치의 품격.'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정농단 죄로 지난 날 당신 손으로 죄를 물은 자들에게, 그에 맞는 어떠한 해명도 없이, 대통령의 자의대로 꺼내든 사면 카드가 그러하다. 대통령실에서 억지로 끼워 맞추다 설혹 아귀가 안 맞더라도, 맞물려 돌아가면 다행일 텐데, "갑자기 멈춰서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맘이 한 두번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 때도, 국정 농단이라는 배후가 드러나면서, 그 실체를 알게 됐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의 ‘내 맘’ 외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에겐 도무지 안개속이다. 이것이 검치(檢治)의 극치인가? 아님 통수권자가 절대 금기하여야 할 자의(恣意) 인가? 국정을 감정이나 자의대로 결정할 일은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느닷없이 노동 교육과, 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허지만 이를 언제,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동사회에 암적존재였고, 국가의 모든 기간산업에서 철밥통이었던, 민노총의 귀족 노조에 딱지를 붙여, 화물연대를 무릅 꿇린 용단에 대하여,나는 진실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문정권때에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듯 대단했었다. 그런데 연 이어 시민단체를 소환했다. "나랏 돈을 함부로 썼다."는 이유다. 물론 옥석은 가려야겠지만, 자칫 시민단체 길들이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성경에 "경우에 맞는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하였다 권력의 자리를 이용해서 뇌물 받아 몽땅 챙기고, 17년 형기 중 감빵 생활은 들락 날락, 고작 2년 남짓한 전직 대통령을 풀어 주면서, ‘국민 통합’차원 이라는 명분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으로, 너무 옹색하다 댓글 공작, 권력형 비리 부패 사범들도 대량 방출했다. 당신이 검사시절에 잡아 가두었던 사람들을, 분명한 기준이나 아무런 해명도 없이 풀어준다면, 그에 맞는 최소한의 설명이라도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과거의 윤석열과 현재의 윤석열과의 ‘자아 통합’ 이라해서, 이들을 다 끌어 모으려는 속내라는 세인들의 입담 조차 차라리 점잖다.
권력을 행사하려면, 응당 권력행위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권력의 술에 취한 것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하여 그 누구도 직언은 커녕, 보고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첨예한 위기 때마다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걸르지 않은 말’을 듣다 보면 내 심장이 쪼그라 든다. 대통령의 입은 무거울수록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무인기 침투 다음날 첫 반응은, 우리 군을 향한 ‘격노’였다. 그리고 ‘전 정권 탓’과 ‘확전 각오’였다. 이어지는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말은, 대통령의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아전인수격으로 말하는 것'이다. 북한 무인기가 대통령 집무관저까지 정찰을 할때, 대통령은 까맣게 모르고 반려동물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대통령은 우리 군에 드론 부대가 있는 것도 몰랐으면서, 전 정권 때 훈련 한번 안 한 것은 어찌 아셨을까? 국방부는 북한 발 무인기의 경로도 제대로 못 밝히면서,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 상공은 굳이 안 지나 같다고 했다. 38선은, 나라가 분할 된 경계선이 아니고 휴전선이다. 무인기여서 망정이지 전투기였다면, 그리고 만에 하나 불장난이 일어났다면, 북한은 잃을게 없다. 그러나 무역으로 살고 있는 우리경제는 어찌될까?
그리고 대통령곁에는 천공도사가 있다고 한다. 도사의 말이 국가의 일에 반영되고 있다면 큰일이다. 천공은 하늘이 뚫리거나 인간의 장이 뚫리는 것을 말한다. 현대화 된 우주시대에 케케묵은 도사라는 용어가 우리에겐 너무 생소한데, 대통령의 귀에는 푹 익었나 보다. 확전을 불사할 만큼 비례성 원칙에 추상같으신 분이, 그 비상한 와중에도 만찬 행사는 멀쩡히 치르셨다. 불요불급한 송년 저녁 식사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부르시고. 어떤 친구는 그가 왜 대통령이 됐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고 했다. 사실은 의외로 단순하다며, “제일 상석에 앉아 아이들 처럼 먹고 마시려고”라는 비아냥이다. 실로 일각이 여삼추같은 지금이라도, 대통령학을 부지런히 읽히셔서, 오늘을 직시하고 내일을 여는 형형한 안목으로, 시대의 부름에 부응하여, 전 정권의 잘못들을 바로 펴고,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군왕이 바르면 영(令)이 없어도, 나랏 일이 바로 서고, 군왕이 바르지 못하면, 영을 내려도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윤대통령의 바른 정사로, 온 국민들이, 격양가를 부른는 그 날이 오길 소망한다.
칠십 팔 늘그니가
【종그니칼럼】동방의 등불 대한민국
수년전에 상영된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다. 6, 25라는 민족동란의 참화속에서, 마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장미꽃이 피듯, 끈질긴 생명력으로 기아선상에서 일어나, '우리도 할수 있다'는 새 마음, 새 각오의 공감대를 시작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키자는 기치아래, 중동국가들의 건설 붐을 타고, 한국인력의 해외 수출을 기점으로, 독일엔 간호사와 탄광 광부들이 그 뒤를 이었고,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 투입등으로 벌어들인, 피와 땀과 눈물로 범벅된 외화로, 한국은 국가 기간산업에 투자할 동력을 얻게 되어, 1960년대 후반부터 세계 미승유의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었다. 농사 외에 생산이 전무했던 농업 후진국가들의, 매 해마다 반복되는 보릿고개와 같은 수많은 난관과, 허기진 배를 냉수로 대신하거나, 배가 등에 붙은 주린 배를 허리끈으로 졸라 매며, "어서 잘사는 나라가 되자"는 국민의 염원이 하나로 모아져, 누대에 걸친 가난을 물리치고, 마침내 대한민국 깅토에 상전벽해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대한민국의 선진화가 저절로 된 양,기성세대들에 대하여, "대화가 통하지 않는 꼰대세대."라고 매도한다. 이러한 세대간의 대화의 단절은, 선진대열의 경제 수준과는 반비례하고 있다. 십여년전에 시행된 요양원제도 역시 자녀 세대들은, 시대적 요청에 의한 당연한 제도정도로 여기고 있다.이처럼 경제가 아무리 선진화 되어도, '풍요속의 반곤'이란 말 처럼 인간내면의 풍요로운 공감대의 선진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뉴욕대의 토머스 사전트 교수가,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가 서울대 교수로 유독 한국을 택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언필칭 “한국은 경제학자라면 꼭 한번 연구해 보고 싶은 나라” 라며, “현대 한국의 역사와 경제는 기적 그 자체”라고 말한다. 또한 중국의 인권 변호사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미국으로 적(籍)을 옮긴 천광청(陳光誠)은, “중국 정부는 서방의 민주주의를 그대로 모방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듯, 동양에도 모범적인 민주주의 나라 가 있다.”면서, 중국은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들을 뒷받침해 주는 통계도 발표 됐다. 한국이 인구 5,000만 명 이상에, 소득2만 달러 이상의 나라인 20-50클럽에 가입한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다. 앞선 나라들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다. 모두 선진 강국들이다.
가슴이 뿌듯할만큼 감격스런 축복이 아닌가! 밖에서 보는 우리와 안에서 생각하는 우리는 너무 다르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자기 얼굴을 알 수 없듯이, 밖을 통하지 않고는,내 조국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 밖에서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배우고 싶어 하는데, 정작 안에서는 아직도 독재자 김일성 주체사상에 흠뻑 빠져 있는 우물안 개구리들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도 모를 때가 많다. 자랑스러운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고도, 가난했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고정관념 매여 있는 우리의 초라한 모습을 본다. 지금 우리는 백년도 안되는 세월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우나라의 이 같은 성취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하버드대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문화적인 접근을 했다. 한국의 발전은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과 같이 유교문화의 덕이라고 했다. 물론 그것도 한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어떤 사람은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하는 새 마을운동,'이, 가장 주효 한 원동력으로 꼽는다. 허지만 가게 내지 그뿐일까? 세계 구석 구석으로 보따리를 들고 다닌 무역 일꾼, 아이들 교육에 온몸을 바친 부모들~~~, 발전 요인을 찾자면 수백 수천 가지가 넘을 것이다. 이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기는 아마 어려운 일이는지 모른다. 사회과학에서 가장 과학화 되었다는 경제학조차, 불과 몇 가지 요인인 가설을 전제로한 모델을 만들어, 그것으로 경제현상을 설명· 예측하려 한다.
그러니 어떤 경제학자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듯이, 하물며 한국의 발전 같은 총체적 요인을 가지고, 이를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기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서도, 한국에 임한 임마누엘의 축복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우리는 신앙적으로 '기적'이라고 말한다. 세계 2차대전 후 민족의해방은, 그야말로 절대자의 섭리다. 대 고구려이후 수천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수많은 외침과,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은 민족분단의 아픔속에서도 절대자의 축복으로 기라성같은 수많은 나라를 뒤로 젖히고 명실공히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것이다. 뒤돌아 보면 역사의 고비마다 우리는 현명했다. 안보를 먼저 튼튼히 한 뒤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이 순서가 거꾸로 됐더라면 지금의 우리가 될 수 없었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결과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책임 있게 처신을 해야 한다. 지금의 결실을 어느 한 계층이나 세력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오는 데 모두가 참여하고 애썼기 때문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우리 민족에게서 ‘동방의 싹을 보았던 것이다. “수천년동안 꺼져 가던 등에, 광명의 빛이 켜지는 날에, 너는 온 세계를 비치는 빛이 되리라.” 세계는 지금 가히 경이로운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저 광활한 우주에까지, 우주 탐사선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 온 누리에 빛을 비취는, 가치 있는 호혜적 공동의 삶이 과연 무엇인가를, 삶을 통하여 세계 열방에 알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물질적 풍요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풍요속의 빈곤이 아니라,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모든 분야에서, 주어진 것을 서로 나누는 상생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종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