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심장 스텐트 삽입 시술기
【소강석】우리 주변에 신덕균이 있다면... 【소강석】백석 교단 통합 감사예배 축시 【소강석】간절함이 없는 자리, 핑계뿐 【소강석】나무를 발견해야 할 때 【소강석】107회 총회를 마치고... 【소강석】총회 선관위 회의 과정과 심경 【소강석】빗소리처럼, 풀벌레 소리처럼 【소강석】매미목사가 들려주는 숲의 이야기
소강석 증경총회장이 지난 11월 20일 단국대병원에서 심장 관상동맥 스텐트 삽입 시술을 하고 다음날 오전에 퇴원했다. 아래는 소강석 목사가 직접 SNS를 통해 전한 메시지이다.
한국에서는 2014년 11월까지 스텐트 3개까지 보험적용되던 것을 그해 12월부터 스텐트가 무한대로 보험적용되어 비용이 개당 10만원 정도 소요된다. 그래서 한국이 스텐트시술의 선두국가이다. 미국에서는 스텐트 하나 삽입에 천만원 정도 소요되어, 아직도 대부분 흉부외과에서 관상동맥우회수술(By Pass), 가슴을 열고 혈관을 새로 연결하는 수술을 한다.
만명 중에 한 명 정도는 하나님이 직접 관상동맥우회혈관을 만들어 주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 혈관 덕분에 본인의 심장혈관 4개가 막혔어도 죽지 않고 살아서 스텐트를 삽입하여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소강석 목사입니다. 11월의 늦가을, 눈부신 오전입니다.
병실의 공기만 들이마시다가 퇴원하여 밖의 공기를 들이마시니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거리에 떨어진 낙엽, 아직도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잎새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신비롭게 보이는지요.
저는 주일 저녁 예배를 마치고 단국대 병원에 입원하여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습니다. 단국대 이사장님이신 장충식 장로님께서 VVIP 진료권을 선물로 주셔서 검진을 받은 결과, 심장으로 연결된 가장 중요한 관상동맥이 80%나 막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시술을 받았습니다.
관상동맥이 80%나 막혔으면 심장이 아프고 많이 답답했을 것이라는데, 저는 너무 분주하고 바삐 살아오느라 그런 것도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이나 관상동맥도 무거움을 느꼈나 보지요. 너무 빡빡한 스케줄로 시술을 연기하려다가 얼마 전에 심근 경색으로 돌아가신 박치선 안수집사님으로 인해 시술을 앞당겼던 것이 너무 다행인 것 같습니다.
병원장님을 비롯한 주치의, 그리고간호부장님, 수간호사님과 여러 직원들의 친절은 친절고문일 정도로 배려가 깊었습니다. 많은 호사를 누렸네요. 정말 단국대 병원이 최고입니다.
관상동맥이 80%가 막혀있는 중에도 심장이 멈추지 않게 하시고 혈류가 계속 흐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마터면 유언 한마디도 못 남기고 쓰러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 저는 다시 심장이 영원히 멈추는 그날까지 나의 심장을 만드시고 뛰게 하신 하나님을 향한 사무친 연가를 부르려 합니다.
이 시간에도 전국 각 병원에서 투병을 하고 있는 환자들을 응원하며,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소강석】우리 주변에 신덕균이 있다면...
지난 목요일 기흥 CGV에서 한국 기독교 최초 뮤지컬 영화인 ‘머슴 바울’을 보았습니다. ‘머슴 바울’은 사람의 머슴에서 주님의 머슴으로 거듭난 한국교회 제1호 목사인 김창식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일사각오 주기철’을 연출한 권혁만 감독님이 만든 것인데요. 저는 너무 바쁜 일정을 보내느라 겨우 도착하여 첫 컷은 지나고 두 번째 컷부터 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제임스 홀 선교사 부부와 동역을 하는 김창식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김창식은 처음부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서양인들이 조선 아이들을 유괴하여 삶아 먹는다는 괴소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하여 올링거 선교사 부부의 머슴으로 들어갔다가, 그들 선교사 부부의 사랑과 친절에 감화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제임스 홀 선교사를 만나 평양선교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평양선교의 길은 온갖 고난과 박해가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급기야 평양 기독교 박해사건으로 김창식은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거반 죽음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평양 관아의 비장(조선시대 감사·절도사 등 지방장관이 데리고 다니던 무관) 신덕균이라는 자는 “이래도 예수를 믿겠느냐”고 겁박을 합니다. 그러자 김창식은 “나를 사형을 시킨다고 해도 예수를 믿고 전할 것이오.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악으로 대한다 해도 나는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을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신덕균은 김창식의 말에 오히려 더 격분하여 잔인하게 고문을 가합니다. 급기야 김창식이 풀려난 이후에도 사람들을 사주하여 김창식에게 돌팔매질을 하게 할 정도로 분노하고 증오를 합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김창식은 제임스 홀 선교사를 도와 평양선교 사역을 하다가 마침내 다른 6명의 목사와 함께 대한민국 제1호 목사가 됩니다. 그 후로 길 위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김창식 목사는 서북지역에 48곳의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115번의 명설교를 하였습니다.
어느덧 김창식 목사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왔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한 노인이 찾아옵니다. 김창식 목사와 의사가 된 아들 김영진이 전염병이 창궐 할 때 고쳐준 한 아이의 할아버지라고 소개하면서 너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겠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는 바로 평양 기독교 박해사건 때 김창식을 모질게 고문했던 신덕균이라는 자였습니다. 김창식 목사도 사람인지라 순간 몸이 경직되고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도 김창식은 마음에 사랑과 용서의 꽃을 피우며 자신을 변화시켰던 성경을 심덕균에게 선물로 줍니다. 김창식 목사의 끊임없는 사랑에 감복한 신덕균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그 후로 더 이상 관아에서 교회를 핍박하지 않도록 보호하였고, 스스로 자녀와 손자까지 데리고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제 머릿속에 이런 영화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은혜가 은혜를 부르리니 사랑과 용서의 꽃이 피리라.” 아니, 그런 대사를 넘어서 이런 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사랑이 사랑을 부르고, 용서가 용서를 부르리니 마음에 사랑과 용서의 꽃이 피리라” 훗날 김창식 목사의 아들 김영진과 홀 선교사 부부의 아들 셔우드 홀은 의사가 되어 해주 구세병원에서 재회를 하여 결핵 환자 치료에 뜻을 모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이 영화는 사랑과 용서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고 구원을 풍성하게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주변에 신덕균과 같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지난날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도 그렇고, 서울에 올라와 가락동에서 새에덴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도 미워하고 증오해야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김창식 목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처음에 서양인들이 조선 아이들을 삶아 먹는다는 인포데믹, 가짜 뉴스를 들었던 것처럼, 저도 얼마 전까지도 말도 안 되는 인포데믹, 가짜뉴스를 유포한 신덕균과 같은 사람 때문에 시달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은혜가 은혜를 부르고 사랑이 사랑을 부르고 용서가 용서를 부르는 삶을 살려고 몸부림쳐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제 마음에 사랑과 용서의 꽃을 피우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여, 지금까지 저의 꿈이 길 위에 잠들지 않은 것처럼, 한국교회 연합사역과 공적사역의 꿈이 잠들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 안에도 사랑과 용서의 꽃이 계속 피어나게 하옵소서.”
12월이 가기전에 크리스마스 씰을 사는 마음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나 친구들과 함께 가서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줄 ‘머슴 바울’ 영화를 보면 좋겠습니다.
◆ 백석 교단 통합 감사예배 축시
지난 11월 1일 백석대학교 대강당에서 ‘백석 교단 통합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습니다. 백석교단 부총회장이신 김진범 목사님의 사회로 양병희 목사님(증경총회장)께서 설교를 하셨고, 장종현 총회장님께서는 환영사를 하셨습니다. 이정익 목사님(기성 증경총회장)과 김태영 목사님(통합 증경총회장)이 축사를 하셨고, 이어서 저는 시인으로서 축시를 낭송하였습니다. 장종현 총회장님은 역시 한국교회의 거목이시고 도랑과 실개천을 품는 큰 강 같은 분임을 재삼 실감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제가 낭송한 축시를 게재합니다.
<축시>
백석이여, 한국교회 대연합의 봄을 오게 할 꽃송이여!
소강석목사(새에덴교회, 시인)
저 갈보리 언덕에서 흐르기 시작한 보혈의 강물과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파도로
이 땅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태동하게 되었거니
눈부신 초대교회의 그 영광성과 거룩성이여
금 촛대 사이를 운행하시는 주님의 발걸음이여
그 분의 왕권과 교회의 머리되심 위에 세워진 장로교회여
그 장로교회의 꽃씨가 한국으로 날아와
오늘날 이처럼 눈부신 한국 장로교회의 꽃을 피웠으니
아, 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아니리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바벨론의 금잔에 취하여
분열과 다툼, 반목과 질시의 협곡으로 나뉘어
장로 교단이라는 배가 표류하고 파선되고 조각나 있던 때에
거대한 강물이 흩어진 도랑과 실개천을 다 품듯
한국교회의 큰 거목 장종현 총회장님을 중심으로
백석이라는 거대한 강물 교단이
7천 교회를 넘어 1만 교회를 이루어가기 위한
한국교회사의 한 가운데 대 연합의 새 역사를 시작하였으니
오늘의 교단 통합의 눈부신 하모니는
분열의 협곡과 산맥을 넘어 화합의 새 물줄기를 흐르게 하리라
내년 45주년을 맞는 백석 교단이여!
물방울 하나 하나가 모여 강물을 이루고
모래 한 알 한 알이 모여 은빛 사막을 이루며
별 하나 하나가 모여 푸른 은하수로 흐르듯
분열과 반목의 어둠에 갇힌
한국교회의 밤하늘을 연합의 별빛으로 밝혀 주소서
흩어진 군소 교단들이 백석에 모여 꿈의 꽃을 피우고
봄이 와서 꽃이 핀 것이 아니라 꽃송이 하나로 봄이 오듯
1만 교회를 향하는 백석이라는 꽃송이 하나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부흥의 새봄을 오게 하소서
백석 교단이여,
한국교회 대연합의 새 아침을 밝아오게 할 새벽 발자국 소리여!
기나긴 분열의 겨울을 지나
화합의 봄을 오게 할 향기로운 백석의 꽃송이여!
【소강석】간절함이 없는 자리, 핑계뿐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집회와 세미나를 해왔습니다. 어쩌면 저만큼 많은 연합집회와 목회자 세미나를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흰돌산기도원에서 4천 명이 모여 2박 3일 동안 했던 목회자 세미나, 또 양수리수양관에서 있었던 그 유명한 한신목회세미나에는 단골 강사로 갔습니다. 그리고 각 교단과 신대원에서 하는 세미나나 특강을 셀 수 없이 다녔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에서 2,500여 명의 목회자들이 모인 생명나무 목회 컨퍼런스를 몇 번을 하였습니다. 작년에는 600여 명의 미자립교회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위드 코로나 세미나를 하며 1인당 백만 원 이상을 드리며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번만큼 간절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갖고 강의 원고도 제가 다 작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고를 부교역자들에게 돌리고, 몇 분의 전문가에게 보내서 보완할 것 있으면 보완의 의견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보완해 준 부분도 있지만, 손볼 데가 없을 정도로 원고 내용이 충실하고 원고만 봐도 가슴에 전율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원고를 보고 또 보면서 부족한 부분은 빨간펜으로 내용을 보완하였습니다.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 내용인데도 원고를 또 보고 또 보았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는가 생각을 해보니까, 가장 어려운 때 성도들의 땀과 눈물이 젖어 있는 헌금으로 컨퍼런스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 그렇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500명이 넘는 미자립 교회에 100만 원씩 지원금을 준다는 것이 보통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거기에 들어가는 행정비, 광고비 하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제가 간절한 마음을 안 가질 수가 없지요.
또 미자립교회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코로나 후유증을 극복하고 초토화된 예배를 회복하며 교회를 세울 것인가”, 이런 기대감을 갖고 온 자립교회 목사님들을 생각하니까 간절함이 안 생길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이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목사님들이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 데도 거의 한 사람도 꿈쩍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을 하였습니다. 자립교회 목사님들도 교회 세움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고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강의 초두에서 이 세상에 새로운 교회는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는 진정한 모델 교회도 없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모델 교회는 어뉴 처치(Anew Church), 즉 성경적 원형교회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새에덴교회도 모델 교회가 될 수 없고 전혀 새로운 교회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성경적 원형 교회로 가기 위해 새에덴교회가 어떻게 최선을 다했고 몸부림 쳤는가를 말씀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팬데믹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함께 우리의 공적 교회를 세워갈 수 있는가를 나누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간절함이 있으면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길이 보이고 방법이 보이고, 얼마든지 하이 콘셉트를 가지고 창의적 목회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간절함과 절박함이 없으면 맨날 핑계만 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코로나 팬데믹 때 얼마나 간절함을 가졌었던가요. 지금도 얼마나 간절함을 가지고 있는가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 성도를 향한 간절함, 교회 세움을 향한 간절함이 얼마나 있는가요.” 제가 목사님들께 묻고 되물으면서 찬양과 기도도 인도했습니다. 원래 강의를 맡긴 부교육자들에게는 약 30분씩 강의 시간을 주기로 했는데, 제가 워낙 마음이 좋아가지고 “여유를 갖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정해진 시간을 넘겼습니다. 그러다보니 막상 제가 강의를 마무리 할 때는 시간에 쫓긴 것입니다. 제가 넉넉하게 마무리를 하고 자세히 강의를 해야 되는데 시간에 쫓겼습니다. 그렇다고 저녁 늦게까지 붙들어 둘 수도 없는 것이고요. 제가 만약에 3, 40분만 더 활용했더라면 마지막에 찬송도 하고 기도회도 하면서 목사님들의 눈이 눈물로 흠뻑 젖어 흐르도록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아쉽게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더구나 박주옥 음악목사님도 목사님들 앞에서 노래를 한 곡하기를 원해서 그 희망도 들어주고, 또 청소년오케스트라의 연주 시간도 준 것입니다. 결국 제 강의 시간을 다 할애해 준 것이죠.
물론, 아쉬움이 있는 만큼 저는 강의에 열변을 토하였습니다. 마치 따발총처럼 말을 쏟아내고 입술에 모터를 단 것처럼 긴박한 강의, 간절함이 넘치는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강의 시간이 축소되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이 다 전달됐습니다. 그리고 알아들을 것들은 다 알아들었다고 위로를 해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간절함이 있는 곳은 길과 방법이 보이고 간절함이 없는 자리에는 핑계뿐이라고.” 부디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교회 세움을 향하여 헌신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고, 참석한 모든 목회자들에게 간절함의 나비 효과가 더 크게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소강석】나무를 발견해야 할 때
지지난주 토요일 저녁 KBS TV에서 '100인의 리딩쇼, 지구를 읽다'라는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큐는 외주 제작사인 허브넷에서 제작한 것인데요. 이번 다큐는 ‘나무’가 주제였습니다. 첫 내레이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새소리, 송진향, 도토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만으로도 나무는 공간을 가득 메운다. 그러고는 우리 마음을 건드리고 흔든다. 감각들을 조용히 일깨우고 밀려오는 생각의 물결을 밀어내면서 숲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나무와 가까워진다.”(자크 타상의 나무처럼 생각하기) 또 내레이션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나무와 숲은 사람들에게 고갈되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다시 나무를 발견해야 할 때다”라고 말이죠. 자크 타상은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나무끼리 서로 공감하고 의사소통을 하며 공생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생각하면 갑바도기아 교부였던 닛사의 그레고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 보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마5:8),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청결한 마음이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을 때의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회복하면 자연과 교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저절로 아름다운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며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하며 지난주에 장로회 수련회 때 속리산 세조길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숲을 찾은 줄 알았더니 나무 하나 하나를 찾는 걸 느꼈습니다. 산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만나러 온 느낌이었지요. 나무들이 제각기 가을을 맞을 뿐만 아니라 저를 환영해주고 영접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럴 때 자크 타상이 말한 대로 나무와 숲은 저에게도 고갈되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세조길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뒷산인 한성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속리산의 나무만은 못하지만 그 산에서 제가 많은 영감의 원천을 얻었거든요. 코로나가 시작될 때 메디컬처치를 착안해 낸다든지, 여러 가지 하이 콘셉트 목회 아이디어와 지하철과 우리 교회 외벽 현수막 문구들이라든지, 전부 다 그 숲 속 나무 사이를 지나며 생각해낸 것입니다. 그러다가 원시림 같은 곳을 가면 나무와 숲에 대한 더 깊은 신비감을 갖게 됩니다. 그럴 때면 제 자신이 소년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제가 ‘나무와 소년’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나무는 소년을 기다렸습니다 / 그리움만큼 기다란 줄을 늘어뜨린 채 / 소년이 다시 그네를 타러 올 날을 /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 새싹이 돋아나던 봄이 가고 / 무성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던 여름도 가고 / 한 잎, 한 잎 / 그리움에 지친 가을의 추억도 가고 / 이제, 그리움마저 퇴색한 하얀 겨울에도 / 나무는 홀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 강렬한 햇빛도 /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새벽 비도 / 겨울밤의 세찬 눈보라도 / 아픔만큼 나이테를 더하지만 / 소년이 길을 잃지 않도록 /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소년을 기다립니다 / 나무 그늘 아래 고요히 잠들던 소년의 하얀 얼굴과 / 풀밭을 뛰어다니던 소년의 웃음소리와 / 나뭇가지에 올라타 먼 산을 바라보던 / 소년의 맑은 눈빛을 기억하면서 / 나무는 홀로 소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소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긴 그림자 석양녘에 드리우고 / 자기에게 돌아올 그 때까지.”
수 년 전에 ‘깊은 산속 옹달샘’을 방문하였을 때 고도원 장로님이 나무 묵상을 가르쳐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나무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보다도 먼저 자크 타상이라는 분이 ‘나무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이야길 했다는 걸 알고 새삼스럽게 나무를 재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나무를 보고 나를 보게 된 것입니다. 나무가 마치 나의 거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더 나아가 닛사의 그레고리의 가르침처럼 청결한 마음으로 나무와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0편의 나무 연작시를 쓰기도 했지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현대인은 나무를 재발견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나무가 우거진 숲이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라는 걸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며 숲의 생태계를 잘 지키고 그 속에서 생의 고귀함과 풍성한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바빠도 매주 토요일은 산행을 합니다. 언제 골프를 시작할지 모르지만, 골프를 한다 하더라도 산행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나무가 소년을 기다리고 소년이 나무를 기다리듯, 그런 소년의 마음으로 산행을 할 것입니다. 골프는 운동의 재미와 기쁨을 주겠지만 결코 저를 소년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숲과 나무는 저에게 끝없이 새로운 영감을 줄 것입니다. 물론 그 영감의 원천은 성령 안에서 나온 것이지만요. 아무튼 우리는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를 재발견해야 할 때입니다.
◆【소강석】제107회 총회를 마치고...
저희 교단 제107회 총회가 9월 22일 잘 마쳤습니다. 총회 도중에 글을 올릴 수도 있었지만 총회가 파회된 다음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저는 민찬기 목사님께 정말 송구한 마음을 표합니다. 작년에 민목사님께서 사회법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총회는 감당할 수 없는 회오리 바람을 맞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직감한 106회 총회 임원회는 저에게 이 문제를 화해 중재 해달라는 공식 요청을 해 왔습니다. 저는 그 임무를 수락하였고 민목사님께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민목사님께서는 통 큰 결단을 하셨고 그 회오리바람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많은 총대들께서는 민목사님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 사람을 위한 특혜법을 마련해 주는 부작용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인을 위해 어떠한 법을 만드는 것은 반대하지만, 민목사님에 대한 고마움의 멘트라도 한마디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가시질 않습니다.
신의와 고마움보다는 실리가 대세이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쩌면 개인적으로는 저에겐 더 잘된 일 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앞으로도 실리보다는 신의와 공익을 선택하며 살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민찬기 목사님께 죄송함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제 총회의 앞마당보다는 뒷마당에서 섬길 것입니다. 오히려 한국교회 연합사역과 생태계 보존에 올인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
【소강석】제107회 총회 선거를 마치고...
◆ 총회장 때보다 선관위원장 때가 더 힘들었다.
◆ 기꺼이 섬김을 보여주신 한기승 목사님께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어제 9월 19일 우리 합동교단 총회 선거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총회장 때보다 선관위원장 때가 더 힘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하라고 하면 더는 못 하겠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만큼 총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애틋했습니다. 40년 지기 친구 관계로 얽힌 사인으로서 보다는, 공인으로서 총회 화합과 상생을 더 중요시하며 걸어왔던 지난 1년 동안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솔직히 선거가 끝나고 나니까 시원하기도 하지만, 또 아쉽기도 합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허탈하기도 하면서 짙은 상념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우리 선관위원들이 대부분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 눈에는 오직 총회를 사랑하는 열정, 사랑, 충심 그리고 선관위원들과 함께 어떻게든지 우리 총회를 화합하고 세우고자 했던 지난날의 추억이 그렁그렁 맺혀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선관위원장으로서 정말 힘들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설사 너무 힘들었고 후회 하더라도, 총회 화합과 상생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습니다.
최근에 발매된 윤도현과 이선희의 콜라보 앨범 중에 ‘지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 내가 방황한 세상 모든 것 / 어쩔 수 없단 말 하지 않아 / 나를 사랑한 너의 모든 것 / 이젠 내가 더 사랑할 수 있어...”
저는 진심을 다했지만, 저의 진심을 몰라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그 분들도 저의 진심을 알아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들을 더 사랑할 것입니다. 부총회장으로 당선되신 오정호 목사님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며 화합과 상생의 정신으로 총회를 잘 섬겨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기꺼이 섬김을 보여주신 한기승 목사님께도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이번에 보여준 한 목사님의 포용의 리더십은 3년 후에 더 큰 감동이 되어 빛을 발하리라 믿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알려진 유홍준 교수님은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보수주의 개혁신학의 마지막 보루인 우리 총회를 알고 보았기에 사랑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 총회가 다툼과 분열이 아닌, 화합과 상생의 길을 걸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할 것입니다.
쉽게 잠 못 드는 밤의 상념이 잊혀 질까봐, 제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전에 저의 소회를 남깁니다.
【소강석】총회 선관위 회의 과정과 심경
◆ 매미 목사가 들려주는 숲의 이야기
◆ 총회의 화합과 상생, 그리스도를 본받는 차원에서 정치적 합의 도출
저는 지금까지 총회 선관위 회의 과정과 심경을 표현하는 글을 페북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많았지만 자제하고 또 자제하였습니다. 어제의 결정이 있기까지 많은 문자 압박과 주문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한쪽에 서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선관위원장인 공인으로서의 위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오정호 목사님의 심의 탈락 반대와 찬성이 각각 7대 7로 동수가 나왔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순간적 판단이 서지를 않았습니다. 선관위원들 가운데도 7대 7로 동수이면 탈락이니, 확정이니 논란을 계속하며 법해석을 달리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40년 지기인 친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총회의 안정과 화합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에게는 이 또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왔고 선관위의 일치되지 않는 판단보다는 총대들에게 선택권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이후 변호사 세 분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기승 목사님의 양해서 제출과 오정호 목사님의 사과문 게재 등의 합의를 봄으로써, 선관위에서 오정호 목사님의 후보 확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선관위 회의에서는 이런 일련의 과정과 선관위의 입장을 기독신문에 게재하기로 하고, 또한 세 분의 변호사들의 자문을 수용하여 기독신문에 오정호 목사님의 사과문과 한기승 목사님에 대한 감사의 글을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엄연히 법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차후로는 위법 선거운동을 방지하는 효과를 내면서, 총회의 화합과 상생, 그리스도를 본받는 차원에서 정치적 합의도 도출했다고 봅니다.
사랑과 용서의 신앙적 차원에서 양해서를 미리 제출해주신 한기승 목사님께 송구한 마음과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오정호 목사님의 사과서 게재 수용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소강석】“빗소리처럼, 풀벌레 소리처럼”
지난주 화요일 저녁에 몸은 피곤한데도 비를 맞고 산행을 하였습니다. 왜냐면, 우리 교단의 여러 산적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정서를 환기하려고 갔습니다. 저는 작년에 떠밀리다시피 총회 선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라면 다 알 정도로 목사 부총회장 후보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미 한 분 목사님은 부총회장 후보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분 목사님은 선거법 위반 문제로 계속 심의를 해야 했습니다. 선관위원들 중에서도 한쪽에서는 “분명히 위법이 있기 때문에 후보를 탈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한쪽에서는 “위법이 있지만, 이분을 탈락시키면 교단에 너무나 큰 혼란이 온다. 그래서 확실한 사과문을 낸 후 후보로 올려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치열한 의견 대립을 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도 결국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을 짓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득이하게 어느 목사님의 위법성 문제로 인해 후보를 탈락시킬 것인가, 아니면 올릴 것인가를 놓고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부위원장에게 사회권을 양보하고 이석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붙잡아서 어쩔 수 없이 투표를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저는 위원장으로서 기권을 했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있습니까? 7:7로 동수가 나온 것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 고민을 하였습니다. 한쪽 목사님은 40년 지기 친구고, 다른 목사님도 매정하게 내칠 수 없는 관계이니 말입니다. 더구나 한쪽을 내치면 총회는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마침 우리 총회 직원이 장로회 치리회 규칙 4장 85조 2항을 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조항에 의거해서 의장으로서 캐스팅보드 역할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위법성이 있는 분이 기독신문에 사과문을 내면 후보로 확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탈락시키는 걸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관위원들도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이 나가자 여러 억측과 소문들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갔습니다. 특별히 제가 월요일에 호남협의회에 가서 설교를 하였는데 설교가 끝나자 저를 앞에 두고 선관위를 향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한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저에게 양해를 구했지만요. 저는 그걸 보고도 “허허허” 너털하게 웃음을 지었습니다. “나 없을 때나 좀 하지...ㅎㅎㅎ”
그 순간 어느 정치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치란 짐승이 되는 비천함을 견디면서 야수의 탐욕과 맞서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양쪽 목사님을 다 설득을 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산행을 갔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풀벌레의 노랫소리가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습니다. 고요한 빗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사색도 하고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하였는데, 다음 날부터 어떤 역풍들이 순풍으로 바뀌고 파열음의 괴성들이 고요 속에 노래하는 풀벌레 소리로 바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요일 오후에 한 목사님은 양해서를, 또 한 목사님은 사과문을 내기로 한 것입니다. 총회 화합과 상생을 위하여 선관위에 양해서를 낸 목사님이 고맙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목요일 오전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모든 것을 법리로만 풀 수는 없다. 그 위법성에도 반론이 있고 상대성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정치적인 묘수를 발휘해서 화합과 상생으로 가자. 그러기 위해선 위법한 분에게는 사과문을 교단지에 게재하게 하고, 양해서를 보내온 분에게는 선관위가 감사의 글을 교단지에 게재하도록 하자.”고 결의를 한 것입니다.
저는 원래 목회자이고 교단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 정치수업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싸울 때 항상 화합시키고 화해시키는 훈련을 받으면서 노하우를 축적해 왔습니다.
모든 문제를 다 정리하고 목요일 저녁에 산행을 하는데, 화요일 저녁에 들었던 빗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떠오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남들이 불필요한 오해와 공격으로 상처를 받을 때 거기 가담하지 않고 그에게 때로는 빗소리처럼, 때로는 풀벌레 소리처럼 작은 위로가 되리라.”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 역시 한동안 짐승처럼 비천한 적도 있었고,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야수의 탐욕과 맞서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화합과 상생이라는 고귀함에 이르게 되었네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총회 선거가 잘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소강석】매미목사가 들려주는 숲의 이야기
우리 교회 장년여름수련회는 3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장년여름수련회와 신년축복성회만 없어도 목회를 좀 쉽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이겠습니까.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서 수련회를 하다가 3년 만에 오크밸리 리조트에서 하는데 새로운 설교를 창작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저의 서재에서 본당으로 가는 통로에 조그마한 공간이 있는데 주로 그곳에서 수련회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새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특별히 요즘처럼 폭염이 계속 될 때는 매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모릅니다. 매미는 일반적으로 알이 부화되고 나서 애벌레로 7년 정도 있다가 마침내 성충이 됩니다. 7년을 기다렸다가 겨우 1~3주 동안 울다가 장렬하게 생을 마치지요. 숫매미는 좀 크고, 암매미는 더 작습니다. 또 매미의 노랫소리도 다양합니다. 이들이 숲에서 아름다운 대합창을 이룹니다. 그럴 때면 마치 매미가 숲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자기의 애벌레 시절부터 매미가 되어 숲에 나타나게 된 이야기까지 들려주려는 듯 노래하고 또 노래합니다. 매미에게는 시간이 없기에 어떻게든지 노래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매미는 저녁에도 목청껏 노래를 하지요. 매미도 자야 되는데 마치 부르다가 죽을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애절하고 처절하게 노래를 합니다.
저는 주로 숲속의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수련회 말씀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매미가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3박 4일 동안 성도들에게 성경 숲 얘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 곧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말씀해 줍니다. 성경이라는 숲에는 다양한 하나님의 사랑이야기,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가 원석으로 혹은 보화로 담겨 있습니다. 설교는 그 보화를 캐내는 것입니다. 보화가 원석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걸 잘 가공하고 세공을 해서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게 성경의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번 장년여름수련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시계를 선용하라’입니다. 룻기에 보면 하나님의 시계란 말이 전혀 나오지는 않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의 시간대로서 진행되는 것을 봅니다. 나오미가 모압에 가서 남편을 잃고, 두 자식도 잃었습니다. 아마 나오미의 시계는 멈출 정도가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그 시간대에 의해서 계속 가고 있었습니다. 룻기는 짧지만, 룻기만큼 하나님의 헤세드, 하나님의 인애와 사랑 이야기를 근원적으로 설명해 주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수련회 때 하나님의 사랑의 숲, 하나님의 헤세드 숲 이야기를 노래하는 매미가 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3박 4일 동안 하나님의 구속과 사랑, 은혜의 숲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매미가 되려고 합니다. 마치 매미가 마지막에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부르다가 죽을 노래를 부르는 각오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일랜드의 전설에 나오는 가시나무새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가시나무새는 뾰족한 가시나무만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가장 뾰족한 가시나무가 보이면 그 가시에 자기 가슴을 콕콕 찔러서 피를 철철 흘리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그 뾰족한 가시에 가슴을 찔러 죽을 때 가시나무새는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번 장년여름수련회에 매미가 되고 가시나무새가 될 것입니다. 매미가 마지막에 땅에 떨어질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가시나무새가 가시에 찔려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다시 한 번 이번 여름수련회 때 매미 아니, 매미목사로 가시나무새처럼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