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가스라이팅
집단최면(mass hypnosis)이라는 말이 있다. 집단최면을 성공시킨 대표적 사람은 히틀러라고 한다. 집단최면을 건 사람이 위대할까? 집단최면에 걸린 사람이 문제일까? 집단최면에서 집단최면을 건 사람은 교주와 같은 위상을 같는다. 집단최면은 집단무의식을 창출하기 때문에 집단최면이 문화를 만들어 자연을 이룰 수 있다.
집단최면을 일으키는 방법은 가학적 나르시시스트(악성 나르시시스트, 惡性自己愛, Malignant narcissism)과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있다. 악성 나르시시스트는 성격장애의 한 유형이지만 지도자들에게 나올 수 있고, 교회지도자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연구자는 설교에서 악성 나르시시즘이 나오는 경향을 분석했다. 그러한 유형으로 설교에서 항상 개인, 사회나 어떤 조직 그중에서도 특히 교회에 대한 죄성과 탐욕을 고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는 사회 뉴스에 난 공분을 일으킬 범죄자나 인륜범이 등장할 수도 있고, 어느 집단의 타락성이 예화로 등장하기도 한다. 거기서 청중들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죄성에 대한 혐오 의식을 느끼고 좌절과 절망의 감정에서 지도자에게 몰입된다. 인간이, 교회가, 사회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라는 “악성 공동의식”을 창출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악성 유도적 언어에 청중들이 공감하면서 현장에서 도마에 오른 고기가 난도질 당한다. 누가봐도 흉악한 일인데, 그 흉악한 일을 폭로한 것이 목표가 아니라, 가스라이팅을 목표하는 것이 문제이다.
- 참고, 장 샤를르 부슈,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그 희생자들(악성 나르시시스트의 정체와 그 희생의 메커니즘을 찾아서)>, 바다출판사, 2017.-
악성 공동의식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게 의인이다. 앞에서 언급하는 사람이나 사회나 교회와 정반대되는 인물이나 상황이 전개된다. 희망이 생기고 극찬의 언어와 반전된 청중의 분위기는 처음과 딴판이 된다. 의인을 만들고 영웅을 만들고, 그에 걸맞는 성경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청중들은 처음 가학적 상황에서는 "나는 아니야,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부정 의식이 형성되고, 다음에 성경 인물이나 의인이 등장할 때에는 그 의인이나 성경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악성 나르시시즘적 설교가 먹히는 대상이 있다. 이러한 설교를 하는 교회는 대형교회가 될 확률도 상당히 높다. 성도들은 악성 나르시시즘의 설교를 듣고, 영혼의 자유를 얻은 것 같은 확신, 마치 천국행 티켓을 거머쥔듯 뿌듯해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설교는 부자나 권력자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또한 너무 가난하고 힘든 계층에도 먹히지 않는다. 적당한 부와 적당한 지식이 있는 계층이 걸려들 확률이 높다. 또한 그러한 스타일에 중독되면 다른 교회는 다닐 수 없다.
악성 나르시시즘의 설교를 듣는 사람은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자기를 피해자로 생각하지 않고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스라이팅 때문이다. 악성 나르시시즘의 설교를 하는 목사는 가학적 자기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설교에 매료된 사람들을 보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악성 나르시시즘 설교의 가장 큰 문제는 죽을 때까지 이런 유형의 설교를 계속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설교를 들으면 자기 의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견딜 수 없다. 심한 말로하면 가두리 양식장에 사는 물고기처럼 사는 것이다.
악성 나르시시즘의 설교에 대한 분별법은 부정과 긍정에 대한 배치를 면밀하게 살피는 것이다. 상대적 의(義) 비교적 의(義)로 자기 의로움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성도의 의로움은 오직 구주 예수에게 있다. 그리스도의 절대성에 의존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관찰하면 될 것이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는 잔인한 살인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모든 계층에 있다. 종교계에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의로운 모습으로 사이코패스의 민낯을 감추고 있는데,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면 반드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벗어나지 못한 것은 부당한 성경 읽기의 유형이다. 이단은 성경을 근거로 자기교설을 창출했고, 성경을 읽는데도 이단과 악인의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한다. 부당한(거꾸로 된) 자기부정과 부당한 혐오 의식 때문에 그렇다. 슬프고 무능한 외침이지만, 악성 나르시시스트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