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후회함 없이, 물러섬 없이, 아낌없이
【소강석】나만의 유레카, 파이팅 【소강석】아쉽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새해 첫 주를 맞이하였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은 송구영신 예배를 드려서 새해 첫날을 주님과 함께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일로는 우리가 첫 주를 맞는 것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새해 첫날을 맞을 때는 설렙니다. 그것도 성도라면 첫 주일이 더 설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새해를 앞두고는 엄청난 부담감이 들어옵니다. 그것은 35년간 해왔던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축복성회 때문입니다. 보통 대부분의 교회는 0시에 한 번 예배를 드리거나 아니면 밤 10시 정도에 미리 예배드리고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성도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저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축복성회가 새에덴의 브랜드가 되었고, 저의 목회의 거의 절대적인 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송구영신 예배를 한 번 드리니까 본당에 접이의자를 놓고, 빈 통로까지 앉아야 하고, 비전홀과 교육관까지 넘쳐서 성도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송구영신 예배를 1부, 2부로 나누어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1부 예배부터 꽉꽉 차는 걸 보면서 성도들을 배려하기 위해 앞으로는 3부로 나누어서 드려야 하나 그런 고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송구영신 예배로만 끝나면 또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년축복성회 설교를 적어도 7편, 8편을 준비해야 합니다. 똑같은 성경 내용이지만 어떻게 새롭게 접근하고 옷을 입혀서 성도들의 마음에 어프로치를 할 수 있는가, 이런 창의적 설교를 준비한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신년축복성회 뿐입니까? 그게 끝나고 나면 당장 장년여름수련회 설교에 대한 부담이 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교회를 지탱해 주는 큰 두 기둥이지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힘들게 하지 말고 외부강사를 초청하면 되잖아요!"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어색한 집회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새에덴의 린치핀(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연말은 너무 바빴습니다. 왜냐하면 한꺼번에 ‘뉴트로 전략, 핵 처치’,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두 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북콘서트까지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총 9편의 설교를 준비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또 욕심이 많아가지고 원고를 작성하면 넘쳐서 흐릅니다. 그러니까 원고를 줄이고 짧게 전하려고 하니까 수정작업이 또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시간이 길어지면 자칫 지루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원고를 줄이고 줄이며 계속 수정하였습니다. 게다가 두 번의 송구영신 예배 때 제가 개인적으로 안수기도해 준 사람만 수천 명이 넘을 것입니다. 또 예배 중간중간에 특별기도 받으러 온 사람들 수십 명을 위해 기도해 주고 강단에 올라가면 진짜 마지막 날은 심장이 뻐근하고 현기증이 팍 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 설교를 했는데 머릿속에 사라지지 않는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후회함 없이, 물러섬 없이, 아낌없이”라는 제목입니다. 영신예배 설교 제목인데, 선교사 윌리엄 보든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래도 선교지에서 후회함 없이 물러서지 않고 아낌없이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그런 말을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지 않습니까? 이게 지금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많은 기회를 주셨다면 우리도 후회 없이, 물러섬 없이, 아낌없이 살면 좋겠습니다. 저도 생명이 있고 건강이 있는 한 후회 없이, 물러섬 없이, 아낌없이 새에덴의 린치핀이 되어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축복성회, 장년여름수련회를 끝까지 이어나갈 것입니다.
【소강석】 나만의 유레카, 파이팅
저는 34년 동안 한 번도 안 빠뜨리고 신년축복성회를 해왔습니다. 초창기에 신년축복성회를 하는데 저의 의욕감이 얼마나 불탔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어떤 분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천만 원을 헌금하신 것입니다. 그때 돈 천만 원이면 지금 우리 교회로서 10억이 넘는 큰 헌신입니다. 그렇게 말씀의 은혜와 헌신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처음에는 열정과 패기와 의욕감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묵직한 집회가 된 것입니다. 어느새 장년여름수련회와 더불어서 우리 교회의 문화가 되고 기둥이 된 거죠.
그런데 오래 하다 보니까 점점 부담감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두 가지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꼭 이렇게 해야 되는가. 외부강사를 모셔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문화를 바꾸기에는 너무 어설프고 어울리지 않는 시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든 집회를 인도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은혜인 것은 신년축복성회 전에는 몸살이 와도 신년축복성회 때는 몸살이 나아 버린 것입니다. 안면마비도 신년축복성회가 끝나고 왔습니다. 몇 년 전 장년여름수련회 때 신장결석이 왔지만 마약진통주사를 맞으면서까지 고통을 이겨내고 제가 집회를 끝까지 마쳤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어떻게, 언제까지 직접 인도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장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5년 후가 마지막일지 10년 후가 마지막일지, 누구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끝까지 할 것입니다.
올 연말은 왜 그렇게 바빴는지 모릅니다. 저는 현 총회장도 아니고 연합기관 대표회장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바쁠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연말에 두 권의 책을 냈지 않습니까? ‘뉴트로 전략, 핵처치’라는 미래목회 전략서와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감성 시집을 냈습니다. 감사하게도 교보문고 시집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연말 교역자정책수련회를 하고 그 와중에도 신년축복성회 말씀을 다 준비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스스로 “유레카!”를 외친 것입니다.
유레카는 고대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난 후에 했던 외침인데요,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고민은 차량 임차 문제도 있고 해서 설교 분량을 어떻게 압축해서 짧게 할 것인가입니다. 원고를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줄이려고 읽고 또 읽으면서도 계속 “유레카!”를 외친 것입니다. “아, 내가 이런 설교를 준비하다니...” 늘 우리가 읽고 알고 배우는 말씀이지만 새삼스럽게 말씀을 준비하고 정리하다 보니까 “유레카!”의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번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축복성회에도 우리 성도들에게 유레카가 터지고 유레카의 탄성을 자아내는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방학했다 생각하시고, 또 교육받고 훈련받는다 생각하시고, 아프지도 말고 꼬박꼬박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대신 여러분들은 방심하고 아무 사람이나 만나러 다니고 분주한 모임을 갖다가 독감이나 코로나에 걸리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꼭 참석해 보세요. 새해에는 새로운 태양이 뜨고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는 유레카의 은혜, 유레카의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새에덴 성도들이여, 나만의 유레카 파이팅! GO GO!”
【소강석】 아쉽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알고 오랜 지기로 존경해 온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주중에는 대부분 기도원에서 말씀을 묵상하시고 영적 수련을 깊이 하시는 내면적 영성이 가득한 분이십니다. 저는 그 분을 생각하고 뵐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저 역시 태생적으로 외향적인 면도 있지만 의외로 사색하며 홀로 있기를 좋아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신학교 다닐 때는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시간만 나면 무등산 기도원에 올라가서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하며 내면적 영성을 수련하였습니다. 특별히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는 발이 닳아지도록 헐몬수양관을 다니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다닐 때 수도원적 영성이나 수도사들의 삶에 대한 책들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정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정 권사님은 대중적 구원운동을 일으키는 분이라기보다 수도원적 영성, 내면적 영성에 몰입을 했던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령운동, 은사운동을 했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정 권사님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지요. 정 권사님을 만날 때 늘 어둠을 씻고, 빼고, 항상 빛을 마시고 빛을 쐬는 영적 수련을 많이 했죠. 하마터면 저도 수도원적 영성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도원 중심의 신비 혹은 경건의 영성입니다. 또 하나는 대중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 운동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도 중요하지만, 다수가 구원받고 다수가 부흥 운동에 동참하는 계보를 이루어왔지요. 저는 신학교 시절 이 두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조용기 목사님과 여러 선진 목사님들의 영향을 받아서 대중 구원과 대중 목회를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은 저도 교회 성장 지상제일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40대 중반까지는 여기에 함몰이 되어서 내 교회만 성장하면 되고 내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죽기 살기로 뛰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공적사역에 눈이 뜨여지게 되고 연합사역에도 눈이 뜨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부흥과 더불어서 이쪽 사역도 같이 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부흥과 공적사역의 두 날개를 펴고 달려온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저는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하고 저술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뉴트로 전략, 핵처치’라는 책을 썼고 바로 이어서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썼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했던 그 목사님을 만나서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너무 부럽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은 앞장서는 사람이고 우리는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소 목사님의 어깨가 무겁고 더 힘든 사역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실 오늘 저녁에도 ‘CBS와 함께 하는 출산돌봄 2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조용히 드릴 줄 알았더니, CBS 방송국에서 판을 크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너무 주요한 분들이 외빈으로 많이 오시거든요. 물론 이 또한 한국교회와 이 시대를 울리는 공적사역의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 마음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양 날개를 펴고 대내외 사역을 하다 보니 참 힘들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의 삶의 비밀이 있습니다. 저는 이동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달리는 차 안에서 성경을 보고 묵상을 하며 설교 메모를 하고 설교를 불러줍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도 내 마음 안에 외딴방 하나를 만들어 놓고 혼자 사유하고 상념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나만 소통하는 사닥다리가 연결된 골방이 있습니다. 산속은 아니지만 저는 저만의 골방에서 주님이 주신 안경을 쓰고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외로워하며 고독해하며 외딴방에 있을 때, 창의적 사고가 생기게 되고 한 권의 책을 읽으면 3권, 4권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이 적용적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어느 문장 하나를 보든지 그 한 문장을 통해서 한 편의 글이 나오고, 또 흰 구름과 푸른 숲과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창의적 시의 언어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목회 은퇴를 하면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부족하지만, 퍼스트 리더로서의 삶이 좀 버겁고 힘들다 할지라도 내 마음 안의 외딴방, 내 마음 안의 골방으로 인해 내면과 영성을 관리하며 삽니다. 때때로 아쉬움은 있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외딴방 하나와 골방이 저의 삶과 사역을 지탱해 주고, 아니 창의적 공간으로 저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라는 계절이 제게 안 올 수가 있겠습니까?
【소강석】아프리카 부산EXPO 유치 연설 영상
▶ 한∙아프리카 상호 협력 발전을 위한 포럼 연설
▶ Pastor Kang-Seok So Ph.D. / Chairman of Global Edu.
▶ Love Africa, Love Busan
【소강석】아프리카 부산EXPO 유치 연설 영상어제 저녁, 저는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한, 아프리카 협력을 위한 컨퍼런스' 첫째날 환영 만찬회에서 스피치를 했습니다. 사실상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아프리카 정상들은 참석하지 않았고 장관이나 대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물론 둘째날 저녁에는 몇몇 정상들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저는 영어로 스피치를 했고 엉성했지만 반응은 제일 컸습니다.
제가 한 연설 내용을 아래에 게제합니다.
Love Africa, Love Busan
Pastor Kang-Seok So Ph.D. /Chairman of Global Edu.
<한∙아프리카 상호 협력 발전을 위한 포럼 연설문>
존경하는 장관님 그리고, 아프리카 지도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교회 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글로벌 에듀’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는 소강석 목사입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서 몇 마디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후진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미국이 공급해준 옥수수 가루와 분유가루를 공급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청년 시절에는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선진국이 되려고 온 국민이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세계 선진국 중에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계 9위가 되는 선진국이 된 것이죠. 개발도상국이 엊그제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선진국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진국은 우리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40여 년 전,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학교와 병원을 세워주셨습니다. 특별히 학교를 세워서 문맹인들에게 문명을 깨우쳐주고 새로운 지성을 갖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학교들과 교육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어 교육시설과 인프라가 충분해서 교회가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우리나라보다 더 GNP가 낮은 개발도상국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교육 덕분에 오늘의 선진국이 된 것처럼 아프리카의 나라들도 저희들의 교육지원으로 인해 부지런히 선진국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 일을 우리나라가 앞장서고 특별히 우리 글로벌 에듀가 앞장 설 것입니다. 글로벌 에듀는 개발도상국에게 병원과 학교를 지어주고 있습니다. ‘글로벌 에듀는 지난 번에 아프리카에 학교를 2개 지었고 이번에 와서도 2개 학교 기공식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학교를 지을 뿐만 아니라 교육시설과 시스템, 프로그램도 지원해 드릴 것입니다.
저는 기왕에 이 자리에 선 김에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로부터 원조를 받은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해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말로 할 수 없는 폐허 속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선진국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그 중심에 부산이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 공산군으로부터 나라를 거의 다 빼앗기고 달랑 부산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산에서 힘을 다시 결집하여 낙동강 전선을 뚫고 계속 북진을 하였고 오늘의 눈부신 대한민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산광역시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최후의 보루였고 대한민국의 혼과 정신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곳입니다. 더구나 부산은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여러분, 부산 해운대를 와보셨는지요? 또 부산 기장 앞바다를 보셨는지요? 태고적의 신비로움과 현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인지 모릅니다. 마치 모든 소리가 세이렌의 노래로 들릴 정도로 아름답고 고혹적인 항구 도시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로서 여러분이 2030년도 엑스포에 부산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렬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2030년도 부산 엑스포에 오시게 된다면 여러분은 환상의 도시에 오시는 듯 착각을 하게 될 것이고 세이렌의 앞바다를 지나가는 듯한 매혹적인 여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부산을 응원해 주십시오. 부산을 사랑해 주십시오. 부산 엑스포를 위하여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Honorable prime ministers & African Leaders, I am Pastor Kang-Seok So, the former Chairman of the United Christian Churches of Korea, who served as chairman and now as chief director of Global Edu. I am really honored to be standing here and say a few words.
When I was a child, my country was highly underdeveloped. That is why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I had grown up eating corn powder and powdered milk supplied by the U.S. However, Korea suddenly became a developing country when I grew up as a young man. I can still recall the whole nation struggled to join the ranks of advanced countries at that time. As a result, Korea has become one of the leading countries, and it is now the 9th-largest economy in the world. It seems like only yesterday that we were very poor, but we have become an advanced country in the blink of an eye.
However, this success was not on our own. 140 years ago, Christian missionaries came to my country. They built not only hospitals but also schools. They enlightened the illiterates and gave them new intelligence by teaching them in the school. Without the education provided by these schools, my country would not have been able to see today’s prosperity and development.
However, since Korea has already become an advanced country, and there are plenty of schools in Korea, Korean churches no longer have to play such a role for our own country. Instead, we would like to help the countries with lower GDP than Korea.
I pray that African countries will be advanced through education. Korea will lead the way, and of course, global edu will support you together. Global Edu built schools and hospitals for the developing countries. We have already built two schools in Africa and held ground-breaking ceremonies for the construction of two more schools this time. We plan to build schools and support the education facilities, system and program in the future.
I am very grateful for the opportunity to proudly introduce my country, the Republic of Korea. Korea is the first country that a recipient became a donor. The recipient country, which once received aid from the international community, has now become a donor country that helps others countries. Even from the tragedy of Korean War, the country blossomed into a flower of prosperity and became a leading country in the world.
There is a city called Busan at the center of the story. During the Korean War, almost all of South Korea's cities and territories were taken by North Korean communist army. Busan was the last city left in South Korea from the North Korean communist attack. However, Korean gathered their power in Busan and push the North Korean army back to cross the Nakdong River and march toward the North. Finally, Korea completely restored today's territory and accomplished a remarkable development like now. Therefore, I believe that Busan Metropolitan City was the last stand that made today's Republic of Korea exist, and the soul and spirit of Korea are still breathing in the city.
Moreover, I am sure that Busan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port cities in the world. Have you ever been to Busan? Have you ever seen the Ki-Jang seashore in Busan? You wouldn’t know how beautiful a coastal city it is in utter harmony with traditional wonders and modern culture. All ringing sounds amid Busan sound like the song of Siren. As you know, the meaning of siren is fascinating music of the sea. I, as one of Korean citizen as well as a leader of religion, look forward to seeing you at the Busan Expo in 2030.
If you visit the Busan Expo in 2030, you may feel like you are in a fantasy city and have a fascinating experience as if you could pass the front sea of Siren. Everyone, please encourage Busan and love Busan. Please give a big appraisal for Busan. Thank you very much.
【소강석】아프리카에 꽃씨를 뿌리러 갑니다
▶ 아프리카에 학교 하나 짓고, 부산 엑스포 유치대회 연설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로서
저는 1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사이족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몇 년 후에는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에 가서 선교와 구호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글로벌에듀’에서 아프리카에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은 가지 말고 학교를 하나 짓자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은 ‘글로벌에듀’의 이사장이 아닙니까? 그러나 한 주 동안에 아프리카를 갔다 온다는 게 너무 엄두가 안 나고, 또 학교를 하나 짓는 것도 재정적 부담이 들어서 안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에듀’ 상임 이사님이 “아프리카에 학교 하나 짓고 부산 엑스포 유치대에 가서 아프리카의 정상과 외교부 장관에게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스피치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것도 공공외교 중의 하나인데 김진표 국회의장님께서 가시지만 나 같은 것이 가서 스피치를 한다고 얼마나 효력이 있겠는가...” 그런데 제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김철수 장로님이 학교 짓는 돈을 자기가 감당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또 안영준 집사님이 행사비 일부를 감당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제가 가면 아프리카 전역에서 선교사들이 오실 텐데 선교사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세미나를 하고 또 교통비를 지원하고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국 정상과 외교부장관들이 삼성 스마트폰 폴더 폰을 선물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먼저 힘겹게 헌신하는 성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개미군단의 헌신자들이 생겨나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였는데 “아빠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폼 나게 가서 공공외교를 하고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던 거죠.
그래서 요즘 영어 연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서 이런 요지의 스피치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선진국이 그냥 된 게 아니라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고 신문명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왕에 이 자리에 선 김에 우리 대한민국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때 딸랑 부산밖에 안 남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원조받은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부산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최후의 보루였고 대한민국의 혼과 정신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곳입니다. 더구나 부산은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부산은 태고적의 신비로움과 현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인지 모릅니다. 마치 모든 소리가 세이렌의 노래로 들릴 정도로 아름답고 고혹적인 항구도시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로서 여러분이 2030년도 엑스포에 부산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렬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2030년도 부산 엑스포에 오시게 된다면 여러분은 환상의 도시에 오시는 듯 착각을 하게 될 것이고 세이렌의 앞바다를 지나가는 듯한 매혹적인 여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부산을 응원해 주십시오. 부산을 사랑해 주십시오. 부산 엑스포를 위하여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프리카에 복음과 선교, 그리고 공공외교의 꽃씨를 뿌리러 가는데 얼마나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녀오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저의 건강과 숙면 그리고 선교와 공공외교 활동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아프리카 방문을 계기로 소강석 목사는 합동교단이라는 굴레를 초월하여,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종교지도자로서 범국가적으로나 범세계적으로 커넥팅허브 리더십을 발휘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면 좋겠다. 한교총이니 한기총이니 총신대학교 걱정은 주님께 맡기고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통일한국에 대비하는 종교지도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통일한국의 교회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메노라 처치가 되도록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를 기도한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