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바울의 발 자취

【종그니칼럼】 이청득심(以聽得心)

2024-11-26     김종근 목사

 말씀: 살전 5장 12절~22절.
오늘의 말씀이 담긴 '데살로니카 전후서'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지 24년정도 되었을 때, 그러니까 다른 신약 성경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에 바울에 의하여 맨 처음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다.  본 서신에 기록된 말씀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하여 데살로니카 시(市)의 역사와 데살로니카 교회가 설립된 배경에 대하여 잠시 살펴 보기로 한다. 데살로니카 도시는 살로니카 만(灣)의 머리부분에 위치한 옛부터 휴양지로 유명한 온천지대다. 주전 358년에 '빌립보시'를 건설한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 2세'의 양자 '카산더(Cassander)'에 의하여 그로부터 7년 후인 주전 351년에 데살로니카 도시를 다시 만들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다양하게 조성된 시가지의 아름다움에 걸맞게 카산더 왕의 왕비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 동생인 '데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처럼 도시의 이름을 '데살로니카'로 명명될 만큼  그녀는 대단히 빼어 난 미모에다 알렉산더 대왕의 여동생이었으니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 제일의 선망의 여장부였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후 수세기동안 헬라문화를 꽃피우던 '알렉산더 제국'이 역사의 무대세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로마 신화의 단초가 되는 주전 5세기 경에 깊은 산속에서 영특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로 형제'가 후에 역사의 무대로 들어와 아주 용맹스런 전사로 로마의 초석을 놓았다고 전해진다. 마침내 로마가 신화의 알을 깨고 세계 무대에 등장하게 될 즈음 주전 146년에 데살로니카는 마케도니아 전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팍스 대로마의 디딤 돌이 된 로마의 케에사르 (주전 102년~ 주전 44년)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그와 자웅을 겨루던 로마 제일의 쾌남아 안토니우스와 대로마 후계자의 자리를 놓고 숙명의 대결을 저 유명한 '악티움 해전'(주전 36년)에서 회심의 일전을 겨루었는데 승리는 온 세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옥타비아누스 에게로 돌아갔다. 역사가는 '악티움해전' 에서의 안토니우스의 패전의 단초를 그리이스의 여왕 크레오파트라에게 돌린다. 

로마가 낳은 냠자 중의 남자 안토니우스가 씨이저를 유혹하여 사생아까지 낳았던 지색(智色)을 겸비한 크레오 파트라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다가 악티움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쓰디 쓴 고배를 마셨다. 이를 당대의 사가(史 家)들은 "크러오파트라의 코가 0,5mm만 낮았거나 높았더라도 세계사 의 흐름은 바뀌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중국 진시황(秦始皇)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중국 천하를 통일하여 세운 진(秦)을 타도한 초(楚)나라의 왕 항우(項牛)가 중국 재 통일의 야심을 품자 이에 맞장을 뜨고 한(漢)나라 를 세운 유방과 회심의 '해하(垓下)의 전투'에서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항우가 치욕적인 참패를 당했다. 그는 이 치욕적인 패배를 참지 못하고 오강(烏江) 에서 부인 '우미인'과 함께 자결한 것을 두고, 사가 (史 家)들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凱勢)의 힘을 가진 희대의 영걸 항우(項牛)가 유방이라는 댕댕이 넝쿨에 걸려 넘어져 죽었다." 고 평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데살로니카 市는 처음부터 끝까지 옥타비아누스에게 충성을 다한 공로를 인정받아 自由市가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관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다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카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내가 약 8년전에 터키를 방문했을 때 바울의 발자취를 여러 곳에서 발견했었다. 오로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목적으로 가도 가도 끝없는 광야 길을 발이 부르트고 진물이 나도록 걷고 또 걸어서 천막 짜는 기술을 익혀 그것으로 생계를 삼으며 중동 아시아 지역은 물론 에게 해 건너 저 미지의 유럽지역까지 신발이 닳고 또 다 닳토록 누구하나 반겨주는 이 없는 가도 가도 끝없는 전도의 발품을 팔았던 바울의 생명을 건 전도 활동을 잠시 회상하면서 나는 하염없이 눈시울을 적셨었다. 이 때 바울은 데살로니카교회를 '야손의 집'에서 시작했다. 이 때문에 야손이 바울을 도와 자기 집에서 교회를 시작한 것이 죄가 되어 여러차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감옥에 가면 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희생적인 믿음의 토양위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바울의 선교의 파워는 대단하였다. 본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러 있을 때에 디모데와 실루아노(실라)의 보고를 받고 기록한 것이다. 바울의 서신에는 실라와 디모데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실라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 주의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참으로 신실한 일꾼으로 예루살렘 교회로 부터도 높이 칭송을 받았다.  

바울을 그림자처럼 마치 한몸처럼 따라 다니며 바울이 가는 곳에 '실루아노'가 있다 할 만큼 그는 신실한 바울의 그림자 였다. 빌립보에서 예수를 증거한 것이  죄가 되어 혹독한 매를 맞고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감옥에서도 밤이나 낮이나 밤 낮없이 찬송하고 기도하니 기적이 일어났다.  손과 발을 묶고있던 쇠고랑이 풀리고 옥문이 활짝 열렸다. 이 기적을 눈으로 목도한 옥사장이 뭐라 설명 할수 없는 이 기적에 놀라 온 가정이 회심하여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보고 예수를 가슴으로 만나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다.  그후 바울이 폭도들에게 쫒겨 데살로니카를 떠난 후에도 디모데는 홀로 데살로니카에 머물면서 복음을 증거 했다. 이렇게 바울이 폭도들을 피하여 데살로니카에서 400km떨어진 아덴으로 가 있을 때에도 이 소식을 들은 디모데는 아덴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데살로니카 교회의 사정을 바울에게 소상하게 전했다. 그후 바울은 다시 사지와 같은 데살로니카 로 디모데를 보냈다.  그리고 바울도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서 그곳에서 1년 6개월동안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다시 디모데가 바울을 찾아와 데살로니카 교회가 신앙 생활의 모본을 보여 모진 박해속에서도 성장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바울의 기쁨이 얼마나 컷었을까! 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온다.    

이처럼 이방 온갖 우상에 빠져 있는 풍토에서 그리고 유대인들의 끈질기고 집요한 핍박과 온갖 방해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격으면서도 "죽으면 죽으리라" 한 각오로 바울은 데살로니카 교인들을 위해 그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데살로니카 서신'을 기록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의 2장 2절~ 6절 말씀을 요약하면 "형제들아!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리니 너희는 깨어  근신하라"  다시 8절에서 "어둠에 속한자 처럼 살지 말고 빛에 속한자가 되어 자신을 살펴 믿음과 사랑의 흉뱨를 붙이고 구원과 소망의 투구를 쓰라." 그리고 다시 오늘 본문 12절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 가운데에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고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너희가 가장 존귀히 여기고 화목 하라! 오래 참으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사랑으로 말씀으로 용서함으로 악을 이기라!" 다시16절에서 "모든 일에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서 4장 4~5절에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모든 어려움을) 넉넉한 마음으로 대하는 너의 그 너그러운 사랑을 모든 사람이 알아 본 받게 하라 주께서 너희와 가까이 계시느니라 (마라나타)".  다시 17절에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니)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도 "언제든지 성령안에서 기도하라"  로마서 12장 1절에서도 바울은 "기도에 항상 힘쓰라"

구약의 암흑기에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사무엘은 겨우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한 이유기 때에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사무엘을 성전으로 데리고 와 어린 사무엘에게 '에봇 옷'을 입히고 사무엘에게 성전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진실로 기도가 메말라버린 당시의 이스라엘 풍토에서 한나의 눈물어린 기도는 이스라엘을 살리는 기도의 샘터였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 제사장에게 임하지 않고 어린 사무엘에게 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자가 어린 사무엘 외에 없었다고 할만큼 영적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떠한까?  진노의 말씀이 언제 어떻게 임할지 두렵다. 이처럼 목자를 잃어버린 칠흙처럼 어두운 암흙의 시대에도 호흡하듯 기도했던 종 사무엘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희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종의 멧세지를 보내고 있다.     

2만여명의 부모없는 고아들을 길러 낸 '죠지뮬러 목사'는 "굳센 의지와 믿음을 온 몸으로 익히는 첩경은 어떠한 시련 앞에서도 기도 줄을 부여잡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 하면 마침내 시련의 먹장구름은 걷힌다"고 했다. 20여년동안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형 에서가 마침내 군사 400인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형 '에서' 가 받을 장자권을 배고 픔을 참지 못하는 형을 이용하여 야곱은 장자권을 형 에서에게서 팟죽 한 그릇으로 취하고 얼마 후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권을 도적질한 야곱이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되어 20여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응징할 심산으로 군사 사백인을 거느리고 쫒아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야곱의 마음은 속이 타들어 갔다. 마지막 날 밤 야곱은 사생 결단으로 얍복강가 산 언덕에 올라 큰 나무 뿌리를 부여잡고 밤이 맞도록 엉치 뼈가 위골이 될때까지 '생명을 건 기도'가 마침내 통과 되어 동생을 죽이려고 절치부심의 심경 으로 천리 먼 길을 달려 온 에서의 마음을 돌려 놓으려고 야곱이 밤이 맞도록 기도할 때, 생명을 건 그 기도에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모두 녹여 야곱을 향한 원한맺힌 미움이 잃었던 형제 애의 사랑으로 되살아 나 에서가 먼저 두 손으로 야곱을 끌어 안자 형제가 서로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목놓아 울며 21년만의 재회를 기뻐하였다.

다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18절 말씀을 빌려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 한다.  여기서 '범사'란 말은 '모든 것'에 란 말이다.  이를 헬라어로 '엔판티'라고 한다 영어로는 'in all circumstances.'   그럼 왜 모든 것엦 감사해야 하는가?  내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명을 주신이가 하나님이시고, 나를 오늘까지 생명의 꼴을 먹여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삶도 내가 죽은 후 무덤 너머 저 하늘 나라까지 나를 데려다 주실 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셨고.  다시 21~ 22절에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다시 23절에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 되기를 원하노라" 다시 24절에서 "너희를 이곳에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인간(人間)이란 호칭이 무색하게 인간사이에 제일 안타까운 것은 '풍요속에 빈곤'이란 말처럼 상생이 아니라 나만 앞세우는 이기(利己)다.

【종그니칼럼】 이청득심(以聽得心)

우리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귀도 둘이고  눈도 둘이고, 코는 하나인듯 보이지만 콧구멍도 영락없이 둘이다. 이렇게 얼굴에 붙어 있는 이목구비(耳目口鼻)중, 오로지 하나인 것은 입뿐이다. 그런데 하나 뿐인 입이, 위치상으로야 얼굴 맨 아랫쪽에 있지만, 그러나 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역할이, 참 다양하고 막중하다. 이처럼 얼굴에 속해있는 이목구비의 역할은,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의 실로 깊고 오묘한 뜻이 담겨 있다. 대통령선거 기간동안 한국의 정치판도는, 한치 앞을 예측할수 없을만큼 요동쳤다.  그러나 5년전 광화문 광장에서, 소위 촛불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민주당 정권이, 불과 5년만에 정권교체를 외치는 유권자들에의해, 이렇게 어이없게 무너질 줄은, 당사자들로서는 정녕코 예상밖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민주당 정권이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 것은,  윤석렬도 아니고 국힘당도 아니다. 자기무덤을 스스로 판 자업자득인 것이다. 5년전 촛불집회로 창출된 정권을, 과연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장관들은 어떻게 발탁하고, 나라 국영기업의 장들을 과연 적재적소에 앉혔던가?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다. 국민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낙하산식으로 자리들을 모두 독식했다.  그래도 되는건지 자문자답해 보시길 바란다. "콩심으면 콩나고 팥심으면 팥난다." 그러기에 국민의 투표에 의한 심판은 언제나 정당하다. 단 한표차로 졌다 해도, 진 것은 진 것이고, 이긴 것은 이긴 것이다. 이점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은, 0,7%(약 24만표)의 표차와는 관계없이, 깨끗하게 승복한 것을, 나는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장부는 언제나 공과 사(公과 私)가 분명하고, 또 진퇴가 분명해야 한다.

왜 입은 두 귀와, 두 눈, 두개의 코구멍을 지나 얼굴 맨 하단부에 있는 걸까? 오직 "듣는 것과 보는 것, 그리고 모든 사물의 추이를 두 배로 잘 살피라"는, 조물주의 사려 깊은 안배일 것이다. 그래서 이청득심(以聽得心)이란 말의 뜻은, "상대방의 말을 두 귀를 총 동윈하여  경청할때에,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 마음을 기울여 상대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읽을수 도, 또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수 도 있어, 상대방과 비로소 동병상린하는 공동체가 될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을 조리있게 또는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해서 일목요연하게 분석하는 것이 지식의 핵심이라면, 지식의 핵심을 잘 살려 낼 줄아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몫일 것이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말을 잘 듣는 것이 말을 잘 하는 것 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이다.

허구헌 날 남편과 사사건건 다투기일수인 어떤 부인이,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선생님 더는 남편과 살지 못하겠어요.그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신경질적이고, 잔소리가 심해져요". 자초지종을 듣고난 정신과 의사가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처방을 하였다. 그 의사는 프라스틱 생수 한병을 그 외래환자에게 건네주며, 이 물 한 통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남편이 집으로 귀가하면, 그때 샘물을 한 모금 머금으세요, 그런데 가능하면 오래 머금을수록 효과가 크지만,  바로 삼키면 효과가 없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이 집으로 귀가하자 이내 남편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부인은 의사의 처방대로 물을 머금었다. 조금 지나자 남편의 잔소리가 잠잠해졌다. 이렇게 하루 이틀 무사히 지나가자, 이젠 남편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부인은 어김없이 그 샘물을 입에 머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봄이 가고, 여름도 가고, 가을이 성큼다가 오자, 남편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눈에 확띤 것은, 신경질이 많이 줄어 들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던 행동도 몰라 보게 변했다. 그리고 수십년 동안 점점 더 심해지던 신경질병이, 신기하게도 점점 치유가 되어갔다. ​이 신비한 효험에 깜짝 놀란 아내가 의사를 찾아 갔다.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그 샘물이 너무 너무 신기해요. 이젠 남편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의사가 대답하기를 "남편이 변한 것은 그 물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침묵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말은 3~4 년이면 배우지만 침묵은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게 아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침묵 할 줄 알아야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때론 침묵이 웅변보다 강하다! 고려 서희장군은 세치혀로 금나라 100만대군을 물리치고 강동육주를 되찾았다. 지금 국민의힘당은 연일 승리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국권을 잃은 민주당에서는 날마다 탄식소리만 새어 나온다. 권불십년이란 말이 있다. 권력에 취한 당사자들은 권력의 술에서 깰때에야, 권력이 마치 아편과 같다는 것을 안다. 박근혜정권이 3년을 갔다면, 문재인정권은 1년만에 끝장나야 했다. 원전을 세계 1위에서 삼등국으로 만들었고. 화력발전소는 계속 늘어나 세계 흐름에 역행하였다. 태양광은 중국 싸구려가 서해안과 남해안 그리고 온 강산을 오염시키고, 국산 태양열 산업을 완전히 초토화 시켰다. 과연 누구를 위한 태양광산업 이었던가!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오늘 웃을 일이 있는가? 역지사지 해 보라. 민주당이 패배한 것은, 민주당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아주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잃은 것에 자성하고, 권력에서 물러난 것에 되려 바둑을 복기하듯 복기해보시라! 이처럼 근신하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희 일비' 하거나 평상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진정한 복은 승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온전히 비울때, 비로소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 들리게 될때, 비로소 나라를 살리고 나를 살리는, 복받는 그릇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