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칼럼】대인(大人)이 필요하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대인(大人)은 말 그대로 큰 사람이다. 큰 사람은 키 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대인이란 <그릇이 큰 사람>을 의미한다. 장차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승리를 위해서 인물란에 허덕이고 있다. 여당은 새롭고 젊은 지도자가 비대위원장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야권은 전직 당 대표가 감옥에 가도 그 흔해 빠진 <유감>이라는 말도 없었다. 기존의 정치 지도자 중에는 탈권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자칭 리더가 되겠다고 별의별 짓거리를 다 하고 있다. 과거 돈맛을 알고, 권력의 맛을 알기에 이 자(者)들은 국회의원직을 놓지 않고 기득권을 누려 보겠다는 것이다. 각 당에서는 신선한 인물을 찾는다지만 준비된 인물이 많지 않다.
사람은 처음부터 대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독불장군(獨不將軍)식의 인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볼 줄 알고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죽일 줄 아는 통 큰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러니 사리사욕에 눈 어둡고 정치권을 사당화하여 보스 노릇을 하려는 사람은 이번만큼은 퇴출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대인은 함께 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줄도 알고, 예견과 통찰이 있고 나눌 줄 아는 덕(德)을 가진 자가 대인이다. 권모술수의 전문가는 이 땅에서 살아져야 한다.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분명한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을 가진 자여야 한다. 거짓말과 희한한 법조문을 둘러대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전문가들은 마땅히 퇴출 되어야 한다.
문제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다. 부도덕하고 양심 불량의 사람도 내 편이면 무조건 후원하고, 감옥에 가 있어야 할 사람도 내 유익과 관련되면 두말없이 협력하고 지원하는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큰 지도자 대인(大人)이 없다. 그냥 선전에 능하고 임기응변을 잘 하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대놓고 국민을 기만해도, 내 지방 사람이고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니 그 사람이 펜이라는 식이다. 어느 당은 1/3이 전과자란다.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에도 대인이 있었다. 특히 자유대한민국을 세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대인(大人)이었다. 또 박정희 대통령도 대인이었다. 그는 혁명으로 나라를 혼돈에서 건져 내었고, 말 그대로 민족중흥의 역사를 만든 주역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은 모두 비판의 대상이었고 욕을 먹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런 비판과 욕을 개의치 않았고, 그 당시 조국에 부여된 소명을 위해서 굳건히 일했다. 나는 박정희 장군이 혁명하던 날 아침에 장도영 참모총장께 드리는 편지 사본을 여러 번 읽어 보았다. 거기에는 박정희 장군과 그와 뜻을 함께 하는 분들이 생명을 걸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을 지켜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그 바탕위에 5천 년 동안 너무나도 가난했던 우리 민족을 오늘의 풍요한 대한민국이 되도록 했다. 그러니 누가 대인인가?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거는 지도자가 대인이요 진정한 리더이다. 오늘날 조무래기 소인배들이 그들에게 온갖 욕을 퍼붓는 것은 자유대한민국의 발전과 성장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과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 한국 교회에도 대인들이 많이 있었다.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박형룡, 박윤선, 이원영 목사 같은 분들은 한국 교회 역사에 없어 서는 안될 대인들이었다. 오늘날 대형교회 목회자라고 해서 대인이 아니다. 민족의 갈 길과 한국 교회를 이처럼 성장케 한 배경에는 큰 어른 곧 대인(大人)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한 분 교회사적으로 큰 지도자는 이영수 목사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직도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 쪽의 말만 듣고, 들은풍월로 이러구 저러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잘 모르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36년이나 되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총회를 좌지우지 했다느니, 총신을 좌지우지 했다느니 하지만, 나는 그 어른과 10여 년 동안 독대를 하면서 느낀 바가 크다. 그는 나보다 10살이나 위였지만 나에게만큼은 깍듯이 예를 갖춘 양반이었다. 그가 나와 독대하면서 내게 들려준 말은 지금도 나에게는 어록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학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뱁새들 틈에 끼어 모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 어머님이 하신 말씀과 아주 유사하다. 어머니는 늘 내게 「양반은 결정적 순간에 절대로 술수를 쓰지 않는다!」는 유훈을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억울하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성도로서 자긍심과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역시 그는 대인이었다. 이영수 목사는 내게 「정 총장님! 나는 관뚜껑을 닫은 후에 평가를 받으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 내게 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가장 비상한 머리와 지혜를 가졌지만 <반대자와 비판자들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내가 학교 상황을 보고 하면 끝까지 듣고 난 다음 마지막 말은 “소신껏 하세요”였다. 한 마디로 그뿐이었다. 그는 설득할 줄 알고 통합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일구어 놓은 업적을 4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돌아보니 한국 교회의 개혁주의, 보수주의 교회를 위한 그의 업적이 참으로 많았다.
나라든지, 교회든지 지금 우리에게는 대인(大人)이 필요하다. 멀리 보고, 전체를 보고, 민초들의 말을 들을 줄 아는 멋진 지도자가 그립다.
【정성구칼럼】한 표가 역사를 바꾼다
1620년에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의 동부 플리마우스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628년에는 화란 개혁교회 성도들이 미국으로 건너와서 오늘의 뉴욕에 자리를 잡고 개척을 하게 된다. 사실 영국과 화란은 17세기에 해양제국의 쌍벽을 이루고, 서로 경쟁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영국과 화란은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와 엇비슷했다. 영국이 해양제국이 되어 온 세계를 영국 여왕의 통치 아래 두고자 했고, 그래서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늘 걸림돌로 신경 쓰이는 나라가 있었으니 대륙에 붙어 있으면서 강한 해양제국을 꿈꾸는 화란 곧 네덜란드였다. 화란 곧 네덜란드 사람은 세계에서 키가 제일 크고 덩치가 큰 민족이었다. 지난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듯이 스피드 스케이팅의 강자는 당연히 화란 선수들이었다. 그래서인가 영국 사람들은 화란 사람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말을 만들 때는 꼭 더치(Dutch)란 말을 붙인다. 더치 페이, 더치 와이프 등등..
그런데 영국은 헨리 8세가 로마 카톨릭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종교 개혁을 했는데, 그것이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되었다. 성공회는 개신교이기는 하나 모든 의식이나 시스템이 로마 카톨릭과 같고 영국의 여왕이 수장이 된다. 하지만 화란은 스페인에서 독립하면서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윌리암 오렌지(William Orange) 장군을 국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오렌지 공은 국왕에 등극하면서 스페인의 로마 카톨릭을 버리고,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J. Calvin)의 신학과 신앙을 따른다고 공식 천명했다. 그래서 화란은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의 본산이 되었다. 또한 하계·동계 올림픽의 화란 선수들의 모든 유니폼은 오렌지 색이다. 그것은 화란 나라의 색이다. 화란은 오렌지가 세운 나라라는 뜻이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1620년에 신대륙에 도착했다. 청교도에도 여러 종류의 청교도가 있다. 장로교 청교도, 감리교 청교도, 침례교 청교도, 회중교회 청교도, 성공회 청교도 등 다양하다. 그들이 순수한 신앙을 지키려는데는 같으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룹마다 신앙의 내용은 조금씩 서로 달랐다. 그 후 1628년에 신대륙에 도착한 화란 개혁교회 성도들은 오늘의 뉴욕의 맨해튼에 둥지를 틀고 개척해갔다. 세월이 지나고 신대륙에 인구가 점점 많아지자 의회도 만들었다. 그런데 의회의 구성원도 영국계, 스코틀랜드계, 화란계, 불란서계, 독일계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의회 구성원 중에 영국계와 스코틀랜드계는 언어가 같으니, ‘가재는 계 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 편이 되었다.
때마침 미국의 공식 언어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가 의제가 나왔다. 국어로 영어를 쓸 것인가? 화란어를 쓸 것인지 표결에 부치게 되었다. 두 대표들은 막상막하였다. 17세기 화란과 영국 사이의 긴장은 다시 신대륙에서 맞붙었다. 그런데 투표의 결과는 참으로 희한했다. 영어를 국어로 쓰자는 영국계 의원들의 투표가 화란계 대표들보다 꼭 1표가 더 많았다. 1표가 승리했다. 법은 법이고 규칙은 규칙이었다. 1표 차이로 역사가 바뀐 것이다. 만에 하나 화란계 대표의 숫자가 1표만 더 받았더라도 미국의 국어는 화란어로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영국과 더불어 세계를 지배한다. 한 표 차이로 패배한 화란 사람들은, 뉴욕 맨해튼의 모든 거리 이름을 화란 말로 그대로 두기도 하고, 그랜드 레피드(Grand Rapids)를 중심으로 화란 사람들이 모여 화란 말을 쓰기도 하고, 화란어로 책도 출판하기도 했으나, 1900년대를 전후해서 모두 영어권으로 흡수되었다. 모든 학교에서 영어를 사용하니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말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3월 9일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맥을 못잡은 분도 있고, 나 한 사람쯤이야 빠져도 괜찮겠지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또 누구를 뽑든지 다 똑같은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는 사람, 고향 사람, 또는 내게 유익을 줄 만한 사람, 내 기업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투표하면 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대 예배시간에 장로님들의 대표 기도를 들어보면 하나님이 원하시고, 나라를 사랑하는 분이 대통령으로 세워지기를 소원한다. 그런데 그 기도대로 하려면 양심을 따라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목사님들은 늘 속내를 감추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 “중도”, “중립”이라고 얼버무린다. 물론 강단에서 어느 당의 누구를 지지해서는 안되지만, 목사가 이 나라의 불의와 부정에 대해서 눈을 감는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그러므로 나의 투표가 자유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귀한 한 표임을 알아야 한다. 투표 한 번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이번에 투표를 잘못하면 이 땅에 제二의 6·25 같은 민족적 비운이 생길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부정선거도 철저히 감시해야 하겠지만, 내 한 표가 역사의 심판이 되고, 역사의 새 아침을 열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한 표는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