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수신(修身)과 치국(治國).

[종그니칼럼] 이순신과 임진왜란(2)

2024-04-25     리폼드 투데이

통치(統治)내지 정치(政治)라는 말은 "집안을 다스린다"는 말의 큰 의미다. "수신제가후 치국평천하(修身齊 家後 治國平天下)"란 바로 그런 말이다. 중국은 주(周) 이후로 치국(治國)과 치수(治水)를 국가 최고의 통치이념으로 보았다. 물의 범람과 홍수 그리고 극심한 가뭄으로 농사를 그르치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을 잘 치수(治水)하는 것을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에 곧잘 비견 된다. 흔히 중국 요순(堯舜) 시대에  백성들이 격양가(擊壤歌)를 부를 만큼 태평성대라 일컬은 것은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민초들이 고루 잘 사는 등 다숩고 배부른 인(仁)의 정치를 최고의 선정(善政)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진 가장( 家長)은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 온 맘을 다 기울여 집안 살림을 살려내듯 '살림살이' 란 말은 '살려내는 일' 즉 나라와 집안의 살림을 살려내는 일이 국사(國事)의 근본이었다. 가정을 이끌어 가는데 어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로 가정을 이끌어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 가족들의 마음이 모두 화목과 사랑으로 혼연일체 (渾然一 體)가 되어야 하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도 주권재민 국리민복 말고 특별한 주의(主義)나 사상(思想)이나 이념이 먼저가 아니고 모든 국가 권력이 오로지 국민에게 있어야 하고 또 국리민복을 지향하는 권력이 국민을 위한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된 주권재민의 민주국가일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극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군주(君主)에게만 있는 일인체제(一人體制)의 전제 제국이 바로 듣도 보도 못한 북한 체제다.  북한의 헌법은 형식상 주권재민이라 하고 있지만 실은 주권이 소위 존엄자 김정은 한 개인에게만 주어져 있다. 이는 이데올로기로 나라의 근본을 공신주의라 하고서 마치 가부장제의 가장처럼 국가 권력이 개인 한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체제를 '전제 군주 독재국가'라 일컷고 지금 3대 째 전제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  

이와 달리 자유와 평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대한민국에서는 그가 비록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에의해 호민관으로 택함을 받은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향하여  '섬기는 자의 자세로서의 통수권자'인 것이다. 이를 잃어버리면 대통령으로서의 근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집권 2년여동안 잘한게 무엇이 있을까? 똑 소리나게 잘한게 하나 있다.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권 출범의 일등공신으로 국가권력의 중심축에서 나랏 일에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며 국정을 농단하기까지 그 기세가 욱일승천하던 민주노총을 작심하고 손을 본 것은 잘한 일이다. 민주노총의 철밥통들 즉 노동자들에게 기생하는 '좌식계급'들이 뒤에서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얼마나 국가의 근간을 휘둘렀던가!  윤석열정부가 이 기생충같은 귀족들을 '일망타진한 것은 그 싹을 잘랐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그가 잘한 일들이 더 있을테지만 아쉽게도 난 그것 외에 특별히 기억나는게 없다. 또 하나 구중궁궐과 같던 청와대를 마다하고 항상 국민들과 소통하겠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것까지는 좋았지만 이태원 참사 사건에서 보듯이 국민들과의 소통에 있어서서 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을까?  힘들어서? 귀찮아서? 검사출신답지 않게 맺고 끊는 것이 왜 분명하지 못했을까?  한술 더 떠  당위적이지 못한 비선조직의 발흥 등 감추고 싶은 궤적들이 일일히 언론의 눈에 비춰지자 이 나라 대통령이란 공인으로서 받는 당연한 것을 간섭 받는 것이 싫어서 결국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 통제의 결과가 이번 총선이다. 

이를 아시라 언로(言路)가 살아있어야 나랏 일이 본연의 길 즉 정도를 가게된다. 나랏 일을 쉬운 길 권세(權勢)에 편승하려 하면 안된다. 그 자리는 언론의 질타와 야당의 반대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여야 한다.  혹여 이러한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를 무시하게 되면 범보다 무서운 것이 폭정(暴政)이다. 옛날 군웅이 할거하던  중국 춘추시대의 난세에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이 모진 학정을 피하여 깊은 산속에서 숨어 살다가 호환(虎患)을 거푸 당하였는데 첨엔 남편을 잃고 담엔 또 자식까지 잃었다. 이때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가 이 산속을 지나가다가 이 기가막힌 사연을 듣고 그 아낙에게 물었다. "이 엄청난  호환을 당하고도 왜 마을로 나오지 않고 이 산중에 머물러 사느냐"고 물었다. 그 아낙네의 대답이 나라의 학정(虐政)이 너무 샘해서" 라고 대답 했다. 나라의 학정이 호환(虎患) 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다. 금번 총선 결과를 두고 집권 여당은 누구를 탓하거나 분을 낼 일이 아니다. 자업자득임을 알고 뼈를 깍는 환골탈태의심경으로 자성하고 이런 어리석음을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복기(復碁)할 일이다.  대통령은 아무나 해서도 안되고 나라의 막힌 곳을 뚫는 형안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분수 즉 역부족을 알았으면 먼저 진솔하게 입은 닫고 귀는 열어 소통부터 잘하여야 했다.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 한대서 감춰 지겠는가? 제발 좀 솔직하시라! 그리고 역부족을 아셨으면 지금이라도 널리 인재를 구하고 소통하시라. 윤대통령은 가장 중요시 했어야 할 언로(言路)를 자기 편의대로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낸 댓가를 지금 톡톡히 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진실로 대통령이 권력의 병풍 뒤에 숨지 마시라! 언론을 나라의 제 4부라고 칭하고 있는 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다. 언로(言路)는 유기체의 피와 같은 존재다 때문에 언로가 살아야 즉 나라의 조직이 귀에 활짝 열려 있어야 나라가 건강해진다 는 깨달음을 얻으시고 부디 불통이 아니라 소통하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나는 며칠 전 두 친구 목사들과 셋이서 강원도 평창으로 가서  그곳이 낳은 일제시대의 문인 이효석 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그 암울했던 때에 그가 쓴 "메밀꽃 필무렵"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효석 기념관 인근 토지는 온통 메밀밭이었다. 그의 흔적을 찾아 그때의 빼앗긴 들녁을 잠시 거닐다가 곧장 평창을 떠나 정선으로 와서 그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정선에서도 볼 곳이 많은데 우리를 태운 차를 모는 류일석 목사의 눈밖에 나면 모든 일정이 뒤틀리니까 그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 갔다 경주를 향해 동해안 고속도로로 달리다가 노랗게 핀 유채 꽃밭이 너무도 흐들어지게 피어서 달리던 차를 잠시 멈추고 한 바퀴 삥 둘러 눈 구경을 하고서 다시 차를 몰고 가다가 점심 때가 되어 통영시에 들러 홍게를 실컷 사 먹었다.  총선 선거 날은 또 공휴일이어선지 통영 전시가지가 홍게시장이었다. 생전 첨 먹어 본 홍게를 그날 그렇게 많이 먹어 보기는 평생 첨이다. 그리고 저녁 노을이 짙어 질 무렵에야 경주에 도착해서 서둘러 숙소를 정하고 먹자 골목 길 조그만 음식점에서 돼지 김치찌게로 배를 채우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 오늘이 국회의원 선거 투표하는 날이란다.  TV를 켜니 막 개표 시간이 되고 출구조사가 발표되는데 야당의 앞승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룻 밤을 보내며 새벽이 될 무렵 선기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아침이 되자 모텔인근에서 간단하게 아침 밥을 때우고 불국사와 안압지 그리고 첨성대를 둘러 보았다.  부산 영도에서 목회할 때 경주를 잠시 다녀 온 기억은 있어도 불국사 경내를 거닐며 사색에 잠겨보기는 이번이 첨이다. 마음만 바빠서 불국사 경내에 있는 '석굴암'은 그만 깜박하고 보질 못해서 꼭 맘에 도적맞은 느낌이 들어서, "이제 내 생전에 석굴암을 보기는 어렵겠구나" 싶어 눈을 감고 있어도 석굴암이 눈에 어른거렸다.

첨성대 입구에 이런 글이 내눈을 사로 잡았다. "하늘을 알면 세상이 보일 것이다."  어라 이런 글이 어찌 여기에 와 있지?" 생각해 보니 아마 신라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세운 전후해서 한 말이지 싶다.  하늘의 이치 즉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알고 인간의 삶의 근본인 싸가지(四可知) 즉 인의예지(仁義禮智)가 통치자의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사람들은 국가권력을 잡으면 모든 것이 눈 아래로 보이는 걸가? 아마 내 생각으로는 맘 그릇 즉 국량이나 오지랍이 좁은 자들의 자세가 혹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무능했던 박근혜 정권을 타도하기위해 민노총을 업고 연일 공화문 광장에서 촛불집회로 촛불혁명을 부르짖을 때 일개  윤석열 검사가 살아 있는 박근혜정권을 특검이란 초법적 권력으로 탄핵하고 문정권을 세우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던 그가, 참 아어러니 하게도 민주당 정권을 창출하는데 앞장 선  그 공로로 검찰총장으로 등극한 윤석열은 이번에는 또 다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다 굴러들어 온 대권을 꿰찰기회를 다가오자 지난 날 자신이 타도한 국힘당에 몸을 디밀고 그동안 자신이 지지했던 민주당을 타도하는 국힘당에서 몸을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온 정열을 기울였던 전 국힘당 대표 이준석씨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윤석렬의 무엇이 그를 땡기게해서 그를 밀었을까? 알 수없는 것이 인생사다. 아마 그는 무능했던 문재인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국힘당 대표로 온 힘을 다하여 윤정권을 탄생시키고도 소위 새로 탄생한 윤정권이 윤핵관이라는 핵심세력에 의해 나라가 세도 정치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서, 권력의 무상을 그꼈다.  그는 국힘당에서 나와 개혁신당을 꾸려 마침내 야인 시절을 끝내고 화성에서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작금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이토록 한치 앞을 가늠할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그는 지난 2년동안 그 천금 같은 시간을 악수(惡手)로 낭비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업자득인 것이다. '기회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씀대로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대통령직이 무소불위의 권력의 자리인 것만 알았지 대통령의 직무와 나라를 이끌어갈 능력은 깜까미 였다. 바른 길을 제시해도 그 길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갈길은 바쁜데 천금 같은 시간과 국민들의 혈세를 바로 쓰지 못하고 있으니 이 모두가 지금 우리의 자화상인 것을 누구를 탓해 무엇하겠는가! 이 얼킨 실타래를  어찌 풀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엇그제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의 인권과 언론 자유의 제한을 두고 '언로를 활짝 열라'고 언급했다. 이 사실이 부끄럽지 아니한가?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정작 자신의 눈에 박힌 들보는 보지 못하는 위정자들이 갈 길 바쁜 이 나라를 이처럼 마냥 뒷걸음치게 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행복이가득한집 (요양원)에는 아흔 한분의 노인들이 있다. 이 90여분의 노인들은 저마다 가족관계도 건강상태도 각 각 다양하다. 요양원 내의 구성원들의 이면들을 보노라면 영락없이 우리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허지만 그 이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녀가 있든 없든 인생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딱히 요양원 말고 갈곳 없는 노인들이다. 예를 들어 한 보름전 화천에서 평생을 살다가 외 아들 며느리의 손에 이끌리어 요양원으로 온 90이 훨씬 넘은 할머니는 매일같이 화천에 있는 아들 집만 찾더니 요즘은 체념한듯 좀 잦아 들었다. 인생 마지막 안식처로 오셨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한 평생을 살아 온 온갖 희노애락의 애환이 깃든 손때 묻은 옛집으로 돌아가고파 여러 날 동안 애태우며 애닯아 하고 있지만,  살아 생전 언제 다시 그 집을 돌아갈수 있으려나! 마지막 집을 나올 때는 아무 짬도 모르고 아들 며느리를 따라 나왔지만 아! 이 길이 다시는 돌아 갈수 없는 황금교를 건너 올 줄은 몰랐으리라! 이렇게 저마다 얼킨 전후 사정을 알고서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미구에 올 얼마 후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인생이 이처럼 잠시인 것을! 얼마 후면 떠나게 될 이 세상 것에 우리는 오늘도 푹 빠져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마치 도살장을 향해 가는 길목을 따라 흘려주는 콩을 정신없이 주어 먹으며 도살장으로 들어 가는 돼지처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죽음 넘어의 길을 가는 인생들을 보시라! 그대는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잠시 세상을 향하던 발 걸음을 멈추고 지금 내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를 직시하시라!

[종그니칼럼] 이순신과 임진왜란(2)

임진왜란은 조선 선조 25년(1592년 4월), 일본 수장 토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가, 소서행장(小西行長), 가등청정(加藤淸正), 흑전장정(黑田長政)등, 군사 15만을 이끌고 조선에 침입하자, 해전에서는 이순신과 원균이 지키고, 육지에서는 신립, 고경명, 곽재우, 휴정 등이 싸웠으나, 육전에서 조총을 지닌 왜군들이 삽시간에 밀고 올라와, 선조는 의주로까지 도망가고, 명군(明軍)과 권율의 반격으로 정전이 되었다가, 1596년에 재침(정유재란) 하여, 무려 7년여에 걸친 朝,明,日, 3국간의 국제전쟁을 말한다.

전쟁의 성격이나 임진왜란이 조선에 끼친 피폐에 대해서는, 이루다 말할수 없을만큼 엄청나다. 임진왜란의 주범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는, 일본 국내의 국난의 문제를 국외로 돌려, 곡창지대이자 지진이 없는 조선을 아예 병탄코자 조선을 침공하였다. 내세운 명분은 "명(明)을 치려하니 길을 열어 달라"는 오만이었다.

일본은 역사이래 단 한번도 외침을 받아 본적이 없는 대륙과 단절된 섬나라다. 일본은, 16세기 후반에 나타난 직전신장(織田信長)의 뒤를이어, 미천한 출신 풍신수길(豊臣秀吉)이 혜성처럼 나타나, 일본을 통일하고 그 여세를 몰아, 조선정복에 나섰다. 임진왜란의 성격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땅은 척박하고 지진이 일상처럼 빈번해서, 땅위를 걸으면 마치 술꾼이 길을 걷듯 휘청거릴 정도다. 그러니 지진이 없는 조선에 더욱 눈독이 갔을 것이다. 또한 조선은 곡창지대일뿐 아니라, 중국과 세계 모든 나라와, 해로로도 육로로 도, 길이 활짝 열려 있는 천혜의 땅이다. 그러니 왜구들이 조선땅에 얼마나 눈독을 들였을까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이처럼 분분한 여러 논란중, 임진왜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어느 하나를 콕 찝어 단정할수 있는게 아니고, 그 저변에 왜구들의 여러가지 탐욕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고, 그 중하나가 바로 '노예전쟁' 이라는 것이다. 왜구들은 고려때 아니 어쩌면 삼한시대때 부터, 선린이 아니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암적존재였다.

일본이 우리에게 좋은 이웃 역할을 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대륙과 단절되다시피한 왜구들은, 언제나 먹거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굶주린 왜구들이, 한반도 해안과 중국 대륙연안에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서, 재물은 물론 사람들까지 노략질을해서 서양에 노예로 팔았다. 이러한 노예상들은 일찍부터 서양에서 한술 더 했다. 일본내에서도 혼란한 전국시대(戰國時代)때, 수많은 양민들을 약탈하여 노예로 팔았다. (이를 난취(亂取)라 한다.).

일찍부터 포르투칼상선이 일본과 교역하면서부터, 왜구들은 서양문명과 문물에 매료되어, 특히 전쟁무기인 '화승총'에 눈독을 들였다. 이렇게 왜구들은 서양과 노예무역을 하면서, 매년 일천명이상의 양민들이 노예상들에의해 마카오로 팔려갔다고한다. 그럼 왜구들은 매년 일천명 이상의 양민들을 어떻게 조달하였을까? 왜구들은 고려때부터 조선 반도 해안에 침범하여, 무고한 양민들과 재물들을 닥치는대로 노략질했다. 이처럼 임진왜란때 뿐 아니라 병자호란때에도, 수많은 양민들이 노예로 혹은 중국의 공납으로 끌려갔다.

임진왜란때 일본군 종군 승려 '교낸'이 쓴 '조선일일기'에는, 임진란때 수많은 왜상들이 조선으로 들어왔는데, 이때 노예상인들도 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사람들을 노략질을해서 밧줄로 목을 매어 끌고 다녔는데, 마치 원숭이 목을 묶어 끌고 다니듯 하였다. 그리고는 이들을 포르투칼 상인에게 팔았다. 한술더 떠 유렵에까지 끌고가서 팔기도 했다.

몇세기 후에 왜구들이 다시 발흥하여, 고종때 조선을 한일합방으로 집어 삼키고, 곧 이어 독, 이, 일, 삼국 추축국들이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닥치는대로 분탕질을 하면서, 조선땅을 비롯 얼마나 많은 약소국의 소년 소녀들이,일제의 위안부로, 일제의 총알받이로 끌려갔 던가! 그럼에도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면서도, 강자의 논리에의해, 조선은 또 다시 남북으로 쪼개지고, 육이오 전란의 화마에 휩싸여 있을때, 일제는 한반도의 잿더미위에서, 미국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전란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아, 패전의 잿더미위에서 경제대국으로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음에도, 계속해서 "우리는 조선에 아무 것도 갚을 것이 없다." 고 오리발을 내미는, 뻔뻔하기 이를데 없는 인면수심을 본다.

다시 임진왜란의 때로 돌아가서, 왜구들이 조선을 휩쓸고 지나갈때마다 상인을 가장한 온갖 양아치들이 몰려와, 고려청자 이조백자등 돈이 될만한 모든 유물들을 모조리 다 가져다가 팔았다.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보듯이, '도자기공'같은 도공들을 아주 천시했지만, 일본에서는 장인으로 대우를받았다. 그래서 또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하여간 쓸만한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훔쳐갔다.

조선땅이 전란으로 폐허가 된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나라에 재물이 될만한 것은 불문곡직하고, 사람과 물품과 식량까지 모조리 다 약탈하여 가져갔던 것이다. 이것이 임진왜란이다. 지금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다시 소련 재건을 꿈꾸며, 우크라이나를 향하여 제 3차 세계대전의 포문을 열었다. 세계는 냉혈한보다 더 혹독하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엄중하고 냉엄한 가름대 앞에 서 있다. 형형한 혜안을 가지고, 나라의 존망이 걸린 대선에, 엄중히 임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