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야합(野合).
【종그니칼럼】지도자의 자세
'야합(野合)'의 원뜻은 산야(山野)에서 개나 야생 동물들이 교미하는 것을 말하는데, 왜 개나 짐승이라고 할까? 개나 모든 짐승들은 암컷이 발정만하면 수컷들은, 시도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오로지 교미하는 데에만 올인하여 죽기 살기로 몸을 던진다.
주로 호주에서 서식하는 고양이과에 속하는 '코올'이라는 동물 수컷은, 잠도 안자고 오로지 섹스에 올인하다가 대부분 일년 안에 죽는다고 한다. 그래선지 나는 길 고양이 아홉 마리를 밖에서 기르고 있는데, 길고양이를 기르면서 알게된 것은 암 고양이는 3개월에 걸쳐 출산을 한다는 것이다. 그뿐아니라 새끼 수컷이 자라면, 어미와도 교미를 한다. 인간이 보기에는 참 싸가지가 없다.
요즘엔 부부가 아닌 남녀가 몸을 섞는 것을 야합(野合)이라고도 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정치 이념과는 관계없이, 이합집산을 일삼는 정치 모리배들에게도, 철새라는 말 대신, 야합(野合)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야합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서 비롯되었다. 통상적으로 야합이란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들판이나 혹은 산야에서 정(情)을 통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예전 젊은 날 야산을 산책하다, 남녀가 야합하는 것을 더러 본적도 있다.
그런데 '야합'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야합이란 말을 불륜의 시각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기원 전 6세기 중국 춘추시대 때, 노(魯)나라에 공흘(孔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골이 장대한 구척장신(九尺長身)의 무인(武人)으로, 노( 魯)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그에겐 반듯한 아들 하나 남기고 죽었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만 아홉을 낳았다. 딸 아홉을 낳는 동안 아들이 없자, 그는 다급해진 나머지 할수없이 소실을 얻어서 겨우 아들을 하나 보았는데, 이름이 맹피(孟皮)로 태어날 때부터 지체부자유자 였다.
어느덧 환갑이 지나자 공흘(孔紇)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조상에게 올리는 제물도 온전한 것을 드려야 하는데, 항차 절름발이 아들에게, 조상을 모시는 일과 가문을 맡기고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공흘이 63세 되던 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이런 소식을 들었다.
"성 밖으로 나가서 북쪽으로 10 리쯤 가면, 무녀(巫女)가 살고 있는데, 그녀에게 과년한 딸 셋이 있으니, 찾아가서 부탁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는가?"
마음이 혹한 공흘은, 곧장 그 무녀의 집을 찾아가서, 저간의 사정을 말하며 딸 하나 주기를 청했더니, 무녀가 딸 셋을 불렀다. 스무 살 첫째 딸에게 물었다. "너, 이 어르신의 아이를 낳아 줄 생각이 있느냐?" 첫째는 고개를 저었다. 둘째에게 물었지만 그녀 역시 싫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열여섯 된 셋째에게 물었더니, 그러자 "네, 어머니, 제가 기꺼이 어머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안징재'(顔徵在)로, 무당의 딸 답지 않게 성품이 곱고 마음이 섬세한 여인이었다. 16살 처녀 안징재는, 63세 노인 공흘의 마음이 다급한 줄을 알고, 그의 뜻을 따라 집 근처 들판에서 몸을 야합하였다. 이윽고 징재의 몸에서 태기가 생겼고, 만삭이 되자 건강한 어린아이가 태어났다. 이 어린아이가 바로 세기의 성인(聖人)으로 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이다.
그의 본명은 공구(孔丘)다. 공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여의었고, 巫女인 어머니 슬하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흔히 유학자들은 공자를 일컬어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물의 이치를 알았다 하여 생이지지(生而知之)라 칭송한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이 소회한대로 그는 세상 모든 이를 스승으로 알고 배웠다고 했다. 그는 군자에게서는 학문을 배우고, 착한 사람에게서는 인간의 도리와 순리를 배우고, 악한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행위를 본받지 않아야 함을 배웠다.
인간사가 참 아이러니하다. 유학(儒學)의 태두요, 유학의 한 아류인 성리학의 근본인 공자는, 분명한 천민이요 서얼 출신임에도, 양반 사대부와 그리고 엄격한 신분제의 원조가 바로 공자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떳떳치 못한 돈을 세탁하듯, 피차 신분이 완전히 다른, 사대부와 천민 무녀 출신과의 야합으로 태어난 공자가, 그의 출생신분으로 본다면, 응당 만인평등을 외쳐야 할 공자가, 그리고 그의 문하들이,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 족쇠가 되는 신분제도를 만들어냈을까? 혹여 자신의 신분을 세탁하려고 그랬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야합(野合)'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 공자의 선친과 무녀와의 야합(野合)에 의해, 태어난, 공자(孔子)의 출생비밀을 전하고 있다.
물론 사마천(司馬遷)이 살던 시대의 '야합(野合)'은 지금처럼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공자의 출생 비밀과 공자의 선친의 죽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합리화하여, 오히려 권위적이고 의미가 더 강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기의 야합(野合)"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공자의 아버지가, 나이 70이 가까운 나이에 걸맞지 않게, 16세의 어린 처녀와 결혼했기 때문에, 당시의 통념으로나 상식을 뛰어 넘은 사례이고, 집이 아니고 백주 대낮에 사람의 이목을 피하여, 산야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생긴 용어가 아닐까 추정된다. 생각해보면 영과 육을 지닌 불완전한 인생이 살면서, 어찌 양지로만 걸을수가 있을까? 때론 양지가 아닌 음지도 또는 굴절된 길이나 아예 길이 없는, 처녀림을 걸을 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야합이라는 용어의 시원을 밝히려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용어의 근원이야 어찌됐던, 야합을 해서 공자가 탄생했듯, 우리 또한 여야가 야합을 해서라도, 나라의 대소사가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대한민국의 재 도약과 함께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민족 중흥의 서곡을 올리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여한이 없겠다.
그런데 요즘은 야합이란 말을 안 좋은 뜻의 정치 용어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낮에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만나고, 밤엔 야합(野合)이 아닌 코올처럼 야합(夜合)들을 하고 있는 것같다. 그래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는가? 선거철만 다가오면 권력을 쫓는 철새 정치인들의 양상을 빗댄 말로, 오직 자신의 몸 보신과 양지만을 선호하여 민의(民意) 보다는, 권력욕에 빠진 정치인들의 야합이, 이젠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길 빌어 본다.
한손으론 힘들지만, 두 손이 힘을 합하고 열사람이 힘을 합하여, 나랏 일에 하나가 된다면, 그야말로 다다익선이다. 진정 우리가 미워해야할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원수는 내 맞은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종그니가
【종그니칼럼】 지도자의 자세
後漢 말 위, 촉, 오(魏,蜀,吳) 삼국 정립을 소설로 그린 이는 두사람이다. 하나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 연의'이고, 다른 하나는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이다. (참고로 진수는 조조가 세운 위(魏)사람으로 魏를 중심으로 썼고,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와, 주자(朱子)가 쓴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에서는, 촉(蜀)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어릴 때 삼국지에 심취해 있던 나는, 눈만 감으면 내 머릿속은, 온통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위,촉,오의 전쟁터가 되어있었다. '삼국지'엔 끝도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인물묘사가 기막히다. 십인십색이 아니라 만인 만색이라할 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의 인물묘사가, 그야말로 백미이자 압권이었다.
촉(蜀)의 유비와 관운장 그리고 장비, 또 한사람 제갈공명, 위(魏)의 조조와 중달(사마의), 吳의 손권과 주유 등등, 삼국지는 가히 난세 영웅호걸들의 독무대라할 것이다. 이 책에 녹아있는 이야기 한토막을 소개한다.
유비가 한때 오갈 데 없는 몸이되어, 먼 친척인 형주의 주인 '유표(劉標)' 에게 잠시 얹혀 살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나이가 많았던 유표는, 자기 아들이 형주를 다스릴만한 그릇이 못됨을 익히 알고, 고심 끝에 유비가 지덕을 겸비한 인품에 매료되어, 유비에게 형주를 맡아달라 고 간곡히 부탁 했다. 그런데 유비가 결연하게 이 제의를 거절하자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주군, 지금 이것은 주군에게 하늘이 준 기회이니, 사양치마시고 형주를 이양받아,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이에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단호하게 대답하기를, "군사(軍師)는 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지 마시오. 나는 어려움을 당해 우리를 받아준 은인의 땅을 빼앗아서, 천하를 도모하는 그런 배은망덕한 위인은 아닙니다". 이에 제갈공명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유비의 말이 계획된 말이건 진심이건, 이 사람이야말로 사리를 가릴 줄 아는 난세의 위인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절로 나오도록 자기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신망을 얻을 사람이요, 국가의 앞날을 열어나갈 그릇이다.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기회를 잡는, 시류를 능소 능대하는 사람보다, 꾸밈이나 가식이 없는, 삶 자체가 스토리가 되는 이러한 지도자의 파괴력은 실로 엄청나다. 모든 일에는 기획이 중요하다.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조물주의 뜻을 찾는 진심이라야 한다. 치밀한 기획과 습득된 지식을 무장한 사람 보다, 하늘의 뜻을 묻는 지혜는, 그 어느 것과 비교될 수 없는 감동과 감화력을 준다.
링컨은 "사람의 성품은 역경을 이겨낼 때가 아니라, 국가 권력을 잡는 힘이 주어졌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고 갈파했다. 보통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역경을 이겨내면, "그 사람 참 인내가 대단한 사람일세"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것은, 가장 막중한 자리에 올랐을 때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그 누구도 감히 말하기 어러운 위치에 올랐을 때, 그가 자유의지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의 됨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권력을 쥐게 되면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그 권력을 국민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쓰는 반면, 자신의 우월감에 젖어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 본위로 나라를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권력을 쥐어주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지난 해 3월 9일은, 이 나라를 5년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쥘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여야 양당 후보 둘 다, 경제대국이 된 이 나라를 이끌 만한 그릇들이 아니어서 문제다. 하나는 약싹빠른 승냥이 같고, 다른 하나는 대단한 권력욕과 성정이 곰 같다. 우리나라는 지금 변변한 지하자원도 없는 나라이지만, 불굴의 의지로 세계무역을 해서 오천만 인구가 먹고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금번 대통령선거의 막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후보들은 여기에대한 치말한 비전을 제시하여야 함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유력후보 들이, 선거운동을 했던 것을 보면 참 가관이었다. 상대방을 폄하하고 깍아 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발차기를 하고, 헤딩을 하고 주먹질을 하고, 이런 작태는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망나니 짓거리다. 전 집권자들이 갈라치기를 했다거나 국권을 농단한 것이 있었다면, 후보자들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선거기간동안 아주 조신하게 행동하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통합이아니라, 되려 국민들을 사분오열로 갈라치기하고 있다. 지금 남과 북이 지리적으로 이념으로 찢겨져 있는 것도 모자라, 다시 동과 서로 찢기고, 또 보수로 진보로 으르렁대는, 이 망국의 고리를 어떻게해야 잘라 버릴 수 있을까?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의 붕당정치, 더 멀리는 신라의 서품제도 ,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에 의한 함경도와 전라도의 산세가 개성을 등지고 있다는 홀대, 문무의 끊임없는 갈등 등이 망국을 자초하기도 했다.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대한민국이 이 만큼 부강한 나라가 되었음에도, 아직도 옛 구태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여, 남북이 아직도 찢겨져 있다.
프랑스 문인 '장드 라퐁텐' 이 쓴, '전갈과 개구리' 우화가 있다. 강가에 서 있던 전갈이 개구리에게 자신을 업고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개구리가 묻기를, "네가 나를 독침으로 찌르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믿지?" 전갈이 말했다. "너를 찌르면 나도 익사할 텐데 내가 왜 그렇게 하겠어?" 전갈의 그 말이 옳다고 판단한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 중간쯤에서 전갈이 개구리의 등에 독침을 박았다. 둘 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와중에 개구리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왜 나를 찔렀지? 너도 죽을 텐데." 전갈도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것이 내 본능이니까."
이 글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사람이 거듭나지 않고는 "타고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고난 성품, 인성을 천성이라 부르고, 평생동안 일한 직종이나 직업을 천직이라 부른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맹모삼천지교에서 보듯이, 환경과 교육의 지배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람은 무엇보다 타고난 성품 즉 바탕이 좋아야 한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는 이렇게 말했다. "인재를 논할 때 반드시 덕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짐은 사람을 볼 때 반드시 심보를 본 다음 학식을 본다. 심보가 바로 되지 않으면 학식과 재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재능이 덕을 능가하는 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타고난 성품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학식, 경력, 학벌, 지위, 환경 등 그 어느 것도 타고난 성품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만큼 타고난 성품은 바꾸기가 어렵다. 나 자신을 봐도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신앙에 의해 성품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의 담금질은 어떤 열받는 문제에 접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본성이 튀어 나오는 것을 보면 안다. 좋은 성품 위에 학식이나 신앙이 더하게 되면, 그야말로 고매한 인품으로 존경을 받게 되리라! 그러므로 감히 나라를 치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리는 법부터 깨우쳐야 할 것이다. 나라나 어느 단체나 조직의 지도자는 일단 인격이 고매하고 좋아야 한다. 성품과 기질이 좋지 않으면 피나는 성찰과 바른 신앙으로 다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영국 외과의사인 모이니한(Moynihan)은,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수술실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수술실에서, 어려운 수술을 마치고 나오자, 어느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박사님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데도, 어쩜 그렇게 침착하게 수술을 마칠수 있었나요?" 모이니한 의사가 대답하길, "밖에 아무리 보는 사람이 많아도, 수술실 안에는 셋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환자와 나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종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