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자원 은퇴를 앞둔 박춘근 목사

남부전원교회 박춘근 목사

2022-02-24     리폼드 투데이

【박춘근】 목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전도사로 단독목회를 했다. 강원도가 고향인 그는 군 입대 전에 고향 근처인 강원도 정선군 고한교회 전도사로 3년을 시무하고 입대하였다. 5군단 작전처(G3) 사병으로 근무하면서도 군인교회에서 군종사병도 아닌데 전도사를 했다는 이유로 군종장교가 와서 설교할 수 없는 주일저녁예배와 수요예배 설교를 도맡아 했다. 더구나 군종장교가 매달 사례비를 주었다는 것이다. 사례비를 모으니 제대할 때 수백만 원이나 되었단다.

군대에서 제대 후 고한동신교회를 거쳐 폐쇄한 증산중앙교회를 재개척했다. 이 기간의 특징은 목양중 항상 남신도가 많아졌고, 현직 초중고 교사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평생 목회 중에 계속되는 특징이 되었다. 그리고 평택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사모가 퇴직하면서 받은 5,800만원을 가지고(당시 평택 아파트 두채 값) 텐트 속에서 평택평광교회를 재 개척해서 20년을 목회했다. 박 목사는 평생에 이 기간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열심히 했지만 교인들의 모집 속도가 너무 느렸다는 것이다. 물론 20년 후에는 200여명까지 모였다고 한다. 그 당시 인구가 많지 않았던 평택이라는 지역의 한계가 있었다고 보인다.

박목사는 1987년 1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80회기로 졸업하고 32세에 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20년 목회했던 평택평광교회를 떠나 같은 노회에 속한 남부전원교회로 청빙을 받아서 17년간 목회를 했다. 남부전원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가장 기쁜 일은 50억이 넘는 건축 의 빚을 청산한 것이란다. 그는 총 45년간의 목회 기간에 10년에 한 번씩 건축을 했고, 5군데 교회를 옮겨 목회하면서 이력서를 내거나 설교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단다. 그래서 지난 45년 동안 “이끌림의 목회”를 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는 개척당시 1998년도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4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매년 중점사항을 수첩에 지니고 다니면서 매일 자신을 점검했다고 한다. 직접 보여 주는 수첩에는 매년 목회방침과 자기개발 등을 프린트해서 오려 붙이었다. 그는 틈날 때마다 이 수첩을 꺼내들고 자기점검을 했단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의식이 깨어있는지, 또 하나님 나라를 모든 일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훈련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고 각성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자신이 책임지는 양떼들로 하여금 내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게 하는가?천국의 소망을 확신하게 하는가?"이다. 세 번째 질문은 "그 꿈의 내용을 채우고 있는가?" 이다. 그래서 꿈과 그 꿈의 실현을 위한 컨텐츠를 채우기 위해 설교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은 꿈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값(Cost)을 지불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박 목사는 목표와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고 철저히 점검하면서 목회를 해 나가는 꼼꼼하고 다부진 성격의 소유자로 보였다. 사실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들도 이렇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원칙주의자나 너무 깐깐한 성격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친화력이 돋보이고, 상대를 배려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보아 독단적인 모습이 전혀 없는 성격으로 보였다. 교단 내에서 그를 겪어 본 사람들은 박 목사를 적을 만들지 않는 목사라고 평가했다.

또한 박 목사는 평생 3가지 서원을 했는데, 첫째는 몸에 어떠한 금붙이를 지니지 않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65세에 은퇴하겠다. 셋째는 교회 재정에 관여하거나 그로 인해 다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재정 담당자는 반드시 2년 만에 교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단다. 맑은 물도 고이면 썩는 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45년간 이 세 가지를 지키고 은퇴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총대로서 22년간 총회를 섬겼다. 찬송가공회 법인이사, 특별조사처리위원장, 특별재판국 서기, 감사부장 GMS이사회 총무 등 여러 중직을 맡아 일하기도 했고, 교단 총무에 도전하라는 주위의 권고도 있었지만 하지 않은 것이 약간의 미련으로 남았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또 박 목사는 20년간 교회갱신협의회 회원으로 정필도 김인중 이건영 김성원 민찬기 회원들과 자주 함께 활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옥한흠 목사가 박 목사의 평생은인 네 분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한다. 나머지 세분은 차득련 목사, 이병규 목사, 총회장을 역임한 한명수 목사라고 한다. 이 네 분들과의 만남과 받은 은혜는 몇 시간을 들어도 모자랄 만큼 감동적인 스토리였다.

조기은퇴를 하게 된 배경에는 교갱협 회원으로서 옥한흠 목사를 본받아 본인도 65세 은퇴한다고 서원하고 여기저기서 말한 것을 지키는 것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지역발전과 함께 3년 후 입주할 5만 세대를 내다보며 지금이 후임자 교체의 적기라는 것과, 자신의 건강상의 이유가 있어 금년 말에 은퇴하기로 당회에서 결정했다. 그리고 교회는 자체적으로 후임자 선정에 들어갔고, 기독신문에 공고까지 냈다. 그러나 박 목사는 후임자 선정 과정에 일체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선정되면 인수인계는 철저히 할 예정이란다. 그는 이렇게 결정하고 보니, 같은 노회에 65세 넘은 분들에게 부담을 드리는 것 아닌가 염려도 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자신에게만 적용되고 필요한 일이기에 주위 목사들이 마음 상하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금년 말 은퇴 후의 계획은 우선 3년간 은퇴목사로서 노회를 섬기겠다고 한다. 같은 노회 소속 80여 교회를 주일마다 돌아가며 예배에 참석하고, 목회자 부부를 격려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GMS 명예선교사로서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이다. 그리고 2021년에 설립한 NGO (재)축복의다리 본부장을 맡아서 중남미지역을 집중적으로 돕는 일을 하겠단다. 몇 분의 목사들과 공동으로 하는 사업이란다. 은퇴 후 생활비는 교회 개척할 떼에 퇴직했으나, 중간에 다시 초등학교 교사로 복직해서 20년 근무기간을 채우고 퇴직한 사모의 공무원연금이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했다.

사실 박춘근 목사를 인터뷰하기 전에 가벼운 인간적 질문을 여러 가지 준비해 갔는데,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본인의 라이프 스토리는 철저한 목회자로서의 삶이 전부였다.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라든지 감명 깊게 본 영화라든지 등 인간적인 모습을 들어보려 했는데, 그의 의식 속에는 온통 목회와 관련된 삶의 지표들만 가득했다. 그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목사들도 “서글서글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속에 분명한 논리와 원칙이 있는 목사, 특히 돈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하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대에 처음 총대로 교단 총회에 참석하여 논리적인 발언을 해서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계기가 되어 22차례나 총대로 섬겼다는 그에게 조기은퇴는 성도들에게나 동료 목사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 “이끌림의 목회” 후에 보여 줄 “이끌림의 삶”을 기대해 봄직하다. 은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