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설 날의 화두.

【종그니칼럼】旋乾轉坤(선건전곤)

2023-01-24     김종근목사

우리나라 정치행태는 완충역할을 하는 중간지대도 없고 오로지  좌우 이분 법뿐이다. 나는 정작 집권 여당인 '국힘당'도 야당인 '민주당'도 아닌데도,  어쩌다 윤대통령이나 국힘당에게 쓴소리를 한다든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하면, 야당이나 좌익으로 호도 되기도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나라 정치행태의 단면이다.  나는 젊은 날의 법 의식이, 오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무의식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분명 현직 대통령도 나와는  차원이 다르게, 오로지 법조인으로 지내셨으니, 공정한 법 감정 즉,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법의식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데 검찰로서 여러 정권의 비리를 다룬 힘의 논리가, 오늘의 그를 만들어서인지, 대통령이 된지 아직 일년도 채 안된 지금, 수십년 동안 몸에 밴 법조인으로서 보다도, 너무도 빨리 권력의 화신이 된 듯 싶다. 대통령의 위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 상식밖의 즉 전혀 걸러지지 않은 언행들이, 가끔 우리를 섬뜩 놀라게 한다. 

해외 순방이라도 가면, 마치 어린애를 물가에 내 보낸 것처럼 불안한 것은 비단 나 뿐일까?  솔직히 국내에 있어도 불안하고, 밖으로 나가 있어도 불안하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실수를 할수있다. 그래서 "내가 실언을 했었노라."고 곧 바로 시인 하면, 그 인간적인 모습에 되려 더 국민들의 무한 신뢰를 받게될 것을, 막무가내로 침묵하거나 오리 발을 내민다. 이 이야기는 강변에 널부러져 있는 물멧돌 같은 보통 시민들의 이야기만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겸양이나 정반합(正反合)을 이루어 내려는 아량이 없어보여서 하는 얘기다.  게다가 나랏 일의 경중(輕重)을 가리고 그 일의 선후와 무게에 방점을 갖고, 참모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일의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하는데, 검사 시절 혹은 사시생 때부터 두주불사의 호기가 몸에 배여서인지, 호미로 막을수 있는 일들을 가래로도 막기 힘든 결과를   가져 온 일들이, 되려 점차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얼굴은 입은 하나이지만, 눈도 둘이고 귀도 둘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자리에 계시니, 얼마나 막중한 자리인가? 그러기에 그 자리는 끊임없는 자기절제와, 말하는 것보다 경청하는 것, 지시하는 것보다 솔선수범 하는 것, 동시에 그 자리는 국정을 결단하는 자리요, 매듭 짓는 자리임과 동시에, 그 자리는 국민을 섬기는 자리, 수종드는 자리이지 옛날 군왕처럼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잖은가? 나는 지금 은퇴 목사이지만, '주님의 종'이라는 직함이 내게 딱이었다. 그래서 다른 직함을 가져본적이 없다.  이 세상 모든이가 서로 섬기는 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쎄요.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이 것좀 하시오." 하고 지시한 적이 없지 싶다. 내손으로 할수 있는 것이면 내가 했다.

어제 뉴스를 보니, 현 공립 중학교 교장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수여키로한 '녹조근정훈장'을, 교장 선생님이 굳이 안받겠다고 청와대(?)에 '포기서'를 낸 이유가, "적반하장격인 분이 우리 대통령이신 것이 부끄러워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금년 2월 말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음에도, 재임 내내 스스로 교실수업까지 했던, 공립 중학교 길준용 교장이 윤석열 대통령 이름이 박힌 '녹조근정훈장' 수령을 거부했단다. "사사건건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는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훈장 증을 받는 것이 부끄럽다" 는 것이 그 이유다.  "스스로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고 뭉개는 모습은, 학생들 교육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충남 A중학교 길준용(62) 교장은, 20일 오마이 뉴스에, "지난해 말 교육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 공적조서를 올리라는 공문을 받았는데, 공적조서 대신 '포기이유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참 강직하고 선비처럼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대쪽같은 분이시다.

길 교장은 이 포기(捕棄) 이유서에서, "훈장을 주는 사람의 이름이 두고 두고 부담이 될 것 같다"는 글을 적었다고 한다.  올해 수여 될 '녹조근정훈장'엔 '대통령 윤석열'이란 수여자 이름 밑에 '국무총리 한덕수',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이란 이름이 병기 된단다.  길 교장은 "훈장증에 적힐 세 분 모두 하나같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면서 "특히 윤 대통령의 경우, "바이든~ 날리면 사태로 mbc기자 홀대,"와 "10.29 용산 참사"대응은 물론, 최근 'UAE의 적은 이란' 발언 사건까지,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면 될 것을,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뭉개가면서, 이런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공격하여, 나라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태도야말로 적반하장인데,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할 나라의 지도자들이, 되려 배우는 학생들에게 안 좋은 악 영향을 줄 것 같아 몹씨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길 교장은 "정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야 그 잘못이 가벼워지는 것이지, 자꾸 덮으려고만 하면 일이 더 커지게 되고, 더 큰 어려움을 불러올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길 교장이 학생들과 교사들에게도, 수없이 강조해온 평소의 생활철학 이며, 교육관이기도 하다. 2019년 공모를 통해 A중에 교장으로 부임한 길 교장은, 교장이 되어서도 교실에 직접 들어가, 교과 수업을 줄곧 진행하고, 학생 대상 MTB (산악자전거)스포츠클럽을 직접 만들어, 지도교사를 해온 인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진정한 리더는 바로 섬기는 자."라는 것을, 몸소 몸스로 실천해 온 교육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길 교장은, 지난해 12월 19일 충남지역 한 교육장이 주는 자그마한 교육상을 받았다.

이 상패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학생 중심 행복한 학교문화 조성에 힘써주셔서 ◯◯교육이 밝게 빛날 수 있었습니다." 교육장상에도 감격했던 길 교장, 대통령 훈장은 비록 포기했지만, 당시 교육장상을 받은 길 교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 과분하게도 큰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몇몇 모범 공직자만 받을 수 있는, 녹조근정훈장이란 무척 큰 상을 거부한 사실에 대해서는, 직접 공개하지 않았다. 국가의 지향점이 아무리 화려해도, 자기 자신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천리 길도 첫 걸음이 중요하다. 조선 후기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이, 숙종에게 직언한 것이 화가되어 제주도로 귀양갈 때, 전남 노화도 돌에 새긴 글이 유명하다. 팔십일세옹(八十一歲翁) 일언이대죄(一言而大罪) 창파만리래(蒼波萬里來) ..., (여든 한살 먹은 늙은이가 말한마디 한 것이 죄가 되어 만경창파가 일렁이는 이곳까지 왔다.) 바라기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민을 섬기는 모두가, 스스로를 낮추고 국민을 진정한 주인으로 아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바로선 나라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티저(T.Tusser)가 말하길, "비겁한 자는 그 자리가 안전하다 착각할 때에만 위세를 부린다."고 했다.

         종그니가

【종그니칼럼】旋乾轉坤(선건전곤)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두 형제가, 길거리에서 귤을  팔고있었다. "왜 귤을 파느냐"고 물었더니,  "울 엄마 생일선물 사드리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귤 1개에 200원, 5개에 800원, 8개에 1000원, 판매 아이디어가 참 어린 아이답게 순박하다.  고생하는 부모 맘을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은 대개 어떤 집안의 아이들일까? 아마 생계가 질박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아닐까?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풍요속의 외로운 빈곤은,  경제의 흐름을 시장경제에 맡기는 체제 자체가, 가진자의 논리가 만들어낸 자화상은 아닐까.

특수층에서 금수저로 자란 아이들이나, 흑수저로 자란 아이들도,  가정이라는 스몰 공동체, 또는 스몰 스쿨을 통하여, 진정 있어야 할 사회공동체를 생활속에서 체득하여야, 진정 살아있는 교육이 되는데 대부분 그러지 못했기때문에,  자라면서 서로 돕는  동기간의 사랑이 결핍된 나홀로의 가정교육과, 학교의 공교육마저도 실질적 평등이나 상생의 인성교육이 아닌, 오로지 승자 독식의 일등교육이, 오늘의 혼탁한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는가? 옛날 아테네의 폴리스 민주정치가 왜 망했는지를 깨달았으면 싶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효도라니요? 난 부모들의 육체적 사랑의 부산물일 뿐 인걸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빈부사이의 출발은 다르지만, 이미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부모와 아들간의 생각의 간극이, 아주 판이한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를 섬겨야 한다."라는 개념 자체가, 孝를 알 까닭이 없는 젊은이들에겐 "의무이상의 짐덩이"일 뿐이다. 그 무엇에 편승 내지 무임승차를 해서라도, 내 편리위주로만 살려는 이기주의의 극단인 기생충 같은 인생들이, 공존의 사회인 지구촌 전체를 어지럽히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사회성이나 상생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소위 흑수저라할 소외계층의 청소년들도, 병든 사회안에서 똑같이 엇나가고 있다. 

선진국이 아닌 대부분 중 후진국에서는 40~50대가 되면, 대개 할아범 할멈이 된다. 불과 1970년대 이전까지도 우리나라도 그랬었다. 지금은 40~ 50세가 되었어도 미혼자들이 많다. 孝道할때 孝란 글자는, 젊은 아들이 늙은 어버이를 업고가는 형상이다. 예전엔 아들이 이삼십이 되면, 부모는 사십~륙십이 되어 그때 대개 돌아가셨다. 그때 자식들은 부모님을 모실만하니 돌아가신 것이 못내 한이되어, 선친 분묘 옆에 움집을 틀고 삼년상을 치르기도 했었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제례의식 또한 그러하다.
몇년 전 내가 있는 요양원에, 99세된 어른이 입소하실 때, 모시고 온 그분의 큰 아들 나이가 80세이셨다. 부자지간이 아니라 형제처럼 보였다. 팔십이된 아들이 백세가 된 아버지를 대할때, 어떤 마음일까? 이처럼 요즘같은 장수시대에는, 늙은 아버지를 업고 가는 '孝'자를 설명할 길이 없다. 요즘 60이 되면 대개 정년퇴직인데, 80이 넘은 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여 백세를 바라보고 있으니 孝라는 정서가 우러날리가 있겠는가!

동남아시아에는 아직 산아제한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우리나라엔 일찍 산아제한이 도입 된 이후, 그 후유증으로 지금은 나라에서 출산을 독려하고 있어도, 아예 가족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나 홀로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아마 십년도 채 못가서 인구절벽의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이 추세대로 가면 나홀로 세대가 기하급수적 으로 늘어나서, 인구밀도가 낮아지게 되면, 인간사회가 더 따뜻해 질까? 어림없는 착각이다. 언젠가 KBS '인간극장'에서, 열 셋 자녀를 둔 가정의 일상을 담은 드라마를 보며, 새삼 깨달은 것은, 가난하고 비좁은 집이지만, 그래서 서로 몸을 비비고 살면서, 서로 위하고 사랑하는 동기간의 진한 우애가,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내가 자랄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젖었다.

그렇다! 가장 좋은 인간교육은, 비록 비좁고 옹색한 집일지라도, 동기간 들이 많아서 서로 부대끼고 아옹다옹하면서 성장할때, 참다운 인성 교육은,그러한 체험을 통하여 그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구밀도가 조밀해서가 아니라, 성장기에 동기간들과 부대끼며 어우러지는 삶의 교감을 갖지못한채 나홀로 자란 세대가 되니, 자연 생각하는 것이, 너무 이기적이어서, 이웃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사회적존재로서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안에 살면서 사회에 더욱 빗장을 거는 탈 사회의 군상들을 보게된다. 동기간이 없는 외 아들로 '오냐오냐'로만 자라서, 공동선을 이루려는 이타적인 사회성이 결핍되어 있다. 서로가 참고 배려하는 사회성의 배려나 포용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 우선의 이기주의와, 잘못된 일등교육이 만들어 낸 자화상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자기 위주로 편향되어 있어서, 공동선을 이루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포용적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의 사회성을 상실한 것을 짐승에 비유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짐승이라도 오로지 정글 본능의 법칙을 따를뿐, 막가파식 동물은 없다. 며칠전 생후 20개월 아기를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학대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50대 양씨는, 지난 6월 15일 새벽 대전 대덕구의 주거지에서, 술에 취한 채 동거녀 정모(25·여)씨의 생후 20개월 된 딸을, 이불로 덮은 뒤 주먹으로 수십 차례 때리고 발로 짓밟는 등, 폭행을 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그는 아이 다리를 비틀어 당겨 부러뜨리고, 아이를 벽에 집어던지는 등 1시간가량 폭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씨는 딱딱한 물체로 아이 정수리를 10회 내리치기도 했다”면서 “피해자는 폭행을 당할 때 몸부림치고 발버둥쳤다”고 밝혔다. 아이가 숨지자 양씨는 동거녀 정씨와 함께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집 안 화장실에 숨겨둔 뒤, 심지어 동거녀의 어머니에게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취지로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드러났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사회 안전망을 해치는 독버섯들이 우후죽순처럼 퍼져, 악취가 코를 찌르고 있음에도, 여야없이 오로지 大選病에 눈이 뒤지버져, 새로운 사회를 복원시키는 비젼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지금 우리는 꼭 있어야 할 사회상을 세우는데는 눈을 닫고, 겉으로만 드러난 허상들의 현란한 문명에만 눈이 팔려 있다. 더우기 우리 눈에는, 물질적인 풍요와 육신의 안일에 젖어있기 때문에, 정작 보아야 할 것에는 눈이 멀어 있어서, 세상이 보여주는 현란한 것들에 매료되어, 값진 인생들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 *선건진곤 : 사회의 잘못된 오랜 구악들을 없애고, 본래의 자리로 되 돌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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