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대교회】에베소 교회가 받은 편지
▶ 한국교회에 나타난 교회괴사증후군 ▶ 첫사랑(십자가의 삶)을 회복시켜야 ▶ 현대판 니골라당, 이세벨, 유태회, 발람 : 4대 독균 제거
에베소 교회가 받은 편지
- 신 바리새주의 악에 대한 경고 -
밧모 섬에서 보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에 충격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은 사도 요한의 귀환을 강렬한 사랑과 희망의 기대로 기다렸다. 죽음을 초극하고 돌아온 사도 요한에 의해 에베소 교인들은 사도 요한의 제2단계 에베소교회 목회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 동시에 제1차 교회개혁 운동을 주도하는 교회로 재탄생 하게 되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의 귀환 전에 보낸 비밀문서 편지인 계시록에 대한 교육을 우선 받았다. 그 계시록 교육 내용 중에 특히 2장~3장의 당시 7 교회에 보낸 편지에 따른 교회개혁 교육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충격이었다. 에베소 교인들이 가장 강하게 칭찬받은 것은 배운 바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잘 지켜 나가려는 신앙 자세를 칭찬 받았다. 가장 강력하게 도전받은 회개의 쟁점은 '처음 사랑을 상실한 악'인 바, 신앙원칙 사수의 자세가 잘못 되어, 아가페 영을 폐기시키는 악을 지적 받았다. 그것은 신 바리새주의로 굳어, 사실은 그 하나님 말씀을 칼로 삼아 영적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다.
위대한 웨슬리도 실수가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악한 존재이므로, 그 악한 본성을 죽이기 위해서 라도 좋은 음식으로 키우려 해선 안 된다." 이것이 영국의 경건주의 신앙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가 지녔던 아동에 대한 관점이다. 웨슬리는 인류사상 신앙과 도덕의 위대한 스승이지만, 이 '모자란 지식'을 완성된 바른 지식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운명론으로 내몰아, 그 이후 개신교 내 신학 논쟁은 결국 무서운 종교 전쟁으로 까지 확장되어 큰 학살을 일으켰다. 그런 역사적 범죄는 그 이전에 칼빈의 후예들 역시 범했다.
영국의 부패 무자비한 왕정을 혁명으로 뒤엎은 크롬웰의 무단 정치는 큰 학살을 일으켜, 거꾸로 반혁명을 불러 들였다. 그 크롬웰의 사상이 칼빈의 개혁주의와 같은 인간 평등 사상이다. 크롬웰 사상은 왕정이 아닌 공화제를 실현하고자 한 영국 자유 민주주의 사상의 원형이다. 그런데 혁명완수를 위한 척결 대상자가 혁명주체 세력 분노를 인해 너무 많았고 무자비해서, 거꾸로 반혁명 물결을 불렀다. 따라서 후에 웨슬리 신학이 그처럼 거칠게 칼빈주의를 악으로 규정한 이유는 이 크롬웰의 악이 원인이었다.
☆ 신 바리새주의 악의 치료법
- 에베소 교회 증후군을 고쳐라! -
인간이 향유하는 모든 위대한 가치는 그 동기와 목적이 아가페 사랑의 실현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신 바리새주의' 라는 영적 살인을 저지르는 칼을 들게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원칙을 보수한다며, 오만하게 '유사 심판자 성향'이 뱀처럼 그 머리를 꼿꼿하게 들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자신보다 더 성숙하고 올바른 주장을 하는 사람조차 자기 미숙한 지식의 잣대로 함부로 정죄하며 재판하게 된다. 결코 그런 영적 장애에 걸려 넘어져선 안 된다.
장로교와 감리교 양 교단은 이렇게 미숙한 깨달음을 완숙된 지식으로 착각한 역사가 있다. 그런데 이 신 바리새적 신학논쟁이 벌어지면, 즉시 정직 겸허한 자세로 반성해야 한다. 반성하지 않으면, 그 잘못된 주장은 반드시 자기 정당화 변증의 함정에 매몰된다. 그때부터 양 주장은 오만한 고집과 합쳐져, 종교적 분파의 교단정치 싸움으로 간다. 그때부터 드디어 교파 간의 양보없는 신학논쟁으로 가다가, 결국 국가 간의 종교전쟁으로도 확대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미숙함을 정직 겸허한 자세로 늘 인정하는 자세로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신 바리새주의'로 굳어, 자신이 사랑하는 이웃을 언제나 무서운 악의 함정에 매몰시키게 된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 세대 교회들에게 직접 편지하셨다.
"아가페,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결단하라!
①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의의 길을 걸어라! 성경을 폐기하거나 왜곡해석하는 자를 니골라당으로 알고 교회에서 내 보내라.
② 의를 폐기하고 성령을 제 이익의 도구로 삼는 자는 이세벨로 알고 교회에서 쫓아내라!
③ 교회와 하나님 자녀와 자산을 제 세력 밑에 두고, 교회를 지배하고, 정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은 '사탄회'이니 쫓아내라!
④ 이런 모든 악을 '종교적 다양성' 이라 하며, 끌어안고 교회를 '종교상업 백화점'으로 삼는 자는 발람이니라. 내가 반드시 가서, 칼로 그를 내치리라!"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교회도, 목회자도, 성도들도, 모두들 자신을 냉엄하게 살펴야 한다.
【촛대교회】 메노라처치의 자격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국교회 전반에 요한계시록 자체를 실재의 성경으로 믿지 않는 목사들이 많다. 당연히 그들에게 그렇게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파를 가리지 않고, 예수재림을 믿지 않는 목사와 성도들이 대부분이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때가 가까워질수록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때일수록 예수의 재림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지키고 민족을 살리는 파수꾼이 되어야 하며, 이전보다 더 기도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이웃의 고난과 함께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요한계시록을 자기 편의대로 편집해서 읽고 가르쳐선 안 되고, 문맥(context)을 따라 읽고 관찰(observation)하여 해석(interpretation)하고, 말씀을 내게 적용(application)하여 행해야(action)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본인 조차도 요한계시록의 참 뜻을 알기가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성도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난도 있고 박해도 있고 환난도 있다. 이 고난과 핍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인내할 때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다가온다. 지금은 요한계시록 18장이 우리의 상황과 가장 가까운 내용이라서 필자는 18장부터 읽어보기를 권한다.
요한계시록 22장을 주제별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1:1-20),
2부 이제 있는 일: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2:1-3:22),
3부 하늘 예배와 인으로 봉한 책(4:1-5:14),
4부 심판의 일곱 인(6:1-7:17),
5부 심판의 일곱 나팔(8:1-11:19),
6부 예언의 계시에 관한 설명(12:1-14:20),
7부 일곱 대접 심판(15:1-16:21),
8부 바빌론 멸망(17:1-18:24),
9부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19:1-21),
10부 천년왕국(20:1-15),
11부 새 하늘과 새 땅, 진실로 속히 오실 예수님(21:1-22:21) 등이다.
요한계시록 2, 3장에서의 ‘이방인’이란 옛날 유태 우월주의 선민의식이 말한 ‘혈연적 이방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거부하고 적대시하는 영적 자세를 지닌 모든 인간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2, 3장은 이 니골라당, 이세벨 무리, 유태회, 발람을 종말시대의 교회에서 제거해야 할 네 가지 암(癌)적 존재로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 무리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들어와 성도 행세를 하며, 교회 안에서 괴사증후군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되었다.
니골라당ㆍ이세벨ㆍ유태회ㆍ발람의 무리들은 어떤 무리들인가? 그들은 어떻게 교회괴사 증후군을 일으켰는가? 그들은 어떻게 성도들의 영성(신앙양심)을 파괴했는가?
①니골라당의 하나님 말씀(성경)폐기나 왜곡해석을 버려라.
니골라당은 성경을 인간 ‘이성(理性)의 재판정’에 끌고 나와 피고석에 앉혀놓은 자들이다. (계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그들은 성경대로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종교 이기주의적 야망이나 타산을 위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가감 변조하는 일을 서슴치않는 무리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성이 원래 피조물로서의 한계에 갇혀있어서, 창조주를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지적(知的) 오만에 빠져 있는 까닭이다.
②이세벨의 기복주의와 번영주의와 샤머니즘을 버려라.
이세벨은 양심의 기준에서 예수의 아가페 윤리실천을 옆으로 밀쳐놓는다. (계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신 율법주의자’ 또는 '행위구원론자'로 정죄하며,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오히려 바르게 사는 이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만큼 이기적 번영(성공주의)과 이익 극대화(물질주의)의 탐욕에 편집(偏執)되어 있는 자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 탐욕을 위해 하나님을 ‘거래대상’으로 보는 우상숭배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속적 양적 번영을 신앙의 척도로 삼고,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샤머니즘)’에 탐익되어, 자기최면으로 스스로를 ‘초자연적 권능’이나 ‘번영하는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로 꾸미기까지 한다.
그들은 성령이나 천국이나 성경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자산가치 중의 하나로 여긴다. 그리고 이 탐욕이 가져오는 샤머니즘적 잡령들을 ‘진리의 영’과 분별하지 못하고 성령으로 받아들인다. 예수께서는 이를 영적 음행이라고 판시(判示)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 음행의 더러운 실체를, 그 영적 음란의 침상(寢牀)을 뒤엎어서라도 드러내겠다 하셨다. 한 마디로 말해 귀신에 사로잡힌 실상은 정신병리적 증상인데, 바로 그 증상을 숨기지 못하고 모조리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즉 그런 자들은 반드시 정신병리적 증세를 감추지 못하게 된다.
③유태회의 ‘보수적 경건 지배주의’와 ‘진보적 지성(知性)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라.
유태회(사탄의 회당)는 고의로 그 이성과 양심을 하나님께 대단히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자들이다.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유대회)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그 무리들은 완전히 ‘종교적 엘리트주의’에 묶여 있다. 그들은 종교의전과 제도와 기구를 신성화ㆍ성물화(聖物化) 하면서, 자신의 권위의 의상(衣裳)으로 삼아, 자신의 거룩을 가장(假裝)하여 돋보이게 하는 짓을 즐긴다.
이를 위해 교회의 법과 행정제도나 정치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과 자기의 소속집단을 ‘정통ㆍ보수ㆍ주류’로 만들어 교권 장악에 혈안이 된다. 하나님과 성경도 자신의 경건함과 선함을 드러내는 도구요, 자신의 위광(威光)을 실현하는 교권적 권위와 권력 창출의 근거로 인용한다. 심지어 ‘회개의 연극’ 조차 철저하게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겉보기로는 그들나름의 정직ㆍ성실ㆍ정의ㆍ법준수가 있지만, 그 모두가 자신의 권위와 권력의 정당한 근거로 내세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여러 신학적 주장을 편의대로 뒤섞어, 자신의 신비를 조작한다. 그래서 어디에서든 겸손을 가장한 눈을 내려뜨고, 독사의 눈으로 상대방이 자신을 높여주는지 않는지를 살핀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교회와 교계 또는 사회에서 자기 개인이나 소속집단의 소유와 명예와 지배력에 충성하는 자이다. 그것을 마치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처럼 자기최면을 걸면서까지 자기 개인이나 소속집단의 위광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그들은 늘 남을 재판하는 자리에 서는데, 그 판결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윤리’가 아니고, ‘내 편이냐, 네 편이냐’가 기준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옳고 그름’을 책임있게 판별하는 일에서는 떠나고, ‘나 또는 내 소속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선’으로 인정하고, 손해가 되는 것은 ‘악’으로 판결하는 ‘사이비 선악윤리 기준’을 내놓는다. 그들은 교권의 자리를 가지고 개인적 집단적 경쟁과 다툼이 처절하다. 이는 자신의 지배이익을 위해서는 목적도 수단도 얼마든지 변개시키는 자세이다. 그들은 명백하게 ‘종교 마키아벨리즘’에 사로잡힌 자들이요, ‘종교괴물’로 변화한 자들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나 교단에서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돈과 명예를 위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모든 것은 그들간의 이해와 타협과 거래의 대상이 된다. 결국 교단은 교권주의자들 간의 이해관계로 아수라장을 이루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자신들에게 진리의 소리를 외치는 자가 생기면, , 그를 ‘공동의 적’으로 몰아서 죽이려고 달려든다. 왜냐하면, 그 진리의 소리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들의 악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득권적인 교권(敎權)을 활용하여 이단 논쟁을 일으키며, 진리의 목소리들을 함께 공격을 한다.
옛날 예수께서도 유태인 사회에서 바로 이 과정을 거치며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선진들인 삼일운동 주동자들 역시 그렇게 해서 교회에서 출교(黜敎)당했다. 이 신앙의 선진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건국사 역시 삼일운동의 역사처럼 한국교회사에서 지워졌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들을 ‘사탄의 무리(유태회)’라 단정하셨다.
④발람 교훈을 따르는 ‘악과의 타협주의’와 종교상업주의를 거부하라.
발람은 앞에서 말한 신앙의 암적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그것으로 성공하려는 인격(靈性)이다.(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은 철저하게 종교상업주의자로서, 그의 부패한 이성은 니골라당이요, 화인 맞은 양심은 이세벨이요, 그 괴물스러운 의지는 유태회이다. 발람은 사람에 따라 이 가운데 한 두 가지로 그 타락이 출발하지만, 결국 세 가지가 합쳐지게 되고, 종국에는 종교 마키아벨리스트가 되고 만다. 네가지 중에 단 한 가지만 잘못된 채, 회개하지 않아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 대상이 된다. 하물며 종교 마키아벨리즘에 젖은 자가 목회자가 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하겠는가?
이런 종교상인(발람)이 목회자나 당회원으로 들어선 교회는 부패한 종교그룹이 함께 백화점 코너처럼 각기 구획된 방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런 교회는 여러 신을 섬기는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을 꼭 닮아 있다. 거기에 발람은 ‘악세서리’처럼 반드시 ‘올바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끼어놓고, 필요에 따라 그 소수세력을 봐주는 척하며 이용하다가 갈아치우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올바른 이들이 교회의 코어그룹이 되거나 ‘권위집단’으로 자라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나 노회(총회)에서는 각 파벌끼리의 종교 이기주의적 충돌이 살벌하다. 그러나 발람의 특징은 그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발람은 이 갈등 속에서 적절한 충성경쟁과 계급적 질서와 돈과 각종 특혜와 단호한 치리로 중앙집권적 치외법권 지대를 만들 기회로 활용한다. 거기에 화려한 종교의전(宗敎儀典)을 입혀주어, ‘신비의 성역(聖域)’을 제도화 함으로써, 거래와 타협과 경쟁과 견제와 격려가 적절하게 작용하는 ‘작은 바티칸’과 같은 ‘신성 교회정치 체제’를 만든다.
이로써, 예배와 기도와 성찬과 성경은 이 신성 교회정치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적 가치’로 취급당한다. 작은 교황 같은 개인이나 그룹은 ‘대리 하나님’ 같은 절대적 존재가 된다. 그런 자들에게는 교회의 성도들이나 기능이나 자산(資産)을 모두 자신의 명예와 지배를 위한 소유자산으로 여기게 된다. 거대 재벌교회를 만들어, 그것을 사유화하여, 자식에게 대를 이어 물려주는 행태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이들의 4대 바이러스의 공통된 특징은 아가페(무조건적 사랑)를 거부하는 의지와 정의에 대한 불감증에 감염된 ‘이기적 탐욕 편집증’ 환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돈-명예-권력-정욕에 대한 편집증세에 사로잡힌 비정상적 인격(영성)이다.
계11:2 "그러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남겨 두고 측량하지 말라. 이는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이 마흔 두 달 동안 그 거룩한 도성을 짓밟을 것이기 때문이라."
계시록에서 성전 바깥마당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물리적 자산과 인위적 조직이나 기능을 탐하는 ‘발람의 무리들’이 스스로 자기 정체를 폭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시다. 그들은 심지어 교회를 사유화하는 데에 이르기도 한다. 그들은 크리스천을 가장(假裝)하고, 교회와 관련된 명예와 권위와 자산과 행정과 교권과 그에 따르는 돈, 그리고 심지어 사람의 영혼까지도 사고판다. 그들은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이 이익거래의 품목으로 취급하는 무리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독벌레 떼는 꼭 나치의 "게슈타포"나 구 소련의 "KGB" 같은 조직의 요원들, 바티칸의 "예수회 신디게이트" 같은 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내의 발람의 무리들이 바로 ‘종교상인 독벌레 떼’ 무리들이다.
요한계시록 2,3장의 말씀은 그런 무리가 파리 떼처럼 달려들어 이익을 탐하는 활동영역, 그것은 반드시 ‘성전 바깥마당’으로 취급당해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주님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성전 안 마당’에서는 쫓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독벌레 떼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악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드러내게 하신다는 경고이다. 그런 자들을 돈과 명예와 교회정치력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영적 이방인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모여든 곳에서 자중지란과 저주로 심판을 당하게 된다.
그런 독벌레들이 자기 실상을 그들의 악행으로 스스로 드러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그 악한 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가 이미 교회와 사회에 끼친 사악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적 심문과 징계를 면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는 용서의 은혜도 공적 질서에 맞추어 시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이렇게 이방인에 불과한 목회자나 당회원들, 그리고 교회 제직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신앙의 원리를 더럽히는 발언과 그에 따른 파벌조성과 싸움을 일으켜, 하나님의 성전 안 뜰을 범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성경을 마음대로 인용하여, 자신의 악을 정당화시키는 주장까지 했다면, 그가 세상에서 숨 쉬는 동안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따를 것이다. 그런 징계조차 없다면, 그것은 더욱 무서운 저주에 버림당한 증좌이다.
각자 스스로 자신의 신앙양심 법정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잘 가려들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안 뜰을 더럽히는 악인 줄 알고 행했다면, 그는 그 자체로써 저주받은 사람이다. 그를 구원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런 짓이 정말 옳은 줄 알고 따랐다가 겨우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순간 즉시 회개하고 그들 틈에서 나와야 한다.
한편 성전 바깥마당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셨다는 요한계시록 11장 2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앙양심과 그에 따른 기도와 행동영역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성별(聖別)하여, 늘 정결케 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의미도 있다. 모든 교회들은 겸허하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문 앞에서 자신을 씻어야 한다.
이런 경우엔 ‘교단정치의 책략’이 가장 더러운 독균으로 누구나 느껴지게 될 것이다. 즉시 그런 무리들은 소독해내야 한다. 올바른 신앙 양심의 깃발 즉 바른 신학과 목회양심을 내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대로 행동하는 주체집단이 일어서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올바른 깃발을 든 쪽에게 권위의 옷을 입혀주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대로 살아가는 집단이 생기다 보면, 어떤 경우는 서로의 독(毒)을 경계하여 충돌할 경우도 있다. 그런데 들어 올린 깃발을 보니까, 같은 깃발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서슴없이 둘은 그 진정성만 확인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합해야 한다. 반드시 ‘먼저 합하고자 하는 쪽’의 깃발 중심으로 통합된 조직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내부에 이런 혼란이 일어나는 중인데, 이 원칙으로 잘 헤쳐 나가야 한다. 이를 헤쳐 나갈 로드맵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에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