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Dogma)와 표준문서(Standard Text)는 교회의 근거이다.

교리 위에 교회를 세웠을까? 교회가 교리를 결정했을까?

2021-11-09     고경태 논설위원

교리 위에 교회를 세웠을까? 교회가 교리를 결정했을까?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우리는 닭이 먼저라고 확언합니다. 교리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리, 구원을 얻을 바른 도리를 선포함으로 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교회는 혈통이나 육정이 아닌 복음으로 세워졌습니다.

개혁된 스코틀랜드 교회의 출현은 1590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전의 스코틀랜드 교회와 다른 체계인 것은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The Scottish Confession of Faith)”입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6명의 John(Knox, Willock, Winram, Spottiswoode, Row, and Douglas in supposedly six days) 목사들이 작성한 문서를 채택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교회는 교리 위에 세워집니다. 교리 위에 세워진 교회는 교리의 통제를 받습니다. 교리의 통제를 인정하지 않은 재세례파는 직통 계시를 인정하는 계열이 많습니다. 교리를 교회의 권위와 동등하게 생각하는 로마 카톨릭도 계시에 대해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바꿀 수 없는 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칼 바르트는 모든 체계에 대해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신론에서는 개방 신론(Open Theism)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독론(Christ-centered)에서 신론으로 전환하였고(God-centered), 구원론에서는 포괄적 구원(inclusive pluralism, 종교다원주의)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주의에서는 교황무류설에 대한 것에서는 양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포괄적 구원 개념을 취하면 WCC에 가입할 수 밖에 없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와 연합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개혁운동입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 계열의 개혁운동을 개신교(改新敎, Protestantism)라고 규정합니다. 개신교는 천주교의 입장에서 주어진 어휘이고, 개혁교회(혹은 복음주의)는 개혁 측의 입장에서 세운 어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개신교라는 어휘를 피하지 못한 것은 완전한 개혁 운동이 되지 못한 것이며, 숫자로 더 열세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혁교회의 큰 문제는 개혁의 성향에 따른 분열입니다. 개신교는 수 많은 종파로 형성되었습니다. 잉글랜드가 개혁을 완성하지 못한 것도 개혁세력의 분열입니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개혁을 성취했지만, 잉글랜드까지 개혁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결국 그 과정에 교회에 의견이 나뉘면서 개혁이 좌초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뒤에도 교회 안에서 신학 논쟁으로 분열 양상은 쉬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장로교도 200개가 넘는 교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교단은 교리 위에 세워집니다. 교단이 교리를 채택하지 않습니다.

교단이 자기 정체성(표준문서)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리를 넘어서지 않은 조건에서 수행되며, 전제에서 교리와 연속성을 갖는다는 표기도 합니다. 1907년 독노회가 출범할 때에 근간인 12신조에서는 계승하는 신조를 밝히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서 박순오 목사 등이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인도연합장로교에서 작성한 12신조에는 계승하는 신앙고백서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도에 있는 도마 교회는 시리아 정교회(Syrian Orthodox)로 네스토리안적 신학 체계가 있다고 합니다. 장로교회는 451년 칼케돈 신경을 바른 교리 체계로 주장하는 종파이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문서로 합니다. 그런데 인도연합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계승하면서 12신조로 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조선예수교장로회도 답습하여 12신조를 표준문서로 채택하였습니다. 1960년대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문서로 채택하였지만, 후로도 12신조를 암송하면서 표준문서 위치를 잃지 않았습니다. 합동 교단은 12신조를 폐지했다고 선언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합동 교단의 표준문서는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입니다. 합신 교단은 교단 분열을 할 때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33조)를 채택하였고, 고신 교단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35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각 교단이 다른 신앙고백서를 채택한 상태이며, 다른 번역문장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가 좀 더 공적 체계를 가지려면 33조 문장이 같은 공인된 번역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공인된 번역에 여러 개인 번역을 발표하면 됩니다.

개혁신학은 네덜란드 신학이 주종입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1643년 엄숙한 동맹과 언약의 산물이지만, 잉글랜드의 챨스 2세가 포기함으로 스코틀랜드 교회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잉글랜드 챨스 2세와 제임스 2세의 박해에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칼빈파처럼 박해를 많이 받은 개신교는 없습니다. 그 가치로 지켜낸 장로교 신앙,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지키고 사랑할 집단은 장로교뿐입니다. 17세기에도 그랬고, 21세기에도 그렇습니다. 영국국교회(성공회), 루터파, 회중파, 침례파 좀 더 네덜란드 개혁파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지킬 책임이나 의무가 없습니다. 장로교회만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존중하고 지킬 수 있습니다. 장로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리와 표준문서 위에 합당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 형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