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한국교회,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③연합기관 통합으로 대정부/대사회를 향한 공적 리더십 발휘해야 ▶ 주간신문 리폼드투데이 창간 특집 ▶ 한국교회, 이렇게 해야 살아난다.

2021-11-20     최미리 기자

한국교회,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일본의 기업가인 마스시타 고노스케라는 사람을 아는가. 그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그는 일본이 대동아 전쟁에서 패전국이 되었을 때 일본을 세계 경제의 기관차로 달리게 하였던 사람이다. 그는 내셔널, 파나소닉이라는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이룬 사람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는 일본에서 돈벌이 사업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종합예술의 사업가로 평가를 받는 경영인이다. 바로 그가 ‘마스시타 고노스케, 길을 열다’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변화에는 빨리 순응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라.” “격동의 세월을 살아가는 방법의 기본은 세월의 조류에 단순하게 휩쓸리기보다는 본연의 자세, 본연의 원칙과 태도를 지켜가면서 변하지 않는 가치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열린 시선으로 주위를 보라. 사람들의 시각은 일반적으로 10도에서 15도이다. 그러나 15도의 각도를 가진 사람은 20도로 넓히고 20도의 각도를 가진 사람은 계속해서 더 넓혀가라.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넓게 보려고 해도 한 방향으로 볼 수 있는 각도는 180도에 불과하다. 180도는 절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필요할 때는 360도를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바퀴를 돌아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겨우 15도에서 20도의 시야로 사는 사람은 결코 남보다 앞설 수가 없다. 넓게 보고 멀리 봐야 남보다 앞설 수가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진정한 자아 발전은 먼저 눈가리개를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가리개가 시야를 가리면 세상을 넓고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삐뚤어지게 보는 경향이 많을 수 있다. 시야는 아무리 넓혀도 지나친 법이 없다.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그 어떤 경우에도 삐뚤어지게 보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와 혼란 속에서 한국교회는 길을 찾고 있다. 그런데 너무 좁은 시야로만 보면 길이 보이지 않는다. 눈가리개를 벗고 더 넓은 시야로 멀리 바라보아야 미래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도 중세 가톨릭 사제들은 자기들만의 좁은 시야로 공간의 권위를 지키기 위하여 믿음으로 이기자고 하면서 성당으로 모이라고 했지 않는가. 그걸 주도한 교황이 클레멘트 6세였다. 그 결과 성당이 집단감염의 진원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며 중세 가톨릭의 몰락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창조적 발상의 전환을 했다. 그는 구빈원을 만들어서 사회봉사를 했고 제네바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 쿼런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래서 노약자를 비롯하여 감염에 노출이 쉬운 사람일수록 절대로 교회 오지 말라고 했다. 대신 성직자들이 찾아가서 예배를 드려 주었다. 한 마디로 칼빈은 예배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키면서도 이웃 사랑과 생명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그래서 중세 가톨릭은 쇠락해갔지만, 칼빈의 종교개혁 운동은 제네바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계속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렇듯,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는 넓은 시야로 새 길을 열어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만의 좁은 시야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코로나로 인하여 무너져간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가.

【위드코로나】③연합기관을 통합하여 대정부/대사회를 향한 공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과거 한국교회는 성장기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봉사, 구제만 잘해도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이미 반기독교적 세력이 네오막시즘과 문화막시즘으로 교회를 공격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도 여론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한국교회에 불리한 입법들이 통과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 국민이 코로나 때문에 분노하고 있고 디프레스(Depress)를 받고 있는데, 교회가 일제히 현장예배를 강행하면 그 국민적 분노가 교회를 향하게 되어 있다. 이런 때는 사회가 반드시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교회가 희생양이 되어 버리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브랜드와 이미지가 다 파괴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이런 때일수록 한국교회가 대정부, 대사회를 향하여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고 정부보다 더 앞선 예배 전략, 선교 전략을 세워야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한 교회, 어느 한 교단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분열된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어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내야 한다. 연합기관 통합이 이뤄진다면, 앞장서서 코로나 아웃을 선언하고 자율 방역 매뉴얼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통합된 연합기관을 통하여 한 목소리를 내고 누가 봐도 완벽하게 선제 방역을 한다면 정부도 협조하게 되리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빼앗긴 예배의 주권도 되찾아올 뿐만 아니라, 교회 세움 운동도 다시 일으킬 수가 있다.

팬데믹 시대에 더 이상 좁은 시야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 뿐만 아니라 연합기관도 각자의 기득권과 주장을 내려놔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이 교권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변하지 않는 가치와 진리는 목숨을 걸고 지키되, 변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수용하고 시대를 따라잡아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가 하이브리드 처치, 플랫폼 처치를 준비하고 통합된 연합기관을 만들어 대정부, 대사회를 향한 공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의 기나긴 터널도 점점 끝이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여, 어둠이 깊었던 만큼 더 찬란한 빛과 함께 다시 비상하고 또 비상하자.